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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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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다.


나영이 아빠




대변을 대신하는 주머니를 떼기 전, 아이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매일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친구들과 놀다가 괴물에게 쫓기는 꿈이었다. 친구들을 모두 숨겨놓고는 마지막에 자신만 괴물에게 붙잡혀가는 꿈에 괴로워했다.


하루는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나쁜 아저씨 징역 얼마나 받았어?”


징역. 또래의 아이들 중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단어일까?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아프게 한 그놈의 소식을 묻는 것이다. 나는 아이의 다음 말을 듣고 두려움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2년 받았으니 10년 조금 넘게 더 감옥에 있어야 나와.”


“쳇!”


사회에 대한 짜증일까? 아니었다. 공포였다.


“10년이나 남았잖아.”


“그때까지 내가 힘을 길러야겠다.”


억장이 무너지는 이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부모라면, 나와 같이 딸을 가진 아빠라면 알 수 있을까? 얼마나 끔찍했으면 그놈의 출소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12년. 여느 다른 사람에게는 가벼운 시간일 수도 있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다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하는 지독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만약 놈이 더 많은 형량을 받았더라면 아이의 스트레스는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 아이는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에 얼마나 무서움을 느끼고 있을까? 1년이 지나면 ‘9년밖에 안 남았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몇 년밖에 안 남았네.’가 아니라 ‘아직 몇 년이나 남았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엄벌이어야 당연하지 않은가?


“아빠가 힘은 없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게. 다른 친구들이 이런 일로 고통을 겪지 않도록 아빠가 막을게.”


나는 평범한 아버지다. 나는 아이에게 약속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도, 우리 아이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아이는 성폭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처를 받았다. 상처도 상처이지만 기억이 집요하게 우리 아이를 괴롭힌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성폭행이라는 범죄에 대해서. 초등학교 저학년 딸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성폭행이란 단어라니. 나는 살이 떨려오는 증오심을 겨우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 나쁜 아저씨는 남자고 너는 여자이기 때문이야. 성이 다르기 때문에 성폭행이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몇 번이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물어볼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수십 번도 더 다짐한 물음이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막막함을 느꼈다.


일이 일어난 뒤, 아이가 한 형사 언니를 알게 되었다. 아이는 형사 언니를 참 좋아한다. 자신이 형사를 알고 있다는 것에 안전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주위의 따뜻함이 아이에게 많은 용기를 심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따뜻함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가 막힌 일들도 많았다. 우리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담당 의사를 찾아갔었다. 정신과 의사는 자신은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상태를 진단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아이를 치료하고 계신 건가요?”


“아니요.”


“아니라니요?”


“저는 치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단을 하는 사람이지.”


우리 아이를 관찰 대상으로 매도해버리는 의사의 어이없는 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 뒤로 다른 곳들을 돌아다녔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에게 정상적인 삶을 되돌려주고픈 마음만 가득 차 있었다. 아마 어느 아버지라도 나와 같았으리라.


단체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아이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찾은 곳들 가운데는 이익만을 채우는 집단들이 많았다.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며 아이를 위한 치료가 목적인 곳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였다. 웃음이 나왔다. 당연히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는 기관들이 정말 치료를 하는 것인지 수소문하고 다니는 나. 간판만 치료를 목적으로 내세웠지 그들은 국가에서 보조받는 돈만을 탐하려 했다.


한 기관에서는 자신들이 치료를 돕고 나라에 지원을 요청할 테니 다른 기관에서 치료를 받지 말라는 경고 비슷한 말을 했다. 2주에 한 번 치료한다 했다. 2주에 한 번이라. 우울증만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진료를 하고, 단순 스트레스성 정신 질환도 일주일에 한 번의 진료가 기본인데……. 우리 아이가 2주에 한 번의 치료만으로 충분하다 말하는 그들을 보니 분노가 나를 가득 채웠다.


아이를, 우리 가족의 아픔을 이용하여 배를 채우려는 그들을 바라보니 역겨움이 밀려들어왔다.


결국 나는 서울에 위치한 해바라기아동센터라는 곳에 아이를 맡겼다. 돈을 탐하는 수많은 무리 중 이곳만은 진정 아이를 배려하였다. 이곳의 이름을 밝히는 이유는 우리 가족과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있었다. 해바라기센터는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소관이다. 헌데 각 시에 위치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끝에 이곳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서울까지. 쉽지 않은 거리다. 아이를 위해서 온다고는 하지만 정말 먼 거리다. 나는 괜찮다. 하지만 아이는? 작은 공간도 크고 멀게 느껴지는 시선과 체력을 가진 것이다. 더군다나 화장실은 하루 수십 번도 더 가야 되는 우리 아이에게는 너무도 힘겨운 일이다. 장시간 이동을 할 때면 피곤이 밀려오고 차 안에서 멀미를 하기 일쑤다. 아이를 생각하는 기관이라면 적어도 시에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성폭행을 담당하는 지정 병원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에서도 딱 한 군데뿐이다. 경기도나 다른 지방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이 그 먼 거리를 다니며 치료할 수 있는 정신적 여건이 된다 생각하는가? 그저 탁상공론에 그치는 처사가 아닌가? 보여주기 위한 구색만 갖춘 정책 아닌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이따위 무모한 정책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소재원 작가의 작품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대변하고 희망을 함께하고자 한다는 것이 가장 크지만, 다시는 우리 아이와 같은 아픔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바람과 더불어 정부의 정책 변화, 그리고 강도 높은 처벌을 요구하기 위함이다. 또한 우리 가족과 같은 아픔을 가진 다른 이들에게 돌파구를 찾아주고 싶어서.


