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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보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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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

  • WHITE



어느 날 저녁, 일급 온천장 여관 K의 큰 식당에 몇몇 신사 숙녀들이 모여 있었다. 희미한 등불만이 빛을 밝힌 식당이었다. 이미 50대 나이에 접어들어 제법 위엄 있는 풍채를 지녔으면서도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남자인 추밀 고문관 아르보가스트가 막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다.


아르보가스트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 덕분으로 금세공사에서 당시에는 궁정 재정상이라고 칭해진 직위에까지 초고속으로 오른 인물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상류층 간에는 그 일을 우선은 궁중과 관련된 아주 근거가 없지도 않은 한 가지 유령 이야기와 엮어서 볼 수밖에 없다는 기이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던 참에 지금 화제가 유쾌하게 그리로 돌아가는 바람에, 좌중은 저절로 그 주제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되었고, 온갖 농담과 변죽을 울리면서 추밀 고문관을 바짝 졸라댔다. 그래서 결국 추밀 고문관은, 여러분이 들을 이야기는 황당무계한 것이며 다 듣고 나면 내가 결국 허무맹랑한 동화로 여러분을 속이려 들었다고 비난을 퍼부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분 뜻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한편으로는 내 아내가 오늘 일찍 들어간 것이 유감이로군요. 여러분이 듣게 될 이야기는 나의 삶의 일부이자 내 아내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부부가 어울려 참여했을 것이고, 어쨌든 아내는 이야기를 묘사하는 내 방식에 대해 가장 확실한 견제자 노릇을 했을 테니까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탄없이 사실을 충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자, 시작해 봐요! 어서요!”


몇몇 귀부인들이 외쳤다.


“우리는 그렇게 고리타분하지 않아요. 그리고 의심이 드는 사람은 누구든 나중에 얼마든지 비판을 하라고 해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이 왕국의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인 에글로프스브론에서 나의 부친은 착실한 금세공사로 살았습니다. 외아들이었던 나는 일찍이 부친한테서 그 기술을 배우도록 되어 있었지만 부친은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그 도시에서 제일가는 금세공사인 나의 사촌 크리스토프 올트 씨에게 수업료도 내지 않고 내가 제자로 받아들여진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지요. 난 그 일이 아주 재미있어서 열심히 배워, 5년 후에는 그 작업장에서 두 번째 도제가 되었답니다.


그사이에 마음씨 좋은 나의 모친도 돌아가셨어요. 남들이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면 곧잘 혼자 집에 남아 구석 창가에 서서 어머니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는 그 옛날 어머니에게서 받았던 특별한 선물 하나를 그 어떤 경외심을 갖고 꺼내 보곤 했습니다!


그 날은 견진성사堅振聖事가 있던 날이었지요. 나는 저녁 예배 후에 다른 사내아이, 계집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가?커다란 꽃다발을 안은 축제의 무리가 성문 앞까지 행진하는 것은 우리네 관습이지요?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어머니는 구석의 장롱에서 잘 봉인이 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어요. 그 상자 위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지요.


프란츠 아르보가스트가 견진성사를 받는 날에 꼭 전해 주시오.


어머니는 그 상자가 누구한테서 온 건지 어머니 자신도 정말 모른다고 하셨어요. 어느 날 아침 부엌 아궁이 위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내가 갓난애였을 때였다고 했습니다. 나는 기대에 차서 가슴이 방망이질 쳤어요. 어머니는 내 손으로 직접 포장을 풀라고 했어요.


그 안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아십니까? 검은 코도반 가죽으로 제본된 작은 책 한 권이었지요. 책의 세 옆면은 초록색이었고 종이는 눈처럼 흰 양피지였어요. 많은 격언과 시구가 담겨 있는데, 아주 섬세한 솜씨로 거의 인쇄를 한 것처럼 써 내려간 육필이었습니다.



보물 상자


부활절에 태어난

한 사내아이를 위하여,

일반적인 교훈을 담은 100가지의 지침

상업상의 특별한 경우들을 위한 부록

도로테아 소피아 폰 R.에 의해서

성실히 작성되었음



솔직히 기대감에 차 있던 나는 내심 약간 실망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놀랍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두 손을 모아 쥐고 외쳤습니다.


“오, 하느님! 사실이란다. 그래, 너는 부활절 주일 정오 12시에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보았지!”


어머니는 탄성을 발하고 나를 축복해 주었어요. 그러고는 말씀하셨지요.


