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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요갱] 인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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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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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1)






거대한 두 개의 칼날이 공중에서 느릿하게 춤을 추었다. 서로 마주칠 듯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는 것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고도 남을 만큼 기이한 묘기였다.


거대한 칼의 모양새는 붉은빛이 도는 초승달을 닮았다. 경칩이 내일이건만 궁궐 담 옆으로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겹겹이 쌓여 매서운 바람을 일으켰다. 때마침 솟아오른 눈바람은 하늘에서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는 칼날 위로 베어져 나갔다. 베어져 나가는 그 줄기줄기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원귀들의 한 맺힌 울부짖음이었다.


저잣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더러 아이가 있는 아낙들은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삼삼오오 모여든 관중은 말소리를 낮춰 수군거렸다. 그중 어떤 이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또 어떤 이들은 혀를 세게 내찼다.


“서둘러 형을 집행하라!”


거대한 칼춤을 잠시 멈추고 탁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망나니들을 향해 의금부도사가 명을 내렸다. 그중 한 망나니가 앞으로 쏠려 내려온 머리를 쓱 걷어 올렸다. 드러난 그의 얼굴은 짐승의 몰골에 가까웠다. 또 다른 망나니는 수염에 묻어 있던 탁주를 손으로 거칠게 쓸어내렸다. 탁주를 머금은 두 망나니의 입에서 입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여기 무슨 구경이라도 났소이까?”


다 해진 갓을 쓴 젊은 선비 하나가 모인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섰다. 앞을 보고 있던 노인이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선비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는 노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겸연쩍게 웃었다.


“한양은 처음이라…….”


선비는 웃으며 애꿎은 이마를 긁었다. 그를 바라보던 노인의 눈길은 긴 한숨과 함께 다시금 앞으로 향했다.


“저기 형장의 여인은 조선 팔도 최고의 기녀 중에 기녀지.”


“기녀요?”


선비는 넋두리 같은 노인의 대답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보통의 형 집행과는 다르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사내 하나가 노인의 말을 천천히 받아 이었다.


“한양이 처음이라고 했는가? 그래도 팔도 구석구석 소문이 났으니 알 터인데. 저짝에 보이는 분이 화의군 나리여. 그리고 이짝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큼직한 짱돌이 형장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더러운 연놈들 빨리 죽여라.”


짱돌은 형틀에 묶여 있던 가냘픈 여인의 이마에 명중했다. 눈보다 흰 이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자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저, 미친놈!”


고함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선비와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도망가는 누군가를 관군이 뒤쫓았다. 선비 옆에 있던 사내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한층 격양된 목소리로 남은 말을 마저 내뱉었다.


“왕이 되려고, 형제들을 죽이다 죽이다 이제는 명분이 없어서리, 계집이랑 엮어서 죄를 뒤집어씌우다니. 이런 젠장맞을!”


그는 속에 있던 가래까지 한꺼번에 모아 바닥으로 내뱉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누런 가래를 발로 뭉개버렸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고 사내를 쏘아보았다.


“그놈의 주둥아리 좀 조심혀! 그러다 뒈질 수가 있어.”


노인의 호통에 그는 입을 쑥 내밀었다. 북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북소리에 맞춰 망나니들의 칼놀림 역시 빨라졌다. 망나니 하나가 입에 머금고 있던 탁주를 화의군의 얼굴에 사정없이 뿜었다.


화의군은 흘러내리는 탁주 때문에 시야가 흐려왔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다만 자신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면치 못할 여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요갱아, 미안하다! 너를 볼 낯이 없구나.’


화의군은 마지막 힘을 다해 형틀에 묶여 있는 초요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 역시 겨우 몸을 추슬러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모진 고신(拷訊)으로 상처투성이었으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마지막으로 두 망나니는 서슬 퍼런 칼날에 탁주를 내뱉은 뒤 칼을 하늘 높이 추켜올렸다. 잠시 멈췄던 바람이 칼끝에 달린 방울을 조용히 흔들었다. 형장에 모인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하얀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조각조각 깨졌다. 형장의 공기가 파르르 떨렸다. 이곳저곳에서 한탄의 소리가 새어 나오는 그때, 망나니의 칼이 화의군의 목 위로 떨어졌다.


붉디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희고 곱게 쌓인 하얀 눈은 점점 붉게 물들었다. 눈바람은 피바람이 되어 사람들의 코끝을 자극했다.


“노인장! 나는 더 이상 못 보겠소. 초요갱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내 어찌 보겠소. 다 보고 와서 이야기나 해주시오. 주막에 가 있겠수다.”


선비 옆에 서 있던 사내가 성큼성큼 사람들을 헤치고 저잣거리 쪽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망나니 하나가 형틀에 묶여 있던 초요갱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녀의 두 눈에는 이미 붉은 눈물이 알알이 맺혔다.


“네 이년! 천한 계집 주제에 대죄를 지었으니, 네년은 죽어도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


의금부도사의 우레와 같은 고함에 초요갱은 천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곧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초연해 보였다. 득도를 한다 해도 쉽게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비록 살결이 다 비치는 무명 적삼에 치마를 입었으나 초요갱의 얼굴은 한 떨기 동백꽃처럼 아름다웠다.


