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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 Celebrity] 0.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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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upon a time I wanted to be princess.’



‘고야드’ 백

‘에르메스’ 버킨 백

‘마크 제이콥스’ 백

‘루이비통’ 그래피티1백

그리고, ‘멋진 남자들’


이들의 공통점은 여자들로 하여금 키스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거다.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그런 욕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어떤 여자라도 평생에 단 한 번쯤은 그려봤을 만한 ‘꿈’이 하나 더 있다.


영어로는 ‘princess’, 일본어로는 ‘...(ひめさま)’, 독일어로는 ‘prinzessin’, 중국어로는 ‘公主’, 한글로는…… 바로 공주님이다.


운명인지 필연인지, 더블엑스(XX) 염색체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게 된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태어나서 내가 제일 처음 듣게 된 긴 문장은 “옛날 옛날에 ○○○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답고, 마음씨도 고운 공주님이 살고 있었습니다”일 것이다. 밤이면 밤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꿈속으로 흘러들어가던 어느 날, 졸린 눈을 애써 동그랗게 뜨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내 왕자님은 언제 와?”


“글쎄, 언젠가는 오겠지?”


“오긴 오는 거야?”


“당연하지!”


“그럼 나도 ‘왕자님과 그 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되는 거야?”


엄마는 이 질문에 살짝 망설였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어서 자자, 우리 공주님.”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멈칫했던 그 순간, 속으로 ‘개뿔’이란 단어를 외쳤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날 공주라고 착각하게 만든 엄마의 ‘우리 공주님’ 발언은 말 그대로 우.리.집.구.석. 공주님이었을 뿐이었다. 멋진 왕자님과 만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모두의 공주님이 아니라. 어쨌든 그것이 내 스스로를 공주님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세 살 때 일이다.


다섯 살이 되자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름 고차원적인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공주=여자이고,

여자=나인데,

공주=나는 왜 아닐까?


대체 무엇이 문제기에 그런 걸까?


지금에 비하면 지극히 얕은 지식과 짧은 경험으로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문제의 원인은 바로 아빠와 엄마에게 있었다. 분명 나는 핑크색 머리띠에 촘촘히 웨이브진 머리,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내 눈에 비친 아빠와 엄마는 아무리 뜯어봐도 단 1퍼센트조차 왕과 왕비를 닮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공주의 시중을 드는 시녀나 하인만도 못해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휴 하고 한숨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내가 공주가 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강구해냈다. 그 모티브는 바로 신.데.렐.라!


그렇다. 방법은 간단(?)했다. 내가 왕자와 결혼하면 되는 것이었다. 분명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의 구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왕자님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여자로 선택받았고, 그 결과 공주로 신분 상승의 꿈을 이뤘다.


나는 왕자와 결혼한 공주들을 하나씩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주라는 족속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움, 우아함, 지혜로움, 고상함 등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살짝 모자란 모습(가시에 찔리지 않나, 패션의 필수 아이템인 구두를 흘리고 다니질 않나, 남이 주는 사과를 덥석 받아 깎.지.도. 않은 채 함부로 먹질 않나)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곧잘 위험에 빠졌지만 진실한 사랑만이 모든 것을 이겨낸다고 믿어서 그 믿음의 힘으로 늘 악의 무리들을 물리치고 왕자님과 달콤한 사랑에 빠지곤 했다.


난 꼭 그런 공주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반드시 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나를 좋아하던 또래의 아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 코흘리개 같은 아이가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왕자님의 공주가 될 텐데, 성급하게 질이 확 떨어지는 연애를 할 수는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미래의 공주로서 지저분하고 창피한 과거는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기특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나이를 먹자, 공주가 되고 싶다는 꿈이 21세기 현실상, 특히나 입헌군주제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완전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았다. 하지만 비루한 현실과 타협하기 이전에 꿈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 결과, 그 방법을 찾아냈다.