“아들아, 네가 하느님을 잘 믿고 이 책의 가르침을 깨달으면, 네 인생에 많은 행운이 따를 거란다.”


그러고 나서 이내 어머니는 내 여행 보따리를 꾸리며 그 기이한 보물 상자를 보따리에 가장 안전하게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내가 지켜야 할 의무들을 명심하라고 당부하셨어요.


나는 곧 그 경구들을 첫 구절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모조리 외웠어요. 그렇긴 해도 그 후 당장 몇 해 동안 이 진귀한 소장품으로부터 별난 축복을 느꼈다고는 말할 수 없겠네요. 내가 막 술집과 무도장, 그리고 볼링장을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한 위태롭던 시절에도 나를 얼른 제자리로 되돌려 놓은 것은 그 100가지 지침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성실한 내 스승을 떠올린 것이었으니까요.


얘기가 나온 김에 말씀드리지만, 온갖 종류의 유혹들 가운데에서 보통 그 나이에 가장 흔하디흔한 유혹, 즉 여자의 성에 대한 호기심이 내게는 가장 위험성이 적었어요. 그래서 내 작업장 동료들은 그런 나를 끝없이 놀려 대었지요. 나는 곧잘 차가운 목석이라고 불렸어요.


그렇지만 나도 결국 착실한 다른 녀석들 누구나가 갖는 자기의 여자 하나 갖지 못한 머저리가 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몇 차례 적극적인 시도를 해서 서너 명의 계집애들을 연달아 품에 안아 보았어요. 그중에는 진짜로 나한테 홀딱 반한 제법 괜찮은 계집애도 두어 명 있었고요.


그렇지만 그건 별로였어요. 두 주일이 지나자 너무 지겹고 속으로는 역겨워서 울화가 치밀 지경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점에 있어서만은 내 보물상자의 교훈이 잘 지켜졌던 모양입니다.


“너의 첫 사랑, 너의 마지막 사랑”이 말을 나는 오로지, 때 이른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던 한 착하고 가난한 아이였던 나와의 어릴 적 사랑 이야기에만 연관시킬 수 있었습니다.


나의 사촌인 스승께서는 갈수록 큰 신뢰감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때로는 작은 출장 여행에 나를 파견했고, 스승 자신은 특별히 중대한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마침내 그 일을 내게 상의하게 되었답니다.


국왕 폐하와 알스터른 공주의 결혼식 때까지 공주비 전하를 위한 대관식용 장신구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스승께서는 더할 수 없이 명예로운 임무를 내게 맡겼던 겁니다. 다시 말해 그 중차대한 주문의 핵심 부분, 아름답고 젊은 왕비의 머릿결에 어울릴 육중하고도 섬세한 세공을 요하는 관의 제작을 대부분 내게 위임하려 했던 거지요.


도안이 완성되었고 궁정에서 인가가 떨어졌어요. 그러나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몇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그 지역에서는 몇 가지 보석들이 부족해 뜻대로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촌은 심사숙고한 끝에 내가 직접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보석들을 선별해서 가져오도록 결정했지요. 단지 어떤 방법으로 내가 가장 안전하게 여행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당시엔 우편 마차들이 지금처럼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어쨌든 두어 명의 상인들과 함께 처음 몇 정류장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사촌은 나에게 400개의 반짝이는 금화를 세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 금화를 괴나리봇짐에 단단히 챙겨 넣었고, 나 혼자 출발했지요.


이틀째 되는 날 마차가 갈 방향이 갈라지는 그람젠에서 나는 내렸고 마침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어요. 점심때까지 속절없이 비바람을 맞고 있다가 곰팡이 핀 판자 조각이 비바람을 겨우 막아 주는 마차 뒤쪽 구석 자리를 내주겠다는 그람젠의 마차 배달부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였습니다. 보아하니 유대인인 듯싶은 한 젊은이가 유일한 동행이었어요. 우리는 양모 자루들 틈바구니에 그런대로 편안히 자리를 잡았지만 단지 마차가 느려 보였습니다.


