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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요란하다] 01. 오마이갓 드디어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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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오마이갓 드디어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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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뿐인 그대>


드디어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급기야 이처럼 선언할 수 있음에 얼마나 가슴 벅찬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맙소사,

방금 내가 뭐라고 했죠?


사랑.

사랑.

오마이갓 이게 얼마만인가!


11시 52분.


그녀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에요.

딱 기분 좋을 만큼만 취했으며

밤공기가 적당히 달콤한 데다

막차가 아직 끊이지 않은 시간이네요.


열차를 타고 시 경계선을 넘어 마을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집 동네에 다다르면 새벽 한시가 조금 넘겠지요.


오늘 같은 밤이라면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로 간단한 술상을 봐서 소주 서너 잔에 새로운 사랑을 자축해도 좋겠군요.


고요한 밤 흐뭇한 밤.

방금 전 헤어진 그녀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 다정한 목소리를.

그 상냥한 미소를.


발끝이 두둥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로 발길을 돌리고 싶어지네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오늘은 세상의 어떤 날과도 같지 않은 날.

훗날 어떻게 기억될지는 알 수 없어도, 당장은 이런저런 사연들을 더 만들고 싶지 않을 만큼 각별한 날이니까.


끝도 없이 그윽한 이 마음을,

지금 그녀도 알고 있을까요?



<혼자가 아닌 나>


—아, 차연.

그 한마디에 가슴 울컥 벅차오르네요.


이동전화는 한마디로 기적과 같은 발명품입니다. 이런 순간에는 특히.


—가고 있어요?


“가고 있지요.”


—어디?


“지하철 막 탔어요.”


—한참 가겠네.


“뭐 하고 있나요.”


—그냥. 씻으려고요.


“그렇군요.”


—……고마워요 바래다줘서.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요.


“고마운 건 난데.”


—뭐가 고마운가요.


“그런 게 있어요.”


—또 비밀인가요, 나는 몰라도 되는?


“따지지 말고, 내가 지금 할 말이 있어요.


—해요.


“저어…… 잘 지내고 있는 건가요.”


-그 말이에요?


“예.”


—우리 이십 분 전에 헤어졌는데.


“20분밖에 안 됐군요. 20일은 지난 것 같은데.”


밤을 질주하는 열차 안.

출입문 옆에 기대어 서서 밤늦은 승객들을 한 차례 훑어봅니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뺨과 귓불 사이에 붙이고,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빠르게 소곤소곤.


“실은, 보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영광입니다 보고 싶어 해줘서.


“제가 더 영광입니다.”


빨갛게 취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군인.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중얼중얼, 반백 파마머리 중년 여인.

스마트폰 속 TV 드라마에 푹 빠진 청년.

이어폰을 꽂고 어디론가 열심히 문자를 찍어 보내는 소녀.

끊임없이 술 취한 대화를 주고받는 중년 사내들.


한때의 저들 가운데에도 종잇장 같은 사랑에 손가락 베었던 이가 있었겠지.

납득할 수 없도록 버거운 사랑에 허우적대던 이가 있었겠지.


“빨리 평양냉면 먹고 싶다. 수육 반 접시 시켜서 소주 반병. 냉면 육수에 나머지 반병.”


—다음 주에 마포 가기로 했잖아요.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아휴.


“그립다, 냉면.”


—들어가세요.


“도착해서 또 전화할게요. 그래도 되죠?”


전화를 끊고는,

화면에 뜬 내 이름 석 자를 잠깐 바라볼 그녀를 떠올립니다.

질소 포장된 과자봉지처럼 가슴이 부풀어 오르네요.


사랑스러운 N.

내 눈에는 더없이 예쁜 N.

수수하며 참한 N.

나를 비롯한 내 주변 누구보다 똑똑하고 아는 게 많은 N.

그런가 하면 한없이 착하고 겸손하고 너그러운 N.

좋은 여자라는 수식어만큼이나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N.


완벽하기 그지없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충분히 알지는 못해요.


요컨대 지금 누군가 돌연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 자신이 나보다 그녀에 대해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있노라 주장한다면,

분하지만 그러려니 인정할밖에 없겠지요.

아직 그녀와 함께 누구보다 충분할 정도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불만스럽지는 않아요.

그 반대라고 해야겠지요.


사랑에 막 빠진 누군가가

사랑을 막 시작한 상대의

생소하기 그지없는 생각과 버릇과 취향 등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일.

그로서 상대를 조금씩 알아가는 일.

적어도 그 같은 착각을 좋은 마음으로 키워가는 일.


그야말로 새로 시작된 사랑이 조금씩 아껴 선물하는 체험의 기쁨일 테니까요.


오마이갓

당최 이게 얼마 만인가!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은 아니었어요.

20대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랬어요.

또 하루 저물어가는 서른 즈음 되어서도 마찬가지.

외로움에의 내성이 누구보다 강한 편이었지요.


