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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인간] 원숭이 인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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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인간 (1)

  • WHITE



독일 남부 지역에 그륀비젤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죠.


그륀비젤은 독일의 여느 소도시와 다를 바 없는 곳입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분수 딸린 작은 광장이 있고, 그 한쪽에는 작고 오래된 시청이 있습니다. 그리고 광장 주변으로는 판사와 부유한 상인들의 집이 있고, 몇 가닥 비좁은 골목길 안에는 평범한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든 게 빤하고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판사나 시장이나 의사의 집 식탁에 별난 요리라도 오르게 되면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게 마련이지요.


그리고 오후가 되면 인사차 서로 방문한 여인네들이 모여 앉아 진한 커피와 달콤한 과자를 즐기며 이 대단한 사건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아무래도 목사님께서 복권을 샀는데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게 왕창 돈을 딴 모양이든가, 또 시장님께서 ‘뇌물’을 받았다든가, 의사 선생님이 비싼 처방을 써 주는 대가로 약사한테서 몇 푼의 금화를 받았을 거라는 둥 결론을 내리곤 합니다.


그러니 이처럼 빤하게 정돈된 그륀비젤 같은 곳에 어느 날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지금껏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 전혀 아는 바 없는 생면부지의 한 남자가 들어 왔을 때 얼마나 사람들이 뜨악하게 여겼을지는 가히 상상이 가는 일이지요.


그의 통행증을 검사한 시장은 의사의 집에서 가진 커피 모임에서, 그 남자의 통행증은 베를린에서 그륀비젤까지 제대로 검증되기는 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남자가 좀 수상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어요.


시장은 마을에서 최고의 신망을 얻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순간부터 그 이방인이 수상쩍은 인물로 간주된 것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지요. 또 그의 처신도 그런 견해를 돌려놓을 수 없게 했습니다. 그 이방인은 몇 푼의 금화를 지불하고 지금껏 황폐해 있던 집을 한 채 통째로 빌렸습니다.


그러고는 수레도 온갖 기이한 가재도구, 이를테면 난로, 레인지, 커다란 솥 등을 끌어들여 그때부터 오로지 혼자 살았습니다. 네, 그랬어요. 그는 심지어 요리까지 손수 했고, 그의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라곤 빵과 고기, 야채 등을 조달해주는 그륀비젤의 한 노인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은 그 노인 역시 현관까지만 들어오게 하고 거기에서 물건들을 건네받았지요.


그 남자가 우리 마을에 들어왔을 때, 나는 열 살짜리 소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남자가 작은 마을에 일으켰던 소동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양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는 오후에 다른 남자들처럼 볼링장에 가지도 않았고, 저녁에 보통 남자들이 모여 파이프 담배를 물고 신문 기사에 대해 떠들어대곤 하는 주점에 나타나는 일도 없었습니다.


시장, 판사, 의사와 목사님이 연달아 그를 식사나 커피 모임에 초대해 봤지만 번번이 사양했고요. 그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를 미쳤다고 여겼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일 거라고 했고, 그가 마법사이거나 주술사일 거라고 단호히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내가 열여덟, 스무 살이 되었을 때도 동네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이방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별난 동물들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허리 굽혀 절할 줄 아는 낙타, 춤추는 곰, 사람 옷을 입고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온갖 재주를 피우는 몇 마리 개와 원숭이를 끌고 다니는 떠돌이 패였지요.


이 패거리는 보통 도시를 누비며 다니다가 네거리나 광장에 자리를 잡고서, 작은북과 피리로 요란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끌고 온 동물들을 춤추고 재주 부리게 하고는, 그다음에 집집마다 다니며 돈을 거둬들이지요.


하지만 이번에 그륀비젤에 나타난 이 패거리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한 마리 괴물 같은 오랑우탄이었습니다. 거의 사람만 한 덩치에다 두 다리로 걸으면서 온갖 종류의 묘기를 부리는 놈이었지요. 이 개와 원숭이의 익살극은 이방인의 집 앞까지 진출했습니다.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나자 어둡고 희뿌옇게 낡은 창문 뒤로 나타난 그 남자는 처음엔 매우 못마땅한 기색이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한결 누그러진 듯 보였고, 뜻밖에도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오랑우탄의 묘기를 구경하며 진심으로 웃었습니다. 그랬어요, 그는 심지어 고액의 은화까지 한 닢 주어 온통 그 이야기로 마을을 술렁거리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동물 곡예단은 길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낙타는 여러 개의 바구니를 등에 싣고 있었고, 바구니 속에는 개와 원숭이들이 아주 편안하게 앉아 있었지요. 하지만 동물 조련사들과 오랑우탄은 낙타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몇 시간 후 성문 밖에 이르자마자 이방인은 서둘러 우체국으로 가서 특별 우편 마차 한 대를 부탁했고 그 바람에 우체국장은 깜짝 놀랐습니다. 곧이어 그도 동물 곡예단이 지나간 길을 따라 성문을 빠져나갔지요.


