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ok

[가즈 나이트 라이크에덴] Track 12. 관리인(14)

이전 다음
최상단 최하단

Track 12. 관리인(14)

  • WHITE




“젠장! 이건 또 언제!”


거머리를 뽑아내고 새로이 지혈에 들어간다. 상대방의 공격타이밍을 예측할 수가 없다. 이만하면 언제든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데도, 치명상이 되지 않을 법한 공격을 골라서 퍼부어대고 있다.


“야! 덤비는 놈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보내줘!”


제일의 말은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 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메아리조차 없다.


‘젠장……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아무도 안 와.’


아무리 야간이라지만 이쯤 소동을 피웠으면 당직근무자라도 달려오는 것이 맞다.

감시카메라를 부순 것은 사측에서 빨리 알아채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미 회사 전체가 적에게 당한건가?’


상황이 안좋아지니 사고의 흐름도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려고 하는데 그것이 역효과로 다가오고 있다.


‘아니야…… 침착해, 회사 전체가 당할만큼 큰 일이라면 소란이 크게 벌어져야 해.’


세르지오가 습격했을 때도 소란이 장난 아니었다.

더욱이, 녀석의 습격으로 인해 당직근무자들의 경계레벨이 평소보다 올라가있는 상태다.


이번 습격이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어떻게든 자신이나 시엘의 귀에 포착되어야 정상이다.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는 습격이거나…….


‘회사에서 묵인한 습격이거나.’


부정적인 사고가 이번에는 도움이 되었다. 느닷없이 떠오른 가설 하나가 제일의 척추를 내달려 뇌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버린다.


이 정도로 잠행능력을 가진 적이 상대라면 제일과 시엘은 언제 죽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적이 가진 능력의 편린조차 잡지 못한 채 몇 번이나 되는 공격을 허용했다.


그런데도 죽지 않았다. 세 번은 죽고도 남았을 공격이었는데, 제일도 시엘도 경상으로 그친 상태다.


……죽일 마음이 없기 때문에?


왜 죽일 마음이 없을까.

죽이라는 지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은, 죽여봤자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상처는 입히고 있을까.

계속해서 상처를 입히면 제일과 시엘은 공격에 대응하느라 발이 묶이게 된다.


이런 대치상태를 만드는 이유는?

방해를 하면 곤란하니까.


무엇의 방해를?

세르지오 암살의 방해를.


“……너 이 새끼! 회사 소속 암살자구나!”


정답.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듯, 제일의 허벅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나이프 따위의 무기로 상처를 입힌 모양이다.


죽일 수 있는 상황과 능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부지시켜둔다.

아까부터 공격에 살의가 빠져있는 것이 영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암살 회사의 사원들은 업무가 겹친다면 동료 암살자라 해도 주저없이 죽인다.

업무가 겹친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죽일 필요가 없다.

수고가 들지 않는가. 누구도 공짜로 일해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라면? 귀중한 인재를 하나 죽일 수는 없다.

따라서, 어지간하면 사내의 암살자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게끔 업무를 배치한다.


그게 당연한 일이다.


신입사원에게 교육을 시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중견 사원으로 키워내자니 돈과 시간이 든다. 경험 있는 사원을 잃는 건 회사 입장에선 상당한 손해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암살자들끼리는 서로 죽이지 않게끔 유도를 한다.

죽인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노력은 해본다.


지금의 제일과 시엘처럼.

죽어서는 안 되는…… 10위권 내의 암살자와 경력 쌓인 접수계 직원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령을 내렸다.

적당히 부상만 입혀서 그 자리에 발을 묶어두라고.


‘하지만 누구지? 어떤 놈이 날 묶어둘 만한 능력을 가진거지?’


6,7,8위부터 그 아래 15위까지의 능력은 알고 있다.


“헬포드가 5위였지?”

“아, 응.”


먼 나라의 왕족 겸 암살자로, 갖은 최신예 장비를 총동원하여 과학과 돈의 힘으로 사람을 죽이는 비효율적인 암살자다.


<특권>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예외로 친다.


4위부터 2위까지는 능력을 모른다. 사측에서 꽁꽁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카달로그 등으로 얼굴은 봐두었지만…….


“레디…… 일리는 없고.”


그 작자라면 이런 쫌생이같은 방법을 쓸 것도 없이 제일의 앞에 바로 나타나 손가락으로 이마를 한번 밀고 말 것이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제일, 나쁜 생각 하면 못 써요.” 하고 다그치겠지.


그러면 한 일주일간은 끙끙 앓아눕게 되겠지. 끙끙 앓는 내내 극진한 간호를 해주면서 도덕적인 인간상이란 무엇인지 설교나 해댈 것이다.


회사의 명령을 따를 위인도 아니기도 하고.

오케이, 레디가 앞을 가로막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니 일단 안심했다.