“어찌 죄인이 할 말이 있겠소? 어서 죽여주시오!”


푸르디푸른 하늘만큼이나 청량한 목소리가 형장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처음에 손가락질하던 아낙들마저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쳤고, 모인 사람들은 애처롭고 쓸쓸한 표정으로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형을 집행하라!”


명이 떨어지자 망나니들은 독에 남아 있던 탁주를 번갈아 가며 들이켰다. 그들의 입을 타고 누런 탁주가 흘러내렸다. 입 주변에 묻은 탁주를 팔목으로 쓰윽 문지른 망나니는 조금 전과 같이 푸우 하고 내뱉더니 칼을 하늘 높이 추켜올렸다. 칼끝에 달린 방울이 조용히 움직였다.


초요갱은 두 눈을 살포시 감았다. 묵직한 칼은 바람을 세차게 가르며 내려왔다. 모인 관중은 칼이 내려옴과 동시에 안타까움의 비명을 터뜨렸다. 수십 명의 비명 소리는 이미 오래전 건너온 망각의 강 너머로 그녀를 다시금 데려다 놓았다.



“저 계집아이를 잡아라! 어서 저년을 잡아, 어서!”


솔숲에서 몇 마리의 새들이 푸드덕하며 붉은 노을 위로 솟구쳤다. 고요했던 숲은 장정 서너 명의 목소리로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열 살이 갓 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솔숲을 가로질러 부리나케 달리고 있었다. 동지를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솔숲은 어느새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숲을 계집아이는 죽어라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런 계집아이의 뒤를 서너 명의 장정이 바짝 쫓고 있었다.


정신없이 얼마나 달렸을까?


신고 있던 짚신은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고, 조막만 한 발등 위에는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즈음 계집아이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깊은 절벽 앞이었다. 절벽 아래에서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세차게 올라왔다.


계집아이는 절벽과 장정들을 번갈아 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뒤따라오던 장정들도 계집아이가 멈춘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다가갔다.


“네 이년! 살고 싶으면 이리 와라! 쥐방울만 한 년이 어찌나 빠른지.”


앞서 걷던 사내 하나가 마른침을 손바닥에 내뱉었다. 그는 침을 쓱쓱 비비며 능글맞은 표정으로 계집아이 곁에 한 걸음 다가섰다. 아이는 천천히 물러났다. 아이의 발아래 있던 잔돌과 모래가 계속해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진 잔돌은 계곡을 훑으며 쓸려 내려갔다.


그 소리는 마치 비명처럼 소름 끼치게 들렸다. 계집아이는 두려움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드디어 사내와 아이의 거리가 한 뼘으로 좁아졌다. 사내는 계집아이를 잡아채기 위해 팔을 뻗었다. 아이가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사내의 팔을 피하기 위해 뒤로 조금 물러서던 순간이었다.


“아악.”


계집아이의 한쪽 발이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막 떨어지려는 순간 몸을 날린 사내가 아이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이년이 미쳤나?”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계집아이는 차가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계집아이를 확인하고 나서야 사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곱게 빗어 내렸던 아이의 머리카락이 댕기가 끊기면서 사방으로 흩날렸다.


“밤이 너무 깊었어. 어서 이년을 데리고 내려가자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계집아이의 멱살을 사정없이 움켜잡았다.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사내는 더욱더 멱살을 틀어쥐었다.





계집아이가 어디론가 끌려가던 그 시각, 숲 속에는 또 다른 그림자들이 있었다.


“벌써 몇 번째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건지! 나 참, 어허!”


긴 활을 들고 있는 앳된 얼굴의 사내와 화살통을 메고 죽은 새끼 멧돼지를 질질 끌며 뒤따르고 있던 사내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갑자기 멈췄다. 두 사내 모두 이마에는 땀이 알알이 맺혀 있었다.


“대군 나리! 이, 이 일을 어찌합니까요?”


대군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며 함께 온 사내에게 미안하다는 듯 연신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허탕은 아니지 않느냐? 하하.”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바닥에 축 처져 있는 멧돼지를 발로 툭툭 찼다. 어이없는 대군의 모습에 화살통을 메고 있는 사내는 혼잣말처럼 투덜댔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군 나리께서는 웃음이 나오실까?”


사내의 질타 어린 말에도 대군은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우와 한 내기만 아니었어도……. 그나저나 이 숲은 보기와 달리 꽤나 깊구나.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잘 따라오던 말마저 도망가버렸으니, 이런 낭패가 또 있나.”


대군은 들고 있던 활을 바닥에 팽개치며 털썩 주저앉았다.


“배가 고파서 더 이상은 못 가겠다. 칠석이 너도 그만 여기 앉거라. 네가 내려가자 할 때 들을 것을. 미안하게 됐구나!”


그는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칠석을 올려다보았다. 칠석은 그제야 메고 있던 화살통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 동안 그들 사이에는 간간이 내뱉는 한숨을 제외하고는 침묵만이 깊게 내려앉았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