“아저씨, 제일 예쁜 편지지 주세요!”


“제일 예쁜 편지지?”


“네, 제일 예쁜 편지지요. 굉장히 중요한 곳에 보낼 편지거든요!”


평소 애용하던 팬시점을 찾은 나는 주인아저씨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추천해준 편지지들을 한 열 개가량 퇴짜 놓고서 가슴 깊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이런 것밖에 없어요?”


“대체 어디다 보내려는 건데?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응?”


나는 아저씨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진열대에 디스플레이된 편지지들을 계속해서 훑어봤다.


“다 별로예요. 일국의 왕자님한테 쓸 편지란 말이에요!”


이 말을 들은 아저씨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얼른 다른 팬시점에 가려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내가 그 팬시점을 다시 찾을 때마다 아저씨는 약간 모자란 아이를 동정하듯,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며 신경을 써준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여러 군데의 팬시점을 전전한 끝에 드디어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구입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 내려갔다. 당연히 ‘FROM’은 ‘이현’이었고, ‘TO’는 왕국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각국의 ‘왕자님’들이었다.


모나코의 안드레아 왕자, 영국의 윌리엄 왕자, 룩셈부르크의 기욤 왕자 등 순서대로 총 열 명의 왕자님께 (아마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꼭 빼닮았으리라고 사료되는 저 평양의 누군가를 제외하고) 편지를 썼다. 어쨌거나, 여기저기 잡지나 고전 러브레터에서 모아놓은 사랑에 관한 애틋한 문장들을 모조리 망라해 편지 내용을 채웠던 것 같다. 물론, 모자란 영어로!




To. 모나코의 안드레아 왕자님


왕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공주는…… 아니지만 왕족의 피를 물려받은 열세 살의 소녀입니다.

복잡한 문제가 많아서 지금은 공주가 아니게 됐어요. 슬프죠? 저도 슬퍼요.ㅠㅠ

텔레비전에서 왕자님의 모습을 보고 전 생각했어요!

이 슬픈 현실에 놓인 저를 구해주실 왕자님을 드디어 만났다고!


지구본으로 모나코를 찾아봤어요. 생각보다 멀었지만, 실망하지 않았어요.

왕자님은 저를 구하러 더 먼 곳에서라도 와주실 거라 믿으니까요. 그렇죠?

당장 구하러 와주시지는 않아도 괜찮아요. 너무 서둘러서 오시다가 왕자님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전 너무너무 슬플 테니까요.


한동안은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제 사진을 함께 보내요. 원래는 더 예쁜 사진이 있었는데,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더니 지금은 이 사진밖에 없네요. 사진을 보내는 건, 저는 왕자님의 얼굴을 아는데 왕자님은 제 얼굴을 모르면 불공평하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저를 구하러 와주실 때 제 얼굴을 모르면 못 찾을 거니까요. 잘 보고 기억해주세요.


왕자님을 만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어요.

왕자님과 왕자님의 가족인 황제 폐하와 왕비님(제가 아직 모르는 가족분들은 왕자님이 나중에 소개시켜주세요)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할게요.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From. 이현


하지만 그날 이후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반년이 가도, 그토록 애가 타게 기다리는 답장은 오지 않았다. 결국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내 편지를 무시한 왕자들의 거만함을 원망하며, 드디어 공주가 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그로부터 또 반년 후, 학교에서 돌아오는 내게 엄마가 편지 두 장을 건넸다. 편지 봉투에 적혀 있는 글은 분명 한글이 아니었다. 나는 왜 이제야 집에 들어오느냐는 엄마의 잔소리에 “엄마! 앞으로 나한테 잘 보여야 할 걸?