밤이 다 되어서야 슈빈트 마을에 도착했고, 유대인은 거기서 내렸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인 소도시 뢰스하임까지는 아직 세 시간이 더 남았었지요. 이제 나 혼자 어두운 구석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오래전에 이 지역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평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어느 유행 장신구를 파는 상인의 기이한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마차가 달리는 동안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게도 그의 장신구 상자의 서랍마다 홀랑 비어 버렸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탄 마차의 마부는 그런 얘기에는 애당초 관심도 없었어요. 하지만 나는 마차의 포장 틈새로 이따금 바깥을 눈여겨 내다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늘이 다시 맑아져서 모든 나무와 기둥들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고, 마차가 덜커덩거리고 삐걱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내 짐에서 손을 떼지 않았고 마부의 커다란 개를 보고 안심했어요. 그 사나운 놈이 이상하게 킹킹거릴 때면, 그저 그놈이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 모양이라고 불쌍하게 몇 번 생각했을 뿐이었어요.


“이제 15분만 가면 됩니다요, 나리!”


늙은 마부가 큰 소리로 말하며, 처음으로 철썩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덧붙여 말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평소에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먼 곳을 들르는 것이 제가 맡은 소임도 아니지요. 하지만 나리도 알다시피 항상 마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입죠. 자아.”



붉은 사자장은

24시간 열려 있습니다!



그 소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11시 30분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여관 앞에 마차를 세웠지요. 깨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어요. 그사이에 나는 느긋하게 마차에서 내 짐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어떻게 된 거지!


짐 보따리가 이렇게 가볍다니, 그리고 또 왜 이렇게 헐렁하담!


순간 나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황급히 여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반쯤은 잠에 취한 마구간 하인이 램프를 들고 비틀거리며 나오는 거예요. 나는 그에게서 또 다른 등을 잽싸게 받아 들고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마치 적군이 돌진하듯이 숨 가쁘게 괴나리봇짐을 덮쳤지요! 자물쇠는 잠긴 그대로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그런데 이럴 수가! 나의 금화가 사라진 겁니다! 나는 질겁했지요!


“안 돼,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나는 절망적으로 소리치며 보따리(그것은 내가 단지, 이를테면 왠지 애틋한 마음이 들어 괴나리봇짐에다 꾸려 넣은 것이었지요)를 뒤죽박죽 헤집고 잡아챘습니다. 순간 미친 듯한 불안에 사로잡힌 나는 그 작은 책자가 내 금화에 대고 마법을 걸었을 수도 있다고 여겼습니다.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마음에, 나는 그 시커먼 얼치기 책을 벽에다 던졌지요. 하지만 내가 짐작했던 마법은 삽시간에 사라졌습니다. 내 괴나리봇짐에 난 손가락 네 개 너비의 칼자국이 눈에 띄었던 겁니다! 그제야 나는 앞뒤 상황을 알았지요! 바로 그 유대인이 훔쳐간 거였어요!


정말이지 나는 밖으로 나가 이웃 사람들과 여관 안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우연히도 내 발이 그 하찮은 책에 부딪혔고 번개처럼 내 머리에 떠오른 게 있었습니다.


잠깐! 오늘이 혹시 성 고르곤의 날1이 아닐까? 기계적으로 나는 바닥에서 책을 주워 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종업원이 들어와 인사를 하고 뭘 마실 것인지 물어보았어요. 나는 말없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력을 찾아 벽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최근 것이오, 아니면 오래된 것이오? 83년산이오, 84년산이오?”


“당연히 최근 것이지!”


나는 달력을 염두에 두고 조급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올해 것으로! 빨리! 빨리 가져오게!”


그 종업원은 잘난 체하며 미소를 지었어요.


“이곳에는 아직 금년산은 없는데요!”


“뭐, 뭐가 어째?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제기랄! 그럼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오래된 것이라도 가져오라고! 원, 이건 나한텐 어쨌든 중요한 일이라고. 그러니…… 아니, 저기 하나 걸려 있군!”


나는 못에 걸린 달력을 떼어 내 떨리는 손으로 넘겼습니다. 맞아! 9월 9일 성 고르곤의 날이야! 그리고 나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방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유리잔이 들어 있는 찬장에 세차게 부딪치고 종업원을 얼싸안았지만, 바보처럼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그제야 나는 나의 보물 상자가 얼마나 대단한 보물이었는지 깨달았던 겁니다.


그 안에는 그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운율보다 더 가치 있는 짧은 운율이 적혀 있었던 거예요. (특별한 경우들을 위한 부록의 일곱 번째 시구였어요.)



성 고르곤의 날에 네가 도둑맞은 것을

치프리아노2의 날 이전에 다시 찾을 수 있느니,

쫓아가지 말고 소리도 지르지 마라.

그리고 물론 시야를 넓게 가져라.