그가 어디로 갔는지 도통 알 수 없었기에 온 마을 사람들은 안달이 났습니다. 이방인이 마차를 몰고 다시 성문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어요. 그런데 마차 안에는 한 명이 더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모자를 얼굴까지 푹 눌러쓰고 입과 귀는 비단 천으로 감싸고 있었지요.


성문지기는 모르는 사람에게 통행증을 요구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지의 그 인물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으르렁대며 아주 거친 반응을 보였어요.


“이쪽은 제 조카입니다.”


이방인이 성문지기에게 은화 몇 닢을 쥐여 주며 예의 바르게 말했죠.


“이쪽은 제 조카인데 아직 독일어를 잘 못해요. 이 애가 방금 한 말은 우리가 여기에서 검사받느라 지체된 것에 대해 조금 불평을 내뱉은 것입니다.”


“아이쿠, 이런! 선생님의 조카시라면야 통행증 없이도 출입하실 수 있죠. 분명 선생 집에서 지내겠지요?”


성문지기가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아마 여기서 오래 지내게 될 겁니다.”


이방인이 말했습니다.


성문지기는 더 이상 이의 없이 이방인과 조카를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말이지만, 시장님과 온 주민은 이 성문지기의 처사를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그는 조카가 하는 말을 최소한 몇 마디라도 알아챘어야 했다는 것이었지요.


그랬다면 그와 그의 삼촌이란 인물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쉽게 알아낼 수 있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성문지기는 그건 프랑스어도 이탈리아어도 아니라고 확신하며, 또렷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영어처럼 들렸으며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 그 젊은 양반이 한 말은 ‘God damn빌어먹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로 성문지기 자신은 위기에서 벗어났고, 그 젊은 남자에겐 이름을 하나 붙여준 셈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어딜 가나 젊은 영국인에 대한 얘기에만 열을 올렸으니까요.


그 젊은 영국인 역시 볼링장에도 맥줏집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했지요. 그러니까 평소 절간처럼 조용한 이방인의 집 안에서 끔찍한 괴성과 소음이 자주 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사람들이 우르르 그의 집 앞으로 몰려와 안을 들여다보곤 했답니다.


그러면 붉은색 연미복 상의에 초록색 바지를 입고, 더부룩한 머리에 흉측한 표정으로 온 방 안을 휘저으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창가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젊은 영국인을 볼 수 있었어요. 또 늙은 이방인은 붉은색 잠옷 차림에 채찍을 들고 젊은이의 뒤를 쫓았는데, 놓치기 일쑤였지만 몇 번인가는 분명 따라잡았다고 거리의 구경꾼들은 짐작했어요.


왜냐하면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소리와 채찍질 소리가 사람들 귀에 들려왔으니까요. 낯선 젊은이가 그렇게 학대를 당하는 것을 보고 마을 여자들은 크나큰 동정심을 느꼈고, 마침내 시장을 찾아가 무언가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시장은 이방인에게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조카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강경하게 비난하며 다시 앞으로 그런 장면이 눈에 띌 경우에는 그 젊은이를 특별 보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방인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몸소 찾아왔으니 시장이 기절초풍하고할 밖에요! 늙은 남자는 젊은이의 부모가 엄격히 교육시켜 달라는 부탁과 함께 조카를 맡겼다는 말로 자신의 처사를 변명했습니다.


사연인즉, 자신의 조카는 영리하고 재주가 있는 청년이지만 말을 배우는 데 아주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조카가 나중에 그륀비젤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조카가 독일어 배우는 것을 너무 어려워해서 가끔씩은 매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고 했지요.


시장은 이 낯선 노인의 해명에 완전히 만족해하고 그에게 조금 자제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고는 저녁에 맥줏집에서 사람들에게 그 이방인만큼 교양 있고 점잖은 사람은 드물게 보았노라고 얘기했습니다.