“……별 수 없나. 시엘, 네가 해봐.”

“이 타이밍에?”


그렇게 되물으면서도 시엘은 착실하게 자신의 <특권>을 발동시켰다. 제일과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흰색 눈동자의 반칙성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공기 중의 미생물조차 사멸해버리는, 세균보다 작은 바이러스조차 죽음에 이르게 하는 최악의 능력이 휴게실을 뒤덮었다.


부서진 의자와 책상이, 자판기가 원래의 형태를 잃고 재가 되어 바스라진다.


“숨참아, 제일.”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능력이 발동되는 동안에는 산소조차 쉽게 들이쉴 수 없다.


적이 어떤 능력을 가졌건, 무슨 짓을 하건, 이것이 발동되는 동안에는 다가올 수 없다,

이는 죽음을 부여하는 사신과도 다름없는 힘이다.


“……컥!”


능력을 유지하던 시엘의 몸이 크게 기울어졌다. 얼굴을 감싸며 넘어지는 그녀의 허리를 받쳐준 제일이, 빠르게 그녀를 눕힌다.


“시엘, 얼굴 만지지 마! 거머리가 붙었어!”


눈꺼풀을 당했다. 소형 거머리 세 개가 눈꺼풀에 박힌 채 출혈을 일으키고 있다.

손톱으로 집어 뽑아낸 다음, 그녀의 시력이 무사한지를 점검했다.


“손가락 보여? 이게 몇 개야!”

“아니, 됐어. 눈은 멀쩡해.”


“아니 몇 개냐고!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세 개.”


“좋아, 눈은 무사하군.”

“아윽!”


제일이 벌떡 일어섰고, 시엘의 뒤통수가 바닥과 부딪쳤다.


쿵 하는 둔중한 소리에 이어 시엘이 가볍게 바닥을 굴렀고, 제일은 무기를 수납한 다음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이 이상 싸울 마음이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야, 항복! 우리가 졌어! 그러니까 그만 괴롭혀라!”


방법이 없다. 혼자뿐이었다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끝까지 싸우려들었겠지만 이대로 있다간 시엘까지 위험해진다.


“듣고 있어? 항복이라고, 항복! 안 까불고 시키는대로 할테니까 그만 괴롭혀!”


손톱만한 꿍꿍이도 없이 제일은 무조건 항복을 내세우며 적의 공격을 받아들였다.

말하는 사이 몇 개나 되는 거머리들이 자기 몸에 붙었지만 빼내려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


“젠장…… 안 들리나.”


상대의 능력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니 자기 말을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미안, 시엘. 조금만 참아라.”


전투가 길어질 것을 예상하며 시엘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려는데, 바닥에 누운 그녀의 얼굴 옆에 한 장의 종이쪽지가 떨어져 있었다.


『정말?』


언제 이런걸? 공격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낌새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새삼 적이 가진 능력이 한층 더 두렵게 다가온다.


“정말이고말고! 아니, 정 의심되면 이 녀석만 따로 데려가줘!”


제일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에게 있어서 시엘은 살아 움직이는 목적과도 같다.


시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살아가는 의미를 송두리째 잃게 되며, 암살회사에 입사한 것이나 아니타의 죽음, 레디의 제자로 들어간 것 모두가 헛수고로 돌아가게 된다.


팔랑.


공기 중에서 종이쪽지가 창조되기라도 한 것처럼, 제일의 눈 앞에 나타나 하늘하늘 낙하한다. 지면에 닿기 전에 그것을 잽싸게 캐치하여 읽어보니.


『못 믿겠는데.』


펜으로 휘갈겨 쓴 짧은 문장이 보였다.


“이런 젠장! 좀 믿어달라고! 어떻게 하면 믿을건데!”


그 말을 뱉은 직후에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손등을 더듬어보니 소형 거머리가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어느새 쥐고 있던 종이쪽지의 내용물도 바뀌어있다.


『자기 무기를 꺼낸 다음 본인의 가슴을 향해 겨누고 큰 소리로 셋을 세라.』


그야말로 신과 같은 재주다.

스스로는 느끼지도 못했던 사이에 결과만이 도출되어 있다.


부드러운 투의 문장과는 달리,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며 제일이 나이프를 쥐고 자신의 가슴에 칼끝을 갖다 대었다.


“하나!”


제일의 입이 떨어지면서 휴게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자그마한 그림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입을 쩍 벌린 제일과 눈을 마주친다.


나타난 그림자는 눈을 질끈 감고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다가 바닥에 깔린 재를 밟아 벌러덩 미끄러지고 만다.


“와악!”


엉덩방아를 찧고서는 눈물을 그렁이며 “히잉…….” 하는 소리를 낸다.

엉덩이에 묻은 재를 탈탈 털고서는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일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이영차.”


