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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도시의 연인] 1. 미스터리 빌라(Villa dei Misteri) 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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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스터리 빌라(Villa dei Misteri) 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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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스터리 빌라(Villa dei Misteri)


I-1


헤르쿨라네움 문을 나와 묘지 길로 5백 미터쯤 올라가면, 미스터리한 빌라가 한 채 있다. 아름다운 금발의 사체가 발견된 장소는 그 빌라를 기점으로 외과의사 집과 삼각 꼴을 이루는 지점이었다.


사체는 갈리아(프랑스)에서 온 금발의 창녀였는데, 얼굴에 찍힌 가짜 점 때문에 그녀의 이름이 쿠쿨라로 밝혀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폼페이 창녀 중 삼분의 일이 금발에 가짜 점을 찍었고, 그 점의 위치를 바꿀 때마다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죽은 쿠쿨라는 루파나레(유명한 창녀촌)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고급 창부였다. 그녀가 가슴에 두르고 있던 가죽띠 안에서 가느다란 향수병이 나왔다.


양쪽 팔에는 용수철처럼 둥글게 똬리를 튼 뱀 모양의 금팔찌가 채워져 있었는데, 뱀의 눈에는 커다랗고 붉은 루비가 박혀 있었다. 사체가 발견된 시간에는 보슬비가 내렸고, 사체 주변에 무수한 개의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단서는 그것뿐이었다. 수상한 게 있다면, 죽은 상태에서도 전혀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쿠쿨라의 미모와, 사체 발견 장소가 묘지와 빌라에 근접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 의회는 긴급회의를 열었다. 폼페이 시장인 폴리비우스는 머리를 싸매고 생각에 잠겼다. 사건 현장과 제일 가까운 미스터리 빌라가 집정관*인 움브리키우스의 집이기 때문인데, 7월에 선거를 앞둔 상황이라 자칫하면 정치적 음모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폴리비우스 자신은 또 다른 집정관인 스카우루스와 결탁한 사이였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폴리비우스는 젊고 말재간이 좋은 행정관 포이부스를 현장으로 파견하면서 병사 두 명과 개 두 마리를 같이 보내주었다. 행정관은 그 당시 창녀들의 명단을 갖고 있었다.


잠시 후, 포이부스는 미스터리 빌라에 도착했다. 그는 예순 개의 방이 있는 대저택에 들어서면서부터 알 수 없는 기운에 압도당했다. 안뜰의 정원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크고 웅장한 데다, 큰 방의 벽 전면에 그려진 벽화 속의 현란한 여신들 때문이었다.


특히 바크후스의 어머니 세멜레가 유피테르(제우스)와 결혼하는 장면에서 탄생한 세멜레의 엉덩이는, 정말이지 프레스코화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녀의 엉덩이를 대하면서 숨을 제대로 쉬는 사람이 드물고, 폼페이 개들조차도 불규칙한 숨을 몰아쉰다는 소문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개를 데려온 두 명의 병사도 벽화 앞에서 입을 벌리고 섰다. 벽화는 스물아홉 명의 인물들이 갖가지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여신들의 배경인 붉은색이 말할 수 없이 신비롭고 아찔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집 안 분위기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속이 훤히 비치는 겉옷만 걸친 여성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애간장을 녹이되 헤프지 않으면서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요사스러운 기운이 흘러넘쳤다.


포이부스는 타블리눔(응접실)에서 집정관 움브리키우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여신들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폼페이에 떠도는 오래된 소문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벽화의 붉은색에 대해서 쑤군거렸는데, 그 소문은 떠돌이 화가들의 가벼운 입에서 시작되었다.


이 집 벽화의 빨강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야릇한 색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심장을 돌아 나올 때의 피 색깔이라는 말도 있고, 닭의 간이라거나 모기의 피, 심지어 귀신의 피라는 소문까지 있었다. 또 누구는 공동묘지에 묻힌 시체를 꺼내 그 피를 쓰면 그런 빛깔이 나온다는 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포이부스는 저도 모르게 빨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때 움브리키우스가 투니카(허리에 끈을 매는 헐렁한 옷으로, 신분이 높으면 깃이 보라색으로 된 투니카를 입었다)의 앞섶을 여미면서 응접실로 바삐 들어섰다. 포이부스가 벌떡 일어나 그에게 경의를 표했으나, 움브리키우스는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이보게, 이건 음모일세. 이번 선거에서 날 밀어내려는 음모가 분명해!”


“죄송합니다. 그래도 수사에 도움을 주시면 선거에서도 유리하실 겁니다. 어젯밤에 이 댁에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고 들었습니다. 죽은 쿠쿨라도 손님이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움브리키우스는 갑자기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른 손은 쿠쿨라의 사체가 있던 방향을 가리키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 말(馬)의 주둥이에, 저 죽은 새의 깃털을 꽂아놓고 수작을 부리는 거라니까.”


“새의 깃털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움브리키우스는 다시 탱탱한 제 얼굴을 가리켰다.


“이 말(馬)은 초식동물이라네.”


그는 마치 모욕이라는 실로 짠 옷을 걸친 듯이 온몸을 붉게 물들이며 떠들었다.