“그가 마을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유감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조카가 독일어를 좀 배우게 되면 아마 지금보다 더 자주 우리와 어울리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시장은 덧붙여 말했습니다.


이 사건 하나로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 이방인을 점잖은 신사로 간주하고 그와 친분을 맺기를 바라면서 이따금씩 황량한 집 안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와도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간다고 여겼지요.


“또 조카한테 독일어를 가르치는구먼.”


그륀비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그렇게 얼추 3개월쯤 지나자 독일어 수업은 끝난 듯했어요. 왜냐하면 그 이방인은 이제 한 단계 다른 교육을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이 마을에는 동네 젊은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한 늙은 프랑스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이 프랑스인을 불러서 자신의 조카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조카가 영리하긴 하지만 춤에 관해서는 약간 제멋대로인 경향이 있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 말이지요. 자신의 조카는 예전에 또 다른 춤의 대가로부터 교습을 받은 적이 있는데, 너무나 특이한 동작을 배운 바람에 사교 모임에는 적당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카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대한 춤꾼이라 자처한다는 것입니다. 실상 그의 춤은 왈츠나 갤럽1, 혹은 에코세즈2 나 프랑세즈3와 조금도 유사한 점이 없다는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 프랑스 노교사는 수업료로 1탈러4를 받기로 하고 기꺼이 이 제멋대로인 학생의 수업을 떠맡기로 했습니다.


그 프랑스 노인이 몸소 확인했던 것처럼 세상에서 이 춤 수업보다 더 이상한 것은 없었습니다. 다리만 좀 심하게 짧을 뿐 아주 크고 호리호리한 젊은 남자인 조카는 깔끔하게 손질한 머리에 붉은색 연미복과 초록색의 헐렁한 바지를 입고 윤나는 장갑을 낀 채 나타났습니다.


그는 거의 말이 없었고, 악센트가 특이했으며, 처음엔 상당히 점잖고 솜씨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별안간 기괴한 동작으로 도약을 하거나 앙트르샤5를 할 때에는 춤 선생이 기절할 만큼 뻔뻔한 동작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춤 선생이 그의 동작을 지적하고 교정을 해 주려니까, 조카는 신고 있던 댄스 슈즈를 벗어 프랑스 교사의 머리에 던지고 방 안을 사방팔방으로 기어 다녔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있을 때, 헐렁한 붉은색 잠옷 차림에 머리에 금박 고깔모자를 쓴 이방인이 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사냥 채찍으로 사정없이 조카의 등을 내리쳤어요.


그러자 조카는 끔찍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테이블이며 높은 장롱으로 뛰어올랐고, 심지어는 창턱까지 기어올라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지껄였습니다. 하지만 붉은 잠옷 차림의 이방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조카의 다리를 잡아 끌어내려 호되게 매질을 한 다음, 버클을 써서 조카의 스카프를 한층 단단히 조였습니다. 그러자 조카는 다시 고분고분 얌전해졌고 아무 문제 없이 춤 수업을 계속 받았습니다.


춤 교습이 상당히 진전되어 이젠 수업 시간에 음악을 틀고 연습할 수 있게 되자 조카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시청의 악사가 불려 왔고, 그는 황량한 집 거실의 한 테이블 위에 앉혀졌습니다.


춤 선생이 여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방인은 그에게 실크로 된 여자 치마를 입히고 동인도의 숄을 두르게 했지요. 조카는 춤 선생에게 손을 내밀고 왈츠를 추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조카는 지칠 줄 모르는 격렬한 춤꾼이라 춤 선생이 신음을 하든 비명을 지르든 자신의 긴 팔에서 춤 선생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춤 선생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악사의 팔이 마비될 때까지 춤을 추어야 했지요. 이 수업은 춤 선생을 죽을 지경으로 만들었지만, 이 지긋지긋한 집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하다가도 매번 꼬박꼬박 지불되는 수업료와 가끔씩 대접받는 고급 와인은 번번이 그를 다시 오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륀비젤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프랑스 교사와는 딴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 젊은 조카가 사교계 생활에 대단한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고, 마을 여자들은 다가올 겨울 댄스파티에서 남자 파트너가 가뜩이나 부족한데 이토록 날렵한 춤 파트너를 한 사람 얻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장터에서 돌아온 하녀들이 저마다 주인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저 황량한 집 앞에 웬 번쩍번쩍한 마차 한 대가 서 있었어요. 멋진 말이 끌고 있고, 제대로 제복을 갖춰 입은 하인이 마차 문을 잡고 있었고요. 그때 황량한 집 문이 열리고 두 명의 멋진 차림의 신사가 나왔어요. 한 사람은 늙은 이방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젊은 신사였는데 아마도 그토록 독일어를 힘들게 배우고 미친 듯이 춤을 춘다던 조카인 것 같았어요. 두 사람은 마차에 올랐고, 하인은 마차 뒤켠에 올라탔는데, 글쎄 상상해 보세요! 그 마차가 시장님 집을 향해 곧장 달려갔지 뭐예요.”