나는 이 예언적인 충고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것이, ‘만약 이 책의 충고가 애당초 들어맞지 않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 이 책은 내가 바로 성 고르곤의 날에 도둑맞으리라는 것을 알고 이토록 충실하게 전해 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나는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한마디로 말해서, 치프리아노의 날 이전에 다시 찾을 수 있다, 라는 말이 내게는 굳건한 믿음으로 자리 잡았지요. 물론 그때까지는 아직 7일3이 남아 있었어요. ‘음, 그건 최대한 길게 잡은 기간이야. 누가 알겠어, 내일이나 내일 모레 좋은 일이 있을지’라고 나는 생각했지요.


‘유대인 놈, 두고 보자. 이 사기꾼, 두고 보라고! 네 놈의 정체를 밝혀 혼쭐을 내 줄 테다. 네 죽음은 임박했어.’


그렇게 나는 희망했습니다.


프란츠 아르보가스트는 식탁 뒤로 자리 잡고 앉았다. 그때 그는 막 미국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은 장사꾼이 지녔을 법한 감정과 느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장사꾼이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이런 것이리라.


‘선생, 우리가 해적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여겼던 선생의 용감한 배 ‘파우스티나’가 막 무사히 입항했음을 알려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맘껏 먹고 마셨습니다. 특히 마부에게도 잔뜩 술을 따라 주었지요. 그가 내게 털어놓더군요. 조금 전 종업원이 자기에게 귓속말을 했는데, 나를 보고 재세례파 교인이거나 정교 분리주의자, 뭐 그런 사람일 거라고. 내가 기도 책에 대고 그렇게 바보같이 입을 맞출 수가 없었다고 했다나요. 이어서 마부는 말했어요.


“좋아요, 제발 그 유대인이 아니라면 좋겠네요. 내 마차를 탔던 그 교활한 도둑놈은 아주 새것인 내 장갑을 훔쳐 갔단 말이에요! 마차 안의 기둥걸이에 걸어 놨었는데.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깜깜한데 헤어지면서 그놈이 어떤 짓을 했게요? 15크로이처 대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넓적한 단추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니까요! 하지만 늘상 있는 일이지요! 온갖 종류의 단추들이 있지요. 아주 특별한 종류의 단추들 말입니다. 선생, 혹시 최고의 단추 제조자가 누군지 아세요? 나라면 가장 빠른 속도로 단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런데도 그중에는 한 해에 한 다스도 못 만드는 자들이 있지요. 선생께서는 알아맞히지 못할 겁니다. 형리의 망나니들이지요! 맹세코 그 유대인 놈을 만나면 이 수수께끼를 내야겠습니다. 내가 채찍을 두 번 휘두르기도 전에 그놈이 실토를 할 겁니다.”


“잠깐만요.”


내가 마부에게 말했어요.


“당신은 참 용기 있는 친구요. 그런데 알고 계시오? 그 유대인 녀석은 당신보다 먼저 나한테 손을 쓴 것 같구려. 내게 그 금속 단추를 주시오. 그 대신 12크로이처를 드리겠소.”


그 거래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요. 그사이 나는 마차에 지팡이를 두고 왔다는 생각이 났어요. 램프를 들고 밖으로 나왔지요. 그러고는 그 참에 바구니의 망 사이에 내 금화 중의 하나가 끼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큰 구멍이 있다는 것도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나는 그쯤에서 생각을 집어치웠어요. 그날 밤에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흥얼거리듯 휘파람을 부르며 내 침실을 안내해 달라고 했지요. 그러고는 내 생애에 있어서 그날 밤보다 더 편안한 잠을 잔 날은 없었어요.


다음 날 아침 모든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나서 그 지역을 벗어나는 것이 결코 상책은 아닌 듯이 여겨졌어요. 두들겨 보지 않고 건너는 돌다리는 한 발이라도 헛걸음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급하게 서두를 것 없나니!”


마치 선지자 다니엘이 육성으로 내게 말을 건넨 것 같은 느낌이었답니다.


“아들아, 뢰스하임의 ‘뢰벤’ 여관에 그냥 머물러 있거라. 네가 보다시피 이곳은 평범한 여관이니라. 지금 당한 충격을 놓고 우선 뭔가를 즐기고, 그 일은 젖혀 놓거라. 곧 사건의 진상을 알려 주는 종소리를 듣게 되리니.”