우리 아이에게 끔찍한 고통을 가한 그놈은 재범이다. 다른 범죄자들 역시 재범이 많다. 그들은 점점 치밀해진다. 우리 아이의 일을 꺼내고 싶진 않지만, 죽어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엄벌을 요구하기 위하여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심정으로 이야기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아이에게 약속했다. 두 번 다시 아픔을 겪는 친구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 그래서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성범죄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


사건 직후 아이가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자마자 엄마를 부르며 말했다.


“엄마! 범인 도망가기 전에 잡아!”


아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경찰에게 급하게 이야기했다. 경찰은 나중에 이야기하라며 아이를 달랬지만, 졸려서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계속 그 잔인한 순간을 이야기했다. 또다시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의지였다. 아직 아름다운 것만 봐도 모자란 우리 아이, 잠을 참지 못하는 어린아이. 그런 아이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지독한 상황을 말하는 모습을 보는 아비의 마음이 어떤지 상상할 수 있을까?


경찰은 다음 날 몽타주를 만들었고 여러 용의자를 선별했다. 용의자 사진을 보고 아이는 그놈을 지목했다.

그놈은 이미 용의 선상에 올라와 있었다. 그러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지문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신히 하나의 지문을 찾아내 그놈을 처벌할 수 있었다.


성범죄자. 그들은 재범일수록 증거인멸에 능숙함을 보인다. 여타 다른 범죄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은 감옥에서 검사와 변호사처럼 많은 법적 지식을 공부하고 출소한다. 그들의 범죄는 날로 치열해지고 미해결 성폭행 사건은 점차 늘어난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종신형이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나라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 우리나라에서는 성범죄에 너무 관대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나라에서 지원하는 감옥이라는 집에서 편안하게 밥을 먹고 살아간다. 나는 그들의 사회적 영구 격리를 주장하고 싶다.


나는 아내와 함께 뉴스를 시청하지 않는다. 아내는 비슷한 사건을 보면 언제나 중얼거린다.


“왜 저놈들 밥 먹여주고 살려주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렇다. 왜 저런 놈들을 편안하게 생활하도록 두는지. 부모의 증오와 분노, 아이의 상처를 안다면 정말 저렇게 편안하게 둘 수 있는지. 왜 인권이라는 명목으로 한 아이의, 가족이라는 우리의 인권은 철저하게 외면당하는지!


최고 형량을 사형으로 한다면 어떨까?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 때문에 그놈들의 심리를 공부했다.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짓을 한 짐승이지만, 그놈들 역시 죽음만은 치가 떨리게 두려워한다.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온다면, 과연 그들이 쉽사리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백 퍼센트는 아니겠지만 분명 범죄는 줄어들 것이다. 동시에 상처받는 아이들 역시 줄어든다는 공식이 성립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위해, 선량한 국민들을 위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의 안전을 지켜줘야 하는 국가는 당연히 법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소재원 작가와 이야기하면서 동감했던 말이 있었다.


“아버님, 살인은 친구와 싸우다가도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범죄이지만 성범죄는 절대 우발적일 수 없는 범죄입니다. 계획 없이는 불가능한 범죄이기도 하며,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는 범죄입니다. 범행 대상을 물색할 때, 범행 대상을 끌고 갈 때, 허리띠를 푸는 순간, 바지 지퍼를 내리는 순간까지, 그들이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합니다. 술에 취해서 저지른 실수? 그럼 음주운전 역시 실수가 된단 말입니까? 술에 취했다고, 판단 능력이 조금 흐려졌다고 해서 허용할 수 있는 범죄입니까? 술이라는 것에 의존한 그들에게는 더욱 강력한 처벌이 내려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 역시 크게 공감했다. 소재원 작가는 작품의 출간과 함께 법 개정을 촉구하는 여러 행사를 가질 거라 말했다. 나는 소재원 작가를 응원할 것이다.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어떤 아이의 부모는 모두 지워버리고 새롭게 살고 싶다 했다. 아이의 기억을 지워주겠다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기억은 영원히 존재한다. 그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이겨내야 한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라면 이겨내야 한다.’


상처에는 딱지가 생기고 흉터가 남게 된다. 하지만 더욱 단단한 새살이 돋아난다. 나와 같은 아픔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흉터, 기억은 남는다. 그렇다면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아이와 함께 많은 것을 이겨냈다. 지금은 여느 다른 아이들과 같이 행복해질 거라는 꿈에 부풀어 있기도 하다. 우리 가족과 같은 아픔을 가진 다른 분들도 반드시 극복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글을 읽는 분들께,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방관하지 않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적극적인 대처로 그놈들을 처벌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타인들은 피해자를 혐오하지 않고 보듬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사회적 관심만이 그들을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울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사랑으로, 관심으로, 아낌으로 우리가 함께하여 더러운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추신.

나는 앞으로도 이러한 일로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때는 무관심했지만 이제 깨달았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관심을 가진다면 많은 일이 변화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관심. 우리의 목소리가 높아진다면 법을 개정하는 일도, 아픔을 가진 이들이 그 아픔을 이겨내는 일도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고 절대적으로 믿는다.


내 일이다. 내 가족의 일이다. 내 딸의 일이다. 내 친구의 일이 될 수도 있고, 내 친구의 친구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우리의 일인 것이다. 우리의 관심. 그것으로 우리는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다 굳게 믿으며 싸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보여줄 것이다. 그놈은 결코 우리 가족의 행복을 빼앗을 수 없었다는 것을.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