하녀들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주인 여자들은 황급히 앞치마와 지저분한 머릿수건을 벗어던지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분명해요.”


여자들은 다른 용도로 쓰고 있던 손님방을 정리하느라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가족들에게 말했어요.


“이제 그 이방인이 자기 조카를 사교계에 소개하려는 게 분명해요. 그 늙은 영감은 지난 10년간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만큼 그렇게 교양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 매력적이라는 조카 때문에 봐주기로 했어요.”


여자들은 이렇게 말하며 자신들의 아들과 딸에게 손님들이 오면 몸가짐을 똑바로 하고 평소보다 발음을 정확하게 해서 예의 바르게 보일 것을 당부했습니다. 마을의 이 영리한 여자들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늙은 신사는 조카와 함께 일일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자신과 자신의 조카를 잘 봐달라고 소개했으니까요.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 두 이방인에 대한 얘기뿐이었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더 일찍 사귀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죠. 노신사는 품위 있고 매우 이성적인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는 말할 때마다 빙긋이 미소를 지어서 간혹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하긴 했지만 날씨나 지방, 한여름 산골 포도주 저장소에서 느끼는 즐거움 등을 화제로 삼을 때에는 아주 해박하고 진지해서 듣는 이들을 모두 넋이 나가게 했습니다. 그 조카는 또 어떻고요!


그 역시 사람들을 매혹시켰고,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외모로 말할 것 같으면 잘생긴 얼굴이라 할 수는 없었지요. 얼굴 아랫부분, 특히 턱이 유난히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얼굴빛은 짙은 갈색이었습니다. 거다가 수시로 괴상하게 인상을 찌푸렸고 눈을 감고 이빨을 드러냈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표정들을 아주 흥미로워했어요.


그렇게 재빨리 실룩거리는 얼굴 표정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을 거예요. 옷은 약간 이상한 모양새로 그의 몸에 걸쳐져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어울렸어요. 그는 방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소파에 주저앉았다가 또 팔걸이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뻗기도 했습니다.


다른 젊은이가 그런 행동을 했으면 아주 뻔뻔하고 무례하다고 했겠지만, 사람들은 그것조차도 조카의 독특한 특성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는 영국인이야. 영국인들은 모두 다 저래. 영국인은 숙녀 열 명이 자리가 없어서 서성거리고 있어도 버젓이 소파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한다니까. 그러니 영국인이라 저러는 걸 나쁘다 할 수는 없지.”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조카는 오로지 자신의 삼촌 앞에서만 얌전해졌습니다. 그는 방 안을 펄쩍거리며 뛰어다니거나 제멋대로 소파 위에 발을 올려놓다가도 삼촌이 엄한 눈빛을 던지면 금세 잠잠해졌습니다.


“제 조카 녀석이 아직은 미숙하고 교양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저의 조카를 제대로 된 교양인으로 다듬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저의 조카를 맡깁니다.”


삼촌이 집집마다 안주인에게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그 정도의 행동을 나쁘다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조카는 사교계로 나오게 되었고 그날 이후 그륀비젤은 온통 그 일에 관한 얘기뿐이었습니다. 노신사도 이전과 같지 않았어요. 그는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 완전히 변한 것 같았지요.