나는 그 시를 성실하게 따랐습니다. 뢰스하임은 활기 찬 소도시로 어울릴 사람은 늘 있었어요. 특히 여관 주인과의 어울림은 훌륭한 수업 시간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사흘, 엿새,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러는 동안 물론 우울한 순간들도 있었고, 차츰 그런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어느 날 오후 창가에 서 있던 나는 화창한 날씨를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분통 터지게도 나로서는 그것을 즐길 수 없었으니까요. 그때 낡은 마차 한 대가 여관 앞에 와 섰습니다. 나는 그 마차를 바로 알아보았지요. 내가 아흐푸르트에서 출발할 때 탔던 바로 그 마차였으니까요.


한 신사가 내렸는데, 그는 내 스승이 거래하던 상인 중의 한 사람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어요. 작달막하고 쾌활하고 수다스러운 남자였지요. 나는 얼른 피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그가 벌써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럽쇼! 이게 누군가, 프란츠 선생 아닌가! 우리가 이렇게 뜻밖에 만나게 되다니 멋지군! 좋은 일이야, 아무렴. 멍청하게 서 있기는!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어땠나? 일은 잘되었고?”


“네, 그럭저럭요. 아주 잘되었어요. 그래요.”


“잘됐군. 그럼 여보게, 자네도 당연히 나와 함께 출발하지. 나도 곧장 집으로 갈 테고, 또 혼자거든.”


나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지요. 업무 때문에 한 친절한 지인을 반드시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이지요. 특별한 이런저런 용건이 있다고 말이에요. 요컨대 할 말을 모조리 털어놓았습니다. 그 상인은 주춤 놀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따지고 묻더니, 결국 입을 다물고 노란색 뷔르츠부르크산 맥주를 홀짝 마셨습니다.


나는 펜과 잉크를 달라고 부탁하고 나의 사촌 되는 스승에게 몇 줄의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아직 프랑크푸르트에 가지를 못했으며 작은 사고가 있어서 늦어졌다는 것, 그러나 모든 일이 다시 잘 해결될 전망이 보이며, 그래서 구입한 물건을 갖고 충분히 때맞추어 아흐푸르트에 도착할 희망을 품고 있다고, 요컨대 스승께서는 이 일에 관해서는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말고 비밀을 지켜 주셨으면 좋겠다는 것, 나를 전적으로 믿어 달라고 썼지요.


그러는 동안 그 상인은 나지막한 소리로 여관 주인과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분명히 그는 내가 여기에 얼마나 오랫동안 죽치고 있었는지를 여관 주인에게서 들었겠지요. 그리고 내가 아직 주 경계선도 넘지 못했다는 것을 훤히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나는 그런 것에는 더 이상 개의치 않고 편지를 봉인한 다음에, 그 이웃 상인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편지를 챙겨 넣고는 나머지 맥주를 천천히 마셨어요.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행운을 비네!”


그는 헤어질 때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소리쳤습니다. 마차가 떠났습니다.


이제 나 역시 여기서 더 이상은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몰랐지만 도저히 안정을 찾을 수 없었어요. 나는 숙박비를 물어보았습니다. 그것을 지불할 요량이었고, 그 가격이야 나 정도의 기능 조합의 일원으로서는 대단히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나는 내게 돈이 몇 푼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계집애처럼 울고 싶었지요.


내 용기는 한층 더 꺾였습니다. 길을 떠나 제법 한참 동안 걸어온 후 한길에서 갑자기 이 땅 어디에서도 내가 안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나의 사촌 되는 스승은 내 편지를 받고 안심할까? 최악의 경우를 걱정하지는 않을까?


그가 나를 잡으려고 수배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오면!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나는 심하게 자책을 하고, 다시금 그 보물 상자를 원망했습니다. 멍청이가 아닌 누구라도 취했을 행동을 내가 하지 않은 것은, 다시 말해 당장 그 일을 관청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그 보물 상자 탓이었으니까요. 이제 이미 물은 엎질러진 셈이고 주워 담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사흘 동안 꼬박 나는 그 지역을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습니다. 거듭 부활절 천사를 떠올리며 기운을 차리면서 똑같은 구역에 머물렀지요. 그러다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 주 경계 너머에 어머니의 먼 친척뻘 되는 몇몇 부유한 모피 상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내 부친의 덕을 톡톡히 보았던 사람들이었지요. 내 기억에 의하면 그곳은 글뤽스호프라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선은 위로와 충고의 말도 들으면서 잠자리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다시 단호히 목표를 갖고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그러고는 마음씨 좋은 여관집 여주인이 헤어질 때 챙겨 주었던 훌륭한 맛의 리큐르 병을 기억해 내고는, 이 원기를 돋우어주는 음료를 두 번 다시 없을 나의 용기의 촉매제로 마셨지요. 그 술은 곧바로 위력을 발휘해 나는 참 오랜만에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고, 마침내는 누구나가 칭찬하는 나의 베이스 가락을 멋지게 불렀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를 끌고 갈 불가사의한 운명은 참으로 희한하게 닥쳐왔습니다. 내가 제법 용기를 추스려 어슬렁거리며 한 침울한 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저녁 5시가 다 되어서였어요. 황량한 들판만 넓게 펼쳐져 있었지요.