나이프를 쥔 제일의 손을 양 손으로 힘겹게 민다.

칼끝이 몇 미리정도 전진해 가슴을 좀 더 깊게 찌르지만 치명상에 달하지는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쪽지를 주워다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는, 새 메모지를 꺼내어 새 문장을 적어 제일의 이마에 찰싹 붙였다.


접착제가 붙어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것은 그 자리에 고정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끄응…… 차!”


바닥에 누운 시엘의 옷깃을 붙잡아 그 몸을 질질 잡아당긴다.


찌익……!


목덜미 부근의 천이 찢어졌고, 제 힘을 못이긴 그림자가 또 한번 발라당 넘어진다.


“끄응…… 차!”


옷을 당기는 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어깨를 두 팔로 감아 질질 잡아끌었다. 셔츠가 반쯤 벗겨지고 배꼽이 노출된다.


십 수분동안을 씨름한 끝에 시엘의 몸이 밖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그림자는 주머니에서 케이블 타이를 꺼내어 시엘의 손발을 구속한 후, 천으로 된 안대와 재갈을 물렸다.


“아, 아차차!”


문을 닫는 걸 잊었다.


“됐어. 이제 움직여도 돼, <퀸>.”


자신의 <특권>에게 명령을 내리는 그림자는.

캐시 켄트보다 조금 더 어린 나이로 보이는 소녀였다.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


제일이 따끔한 아픔을 느끼며 황급히 손을 빼냈다.

그냥 갖다대기만 했던 나이프가 어느새 자신의 가슴을 조금 찌르고 있었다.


“무슨!!”


이번에도 죽을 뻔 했다. 구토가 나올만큼 끔찍한 능력이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농락하기 위해 작정을 한 것 같다.


바닥이 없는 죽음의 늪을 한 발짝씩 걷는 기분을 느끼며 제일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종이쪽지를 주웠다.


『이 사람은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거기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뭐?!”


그 말대로 과연, 시엘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어떤 능력이야 대체…… 감도 안 잡힌다고…….”


공포 외의 어떤 감정도 들지 않는다.


시커멓고 거대한 괴물의 입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관찰하는 시선이 느껴져 피부에 돋친 소름이 가라앉질 않고 있다.


<특권> 사용자들의 싸움에서는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고 그 약점을 찌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겠다.

끈적이는 혀로 등을 핥는 감각을 느낀다.

이렇게나 앞이 안 보이는 상대는 처음이다.


“……하지만, 시엘을 빼냈으니 됐어.”


무기를 똑바로 쥐고서 전투 자세를 갖췄다.


“미안하지만, 항복하겠다는 말은 취소다.”


『이 거짓말쟁이!』


친절하게도 종이쪽지가 답장을 대신해준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너 대체 몇 살이냐?”

『84.』


“뻥치지 마, 치매 걸린 영감쟁이라고?! 월터보다 연상이잖아!”


제일의 안면에 십 수개에 달하는 거머리가 꽂혔다.

피를 쭉쭉 뿜어내는 거머리들을 뽑아내고 <앨리스 인 체인스>로 상처를 지혈시킨다.


‘……능력이 꽤나 강화된 것이 느껴지는데. 열쇠구멍 하나로 내릴 수 있는 명령의 폭이 넓어졌어.’


예전 같았으면 이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새로운 열쇠구멍을 만들어내야 했겠지만, 이전의 명령이 아직 적용되어 있어서 출혈을 막아주고 있다.


『항복한다고 했잖아.』


베일에 싸여있던 적이 비로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다.

제일은 미소를 지으며 쪽지의 물음에 답변을 던졌다.


“적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바보가 어디 있냐?”

『시엘을 죽일거다.』


아무 말도 없이 거머리만 붙여대던 것보다 상황은 훨씬 좋아졌다.

완전한 미지였던 적이 공포스런 가면을 벗고 맨얼굴을 드러내주기 시작했으니.


“내가 바보로 보이냐? 정말로 죽일거였음 진작 죽였겠지. 너, 우리 회사 소속 암살자 맞지? 회사의 명령으로 나와 시엘을 여기에 붙잡아두려는거지?”


대답이 없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답변할 의무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제일은 지금 어둠을 조각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지의 적을 멋대로 상상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었지만, 제일의 지론은 완전히 달랐다.


보이지 않는 적의 모습을 가상으로나마 확립한 다음,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는 행동거지를 통해 그 실체를 덧대고 빼는 전투를 선호했다.


실제로 적중률은 높은 편이다. 적의 형태는 아마도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어린애.

랭킹은…… 썩 높지는 않을 것이다. 이토록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걸로 봐서는 확실하다.