어쩌다 여자를 만나고

어쩌다 연애를 하고

어쩌다 멀어지는 일들이

어쩌다 반복되었지만

어쩌다 혼자되었을 때도 외롭다는 생각은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평생 혼자 살아도 크게 나쁠 것이 없겠다고 믿던 때였으니까.


그런데 불과 얼마 전부터,

30대 중반 접어들면서,

이게 뭔가 달라지더군요.


이따금씩, 비로소 외롭더군요.

외로움이란 이를테면 서러움 아니면 가려움 같은 것이더군요.


제기랄 슬프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TV를 틀면 영화를 보면 음악을 들으면 온 세상에 사랑이 한 가득인데.

거리를 걸으면 마트에 가면 찻집에 앉아 있으면 온 세상 남녀들이 서로 다른 호르몬을 발산하느라 바쁜데.

교복 입은 학생들도 짝이 있어서 다정히 손을 잡고 그놈의 사랑 사랑 타령에 정신이 없는데.


어째서 나는 혼자일까.

어째서 나만 혼자일까.


이러다 나도 K형 꼴 나는 거 아닐까.

가진 것도 갖춘 것도 없이 눈만 높고 취향만 까다로운 동네 아는 K형.

키 작고 유머 감각 최악이며 집안도 직장도 별 볼 일 없는 주제에 만나는 여자마다 뭐가 어쩌고저쩌고 트집을 잡아대는 뻔뻔함 덕분에 그 나이 먹도록 제대로 연애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길고 오랜 서러움과 가려움의 터널도 그러나 이제는 지나간 추억일 뿐.

갈수록 비참해지던 이 내 영혼의 구원자를 드디어 만난 것입니다.

사랑이란 축복이 불꽃처럼 내게 쏟아져 내린 것입니다.



<하늘만 허락한 사랑>


사람이 사람을 처음 만나 호감 또는 비호감을 결정하는,

장차 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아까운 칼로리를 소모할 것인가 말 것인가 최초의 결정을 내리는 시간은

평균 4분 안팎.


누군가를 처음 만나고 이후 4분 안에 뇌나 심장에 어떠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 확률 같은 건 구할 필요조차 없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런가 하면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격정의 가스레인지에 푸른 불꽃이 틱틱 틱틱 점화되는 찰나,

뇌 12군데에 거의 동시적인 반응이 일어나며 옥시토신 세로토닌 페닐에틸아민 바소프레신 등 라면 봉투 뒷면에서 본 듯한 화학물질이 순식간에 발산한다고 해요.


뇌의 자극은 신경생장인자(NGF)의 혈액 수치를 급속히 높이며 결국 심장에 두근두근 말캉한 영향을 미치는데,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시간이 0.2초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꽁꽁 언 동태로 뒤통수를 내려치듯 첫눈에 빠져드는 사랑.

젖은 손바닥으로 젖은 뺨을 후려치듯 단숨에 미치고 마는 사랑.


술집 종업원 그레트헨에게 홀딱 반하고 만 15세 괴테가 그러했지요.

하숙집 딸 우슐라에게 눈이 먼 고흐가 또한 그랬고요.


멀리 갈 필요 없이 제 주위에도 꼭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동네 아는 형 K.


연신내에서 동네 친구들과 술 먹던 그에게 갑자기 무슨 영감이 찾아왔는지

부랴부랴 일산 성인나이트클럽까지 쫓아갔던 게 작년 11월이었지요.


즉석만남은커녕 밤새 헛수고만 하고는 클럽에서 쫓겨나오니 새벽 세시 반.


근처 감자탕집에서 쓰린 속을 풀던 와중에 옆 테이블의 여자 세 명 가운데 한 사람,

개중에서 가장 못생긴 데다 개중에서 유일하게 유부녀인 L과 그야말로 첫눈에 불타올랐던 사연.


여기요, 한 병 더요!


빈 소주병을 숟가락처럼 흔들며 외치던 여자.


소주 한 잔 홀짝 마셔 쓴 입안에 뜨거운 감자탕 국물을 후루룩 떠 넣던 남자.


날벌레와 전기모기채처럼 허공에 마주치며 따닥 딱 불타올랐던 두 시선.


잘난 것도 없는 주제에 이 여자는 이래서 싫고 저 여자는 저래서 싫다고 유난을 떨던 그는,

다만 눈만 병신같이 높은 병신이 아니라

운명 같은 운명을 미처 못 만나 애태우던 순정남이었던가.


이후 미련 없이 이혼에 성공한 L이 K의 곁에 안착하는 데에는 이후 딱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그날 새벽 일산 화정동의 감자탕집에 비바람 되어 몰아쳤던 옥시토신 세로토닌 페닐에틸아민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겠지요.


N은, N과 나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첫눈에 반하다니.

경솔하게.

천박스럽게.

애들 장난도 아니고.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