멀리 오른편으로는 어두컴컴한 수풀이 보였고, 왼편 언덕에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교수대가 하릴없이 서 있었습니다. 비바람을 맞아 너무 삭아서 작두로도 쓸 수 없을 몰골이었어요.


애매한 오솔길들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가 한 블록을 더 내디뎠는데, 나무로 된 길 표지판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하지만 이 가엾고 배고픈 사람한테는 세월로 지워진 글자가 어느 쪽으로도 보이질 않았어요! 그 표지판은 한쪽은 오른쪽으로, 다른 한쪽은 왼쪽으로 뻗쳐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길을 고민하게 했어요.


“교회 헌당식에 가는데 미지의 어느 곳에서 가든 헤렌후트에서 가든 별 상관 없는 영원히 방랑하는 유대인에 비하면 그래도 너는 괜찮은 녀석이야.”


나는 말했지요. 그때 아래 평원에서 한 목동이 양 떼를 몰고 서서히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외쳤지요.


“이봐요, 젊은이! 글뤽스호프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합니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개의 나뭇조각을 손에 들고 세차게 탁탁 치는 것처럼 내 뒤에서 세 번 손뼉 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라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어요! 표지판이 몸을 돌린 겁니다! 표지판이요. 돌아선 거예요.


정말이에요! 그 표지판의 한 팔이 황야 위를 삐딱하게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무슨 뜻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게 다른 팔을 몸에 딱 붙이고 있었어요. 그러는 사이에 목동의 대답은 숲의 울림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는 놀라서 그 표지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내 심장이 방망이질 치듯 고동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지요. 늙은 귀신아! 나는 너한테 홀리지 않아. 이 산 위에서 지팡이 짚은 자를 친구로 삼을지는 몰라도, 나는 홀릴 수 없어! 그러고는 그가 어느새 내 뒤를 쫓아오는 듯이 그곳에서 도망을 쳤습니다. 목동이 내게 마주 다가왔어요.


“무슨 일입니까? 누가 당신을 쫓아오고 있소? 무엇을 잃어버린 거요?”


“아닙니다! 글뤽스호프로 가는 길만 알려 주시겠소?”


그 남자는 내가 무언가를 훔쳤다고 생각했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군요. 그러고 나서 숲 모퉁이를 가리켰습니다.


“저기에서 계곡이 보일 거요. 오솔길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면 작은 마을에 이를 텐데, 거기서 다시 한 번 물어보시오.”


그러는 사이에 내 마음은 다소 진정이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선량해 보였어요. 그런데도 나는 그에게 내 모험을 털어놓기가 주저되어, 다만 나무로 된 유령이 가리켰던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대체 저곳으로 가면 뭐가 있습니까?”


“저기요? 곧장 회색의 성에 이를 거요.”


맙소사, 하고 나는 생각했어요. 그리고 목동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그의 지시에 따라 숲으로 향했습니다. 걸어가면서도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고, 아마 열 번도 더 그 저주받은 말뚝을 돌아보았을 겁니다. 말뚝은 평소의 위치로 되돌아가 실로 멍청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말뚝이 도대체 회색의 작은 성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나는 그 성에 관한 이런저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성은 로헨 남작의 소유로, 내가 알고 있는 한 최근까지도 사람이 살았지요.


그 성은 고약한 유령이 나온다는 나쁜 평판을 받고 있었는데, 유령이 나온다는 곳은 실은 그 성 자체라기보다는 성의 근방이었습니다. 아래쪽 계곡에는 지헬 강이 흐르는데, 그 계곡에서 많은 이들이 한 여자 유령에 홀려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었어요.


이제 나는 길 표지판의 허울을 쓴 유혹자가 그 악마의 지역으로 나를 유인하려 들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곧 다른 작은 목소리가 내 안에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