“<블러디 발렌타인>의 발동준비 시간을 고려하면 시간적 여유는 몇 시간가량 남아있어. 그 사이 널 쓰러트리고 동료들과 함께 세르지오를 처 죽이러 갈거다.”


이번에도 대답은 없다.

입을 닫기로 결심한 걸까?


“내가 봤을 때 너는…… 랭킹 500위 이하의 잔챙이 암살자. 의뢰다운 의뢰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어. 사람을 죽여본 경험도 거의 없고, 거머리를 무기로 쓰는 건 상대를 그 자리에 멈춰 세우는 능력이기 때문이겠지.”


정답을 확인하기 위해 추론을 담아본다.

여전히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당연하다. 여기서 대답을 하는 바보가 있다면 진짜로 암살자 실격이다.

제일도 답변을 기대하며 말을 건 것은 아니다.


말을 거는 사이에, <앨리스 인 체인스>를 늘어트려 놓기 위해서다.


“시엘을 데려가서 어쩌겠다는 거야, 그 녀석이 <이방인의 노래>를 쓰면…… 너는 한 순간에 죽어버릴수도 있어. 알아?”


대화가 도중에 잠깐 끊겼던 것은 그 사이에 또 거머리가 붙었기 때문이다.

그놈의 거머리, 많이도 갖고 있구만.


제일이 히죽 웃으며 뻗었던 사슬을 회수했다.

녀석이 드디어 꼬리를 드러냈기 때문에.


거머리는 붙었지만 사슬은 적을 감지해내지 못했다.

분명 감지해내지는 못했지만…….


무언가가 건드리고 가기라도 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이야…… 나도 엄청 놀랐다니까. 무슨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있나 했더니만…….”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설마, 시간을 멈추는 <특권>이라니. 하이퍼 오버스펙이잖아.”


맨 처음에는 투명해지는 능력, 혹은 존재감을 없애는 능력, 혹은 인지능력을 어그러트리는 능력 등을 가정했었다.


이런 능력이라면 사용자가 같은 공간 안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적에 바닥에 펼친 사슬이 감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지 못했으니 같은 공간 내에 머무르는 능력은 아니다.


그 다음은 원거리에서 공격을 가하는 에너지 방사 능력이거나 이동능력일거라고 생각했다.


공격을 당하는 순간까지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으니 그렇게 판단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이걸 기각한 이유는 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감시카메라는 부쉈고, 방은 창문 하나 없는 공간이다.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목표만을 정확히, 그것도 죽지 않게 배려하는 공격은 불가능할테니 이것도 이각했다.


유일하게 밖과 통하는 길은 문을 열고 나가는 것 정도인데 저 문을 열고 들어올 정도라면 둘이 모를 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초고속이동.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스피드로, 공격당했던 것조차 깨닫지 못하도록 빨리 움직이며 사슬조차 감지할 수 없게끔 공격을 가해왔다는 이론을 밀어붙이려 했다.


그래서 시엘에게 <이방인의 노래>를 사용하게 했던 것이다.

바닥을 재투성이로 만들기 위해서.


“아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한 번 넘어졌었지? 그 다음엔 시엘을 질질 끌고갔고 말야.”


바닥에는 엉덩방아를 찧은 흔적에서부터 시엘의 몸이 질질 끌린 흔적.

그리고…… 상대방의 조그마한 손자국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초고속 이동이라면 넘어진 순간 정지한 상태가 되어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다리 높이의 사슬을 건드리고 간 것처럼 흔적을 남겼으나 사슬은 아무것도 감지해내지 못했다.


“이상의 정황증거를 통해…… 너의 능력을 파악해냈다. 시간정지의 <특권> 사용자.”


잘난 듯, 있지도 않은 안경을 쓸어 올리는 시늉을 한다.

한 장의 메모지가 눈 앞에서 팔랑이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건데?』

“응, 그러게. 알았다고 해서 대책이 생기는 건 아니네.”


제일을 비웃기라도 하듯 손톱 끝에 자그마한 거머리가 꽂혔다.


“끄악……!! 이 망할!!”


죽일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았다. 상대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기도 했다.


그게 고작이다.


어떤 패널티와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멈출 수 있는 기한이나 횟수에 대해서도 파악해내지 못했다.


“물론…… 그 외 거의 모든 것을 파악한 상태지만.”


자신의 다리에 상처를 내고는 열쇠를 집어넣었다.


“<앨리스 인 체인스>, 내 각력을 강화해라.”


명령을 내린 직후 총알처럼 튀어나가 휴게실의 문 방향으로 이동했다. 초고속이동 능력을 지닌 <특권> 사용자에게 버금갈만한 가속력이다.


“슛!”


강화된 각력을 그대로 이용하여 문짝을 걷어찬다. 폭발음에 가까운 굉음과 함께 문짝이 복도로 날아가 버린다.


그것을, 그녀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퀸>.”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