“글쎄 나는 초식동물이라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일세.”


“무슨 말씀인지? 집 안을 살펴보도록 허락해주시면…… 아, 절대로 선거에 지장을 드리진 않을 겁니다.”


포이부스는 데려온 병사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그러자 대기해 있던 병사가 개들을 집 안에 풀어놓았다. 윤기가 흐르는 새카만 털의 개 두 마리가 꼬리를 옆으로 흔들면서 집 안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움브리키우스는 안색을 붉게 물들이며 다시 말했다.

“전날 밤에 정치적 회합이 있었고, 모두 자정이 되기 전에 돌아갔다네.”


그때였다.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돌아다니던 개 한 마리가 털썩 쓰러졌다. 목쉰 소리를 내지르더니 곧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개 입에서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뿜어져 나왔다. 다른 개 한 마리가 벽화를 향해 맹렬하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두 병사는 현관에서부터 개들이 움직인 동선을 다시 한 번 왕복하면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벽화를 향해 미친 듯이 짖던 개가 벽화로 달려들더니 여신들을 마구 긁어대는 것이었다.


움브리키우스는 다시 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붉은 얼굴을 가리켰다.


“그래, 이 초식동물이 육식을 했단 말인가? 난 남색을 밝힌단 말이오. 그래서 일부러 허풍을 떨었던 거네. 저 벽화 속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고 뒹굴고 핥는다고 떠들었지. 그게 뭐 잘못되었나?”


벽화를 핥던 개가 이번에는 콧등으로 여신의 발뒤꿈치를 비벼댔다. 곧이어 그 개도 입에 거품을 물었다.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더니, 뒤로 발랑 나자빠져 바동거렸다. 개를 데려온 병사가 아가리를 들어 올려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병사는 개를 눕히고 일어나서 포이부스에게 말했다.


“독극물입니다.”


그 말을 듣던 집정관 움브리키우스는 벌컥 화를 냈다.


“아니, 독극물이라니? 지금 다들 보았지 않나?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네.”


포이부스는 흥분한 움브리키우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집정관님, 독살 의혹이 있는 사체는, 새에게 먹여 조사해보면 곧 압니다. 또한 심장에서 잘라낸 조직을 불에 태웠을 때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거나 주홍색을 띠면, 사체 속에 독이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화장을 해도 심장이 타지 않으면, 그 또한 독살로 봅니다.”


온 집 안의 노예들이 모두 벽화 앞으로 모여들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움브리키우스가 벽화 앞으로 다가가자, 포이부스가 소리쳤다.


“벽화에서 떨어지십시오. 거기에 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하셨던 말씀을 다시 한 번 해주시겠습니까? 그런 말씀을 누구한테 했다는 것인지? 부탁드립니다…….”


움브리키우스는 목욕탕에서 갓 나온 사람처럼 붉고 탱탱한 자기 얼굴을 양손으로 떠받쳤다. 그러고는 회상하듯이 말했다.


“뭐, 선거 앞두고…… 이번 집정관 후보들이 우리 집에서 여러 차례 비밀 회합을 가졌다네. 바로 어젯밤에도 루파나레 창녀들을 불러서 연회를 했네. 왜냐하면 난 내 집 노예들 옷을 벗기는 사람이 아니라네. 아무튼 자정 전에는 모두 돌아갔네. 술에 취한 창녀들이 언제 갔는지는 난 모른다네…….”


“그분들과 무슨 얘기를 하셨습니까?”


“사실 선거 얘기는 하지 않았네.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것은 낮에 이미 합의를 보았으니까…… 아, 그렇지. 우리 집 벽화 여신들이 모두 내 애인이라고 떠들었네. 그 말은 뭐,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어쨌든 그 여신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진다고 말했네. 게다가 은밀한 곳을 애무하면, 살아 있는 여자들한테선 받을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고 말이지…….”


“그쯤이면 충분합니다. 집 안의 사람들을 모두 벽화 앞으로 모이게 해주십시오. 아, 그리고 그 벽화에 손을 대선 안 됩니다.”


그때 구경하던 여자 노예 하나가 뒤로 발랑 자빠졌다. 곧이어 다시 일어난 여자 노예는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는 침모의 딸인 포르투나타였는데, 웬일인지 개가 발작을 시작할 때부터 같이 몸을 떨었다고 했다. 포이부스는 재빨리 두 병사에게 눈짓을 했다.


포이부스는 빵 속에 독이 들었을 경우까지 생각했다. 결국 어제 빵을 구워 온 제빵업자 트레비우스가 새로운 용의자로 떠올랐고, 사체 주변에 널려 있던 무수한 개 발자국 때문에 폼페이의 모든 개들이 용의자가 되었다.



* 로마처럼 이두 정치였던 폼페이에서는 집정관 두 명이 최고로 높은 지위이고, 그 아래로 두 명 이상의 행정관들 그리고 군인들이 정치에 참여했다. 이 소설에 쓰인 움브리키우스와 스카우루스는 폼페이 멸망 당시 현존하던 집정관 이름이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