어쩜 내게 존댓말을 써야 할지도 몰라”라는 정신 나간 발언을 한 후 방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갔다. 서둘러 오디오 전원을 켜고 평소 즐겨 듣던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그러고는 편지를 쓸 때 사용했던 두꺼운 영어 사전을 다시 펴고 답장의 내용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씩 머리를 쥐어뜯으며 해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하나의 편지는 아랍의 밀리어네트 왕자에게 온 것이었는데 내용인즉, “사진을 보니 당신이 마음에 든다. 그리하여 나의 열두번째 왕비의 자리가 비었으니 당신이 나의 열두번째 왕비가 돼주었으면 한다”라는 내용이었고, 또 한 통의 편지는 “당신을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 왕자님이라 했는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왕자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호주에 붙어 있다. 언어는 왕 자신이 만든 이상한 문자를 쓰며, 땅 면적은 집과 안뜰이 국가 전토인 나라다. 총인구가 일곱 명으로 육군과 해군이 있으며, 공군은 조직되어 있지 않다. 육군은 병력 두 명(대통령과 그 아들), 해군도 단 두 명뿐이다. 한마디로 가족과 친척들로만 구성된 나라다. 이런 나라의 왕자라도 좋다면 난 충분히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총 다섯 시간의 독해 끝에 해석한 편지의 내용이 겨우 이따위라는 것에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이런 나라의 공주가 되느니 차라리 그 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약 삼 년 후, 시대가 변하면서 공주가 되고픈 나의 오래된 꿈을 대체할 수 있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트렌드 아이콘인 셀러브리티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탄생했다. 새로운 스타일을 수용하는트렌드 세터2인 이들의 영향력은 점차 커져서 셀러브리티 워너비3들이 속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셀러브리티.


한마디로 그녀들은 21세기 공주였다.


난 결심했다. 제니퍼 로페즈, 패리스 힐튼, 린제이 로한, 안젤리나 졸리, 그리고 빅토리아 베컴과 같은 셀러브리티가 되자고! 그녀들은 명품 백을 사들이고, 근사한 남자들을 모조리 사로잡고, 자국의 여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결심을 한 후,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내 나이 벌써 스물일곱. 셀러브리티……가 되기는커녕 셀러브리티를 취재하거나 파파라치 짓을 해서 먹고 사는 매거진 <플러스 텐>의 ‘기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왕자님의 공주가 되어 근사한 삶을 살고야 말겠다는 그 허영의 거품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성숙한 여자들이라면 한 달에 한 번 겪는다는 카드값의 공포를 느끼고, 끊임없이 다이어트에 매진하며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렇게 날 공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최고의 남자를 찾는 꿈을 계속해서 꾸고 있다.




1. 루이비통에서 한정판으로 나온 제품. 루이비통 스펠링이 낙서처럼 어지럽게 쓰여 있는데 핑크, 오렌지, 형광연두색이 있다. 백, 레깅스, 지갑 등 여러 가지 제품으로 출시됐고 이 제품이 한국에 출시되던 날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소수의 VIP 위주로만 예약 판매를 했다는데도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 CCTV 검증까지 할 정도였다. 셀러브리티 협찬으로 사전 마케팅에 완벽히 성공한 케이스다.


2. 트렌드세터 하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떠오른다. 물론 본질은 서로 전혀 다르지만. 말하자면 트렌드세터는 유행을 따르려는 무리를 진두지휘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자인 셈이다. 그들이 입고 나온 옷은 다음 날 매장에서 품절 사태를 이루고, 제품을 만든 디자이너의 이름 대신 ‘OOO 스타일 자켓’, ‘OOOst 선글라스’ 등으로 통용될 만큼 대중에게 영향력이 크다.


3. 셀러브리티들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매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요즘에는 그 매력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셀러브리티 워너비들이 늘고 있다. 셀러브리티가 하고 나온 아이템이나, 그 셀러브리티의 캐릭터를 소유하면서 그들과 보다 비슷해지려고 노력한다. 셀러브리티처럼 예뻐지길 혹은 멋있어지길 바라는 와중에도 자기만의 매력을 발산하는 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짝퉁’으로 끝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