오후가 되면 그는 조카와 함께 상류층 신사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볼링을 하며 즐기는 산기슭 동굴 주점6에 나타났습니다. 조카는 이 볼링 경기에서도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그는 핀을 다섯 개나 여섯 개 이하로 쓰러뜨린 적이 없었고, 무슨 신이 들린 듯 볼링공을 쏜살처럼 핀 밑으로 밀어 넣고는 온갖 미치광이 같은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가 하면 크란츠7나 킹을 던졌을 때에는 별안간 멋지게 손질한 머리칼로 물구나무를 서서 다리를 허공으로 쭉 뻗는 거예요. 또 어떤 때는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마차 지붕 위에 펄쩍 올라가 앉아 괴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한동안 실려 가다가, 다시 뛰어내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기도 했지요.


이런 장면이 연출될 때면 노신사는 시장과 다른 남자들에게 조카의 무례함에 대해 정중히 사과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웃으면서 다 젊은 혈기 탓으로 돌리며 그 나이 때에는 자기네들도 다 그랬다고 말하면서 그를 혈기 왕성한 장난꾸러기라고 부르면서 아꼈습니다.


하지만 이 젊은 영국인이 교양과 이성의 표본인 것처럼 간주된 탓에 그들이 적지 않게 화가 났어도 감히 뭐라 말을 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지요. 이를테면 그 노신사는 저녁이면 조카와 함께 시내 술집인 황금사슴에 들르곤 했는데, 이때 조카는 아직 새파란 젊은이면서도 벌써 연륜이 찬 노인처럼 굴었어요.


그는 자기 몫의 술잔을 앞에 놓고 자리에 앉아 거창한 안경을 걸치고는 큼지막한 파이프를 꺼내 불을 붙인 다음 좌중의 모두가 찌푸리도록 연기를 내뱉곤 했지요. 그러다 신문 기사나, 전쟁 또는 평화에 관한 것이 화제에 오르게 되면 의사와 시장은 나름대로 의견을 말하고 이를 들은 다른 남자들은 두 사람의 깊은 정치적 식견에 감탄을 보내는데, 그때 이 조카라는 녀석은 아주 다른 의견이 있는 듯 굴었습니다.


그는 결코 벗는 적이 없는 장갑을 낀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시장과 의사에게 두 사람이 이 모든 것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으며 자신은 아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고 한층 더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노라고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괴상한 엉터리 독일어로 자기의 견해를 마구 쏟아 놓았지요. 그러면 시장의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그 청년을 썩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 청년은 영국인이기에 당연히 모든 것을 분명히 더 잘 알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목청을 높일 수 없게 된 시장과 의사가 분을 삭이며 체스 게임을 하는 자리로 가서 앉으면 조카는 그 뒤를 쫓아가 커다란 안경을 쓴 채 시장의 어깨너머로 감 놔라 배 놔라 잔소리를 했고 의사한테도 이런저런 훈수를 두어 두 남자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했습니다.


마침내 화가 난 시장이 그에게 함께 체스를 두자고 제안했습니다. 시장은 스스로 제2의 필리도르8라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내심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요량이었지요. 그러나 그때 노신사가 조카의 목덜미에 매어진 스카프를 단단히 틀어쥐었고, 그러자 조카는 금세 얌전하고 온순해져서 시장은 맥이 빠져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그륀비젤 사람들은 거의 매일 저녁 모여서 카드놀이를 했는데 판돈은 반 크로이처9였어요. 그런데 이 조카 녀석은 그건 너무 시시한 액수라며 크로네 은화와 두카텐 금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자기처럼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으스대서 모여 있는 남자들을 언짢게 만들었지만 곧이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잃어 줌으로 해서 금세 그들의 화를 풀어 주었지요. 사람들은 그의 돈을 그토록 많이 따는 것에 대해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저 친구는 영국인이니까 집이 부자일 거야.”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얼른 금화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의 조카에 대한 명성은 그륀비젤과 인근지역에까지 삽시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그륀비젤에서 이와 같은 젊은이를 본 기억이 없었고, 일찍이 그 어떤 말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별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조카는 춤을 약간 배운 것 말고는 뭘 배웠다고 할 수도 없었어요.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말할 것 같으면 흔히 말하듯이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으니까요. 언젠가 시장 관사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무언가를 적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몰랐습니다. 지리에 관해서 그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독일의 도시를 프랑스 도시라고 하고 덴마크의 도시를 폴란드의 도시라고 했지 뭡니까.


그는 일자무식이었던 겁니다. 때때로 목사님은 이 청년의 무식함에 대해 걱정스러운 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모두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옳다는 듯이 너무나 당당했고, 말끝엔 항상 “그건 내가 더 잘 알아!” 하고 말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