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ok

[난쟁이 나제] 난쟁이 나제 (1)

이전 다음
최상단 최하단

난쟁이 나제 (1)

  • WHITE



오래전, 제 사랑하는 조국 독일의 어느 큰 도시에 아내와 함께 소박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던 구두장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길가의 모퉁이에 앉아 구두와 덧신을 수선하고 주문이 있을 때에는 새것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는 우선 가죽을 구입해야만 했어요. 그는 가난해서 재료들을 비축해 놓을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의 아내는 성문 밖 작은 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와 과일을 팔았어요. 그녀는 옷차림도 깨끗하고 채소들도 정갈하게 진열해 놓고 팔아서 단골이 많았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잘생긴 아들이 하나 있었어요. 특히 준수한 얼굴에 체격도 반듯했고 열두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제법 키도 컸습니다. 소년은 평소 야채 시장에서 어머니 곁에 앉아 있다가 물건을 많이 사들인 아낙들이나 요리사들을 거들어 채소를 집까지 배달해 주곤 했어요.


그리고 배달에서 돌아올 때면 그의 손엔 어김없이 아름다운 꽃이나 수고비, 또는 과자가 들려 있었지요. 왜냐하면 그 요리사들의 주인은 이 잘생긴 소년이 집에 찾아오면 늘 반색을 하며 이것저것 손에 들려 주길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 구두장이의 아내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장터에 앉아 있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녀의 앞에 놓인 몇 개의 광주리 속에는 양배추를 비롯한 많은 과일과 푸성귀 그리고 씨앗들이 들어 있었고, 좀 더 작은 광주리 속에는 때 이른 배와 사과 그리고 살구 등이 들어 있었어요.


야콥이라는 이름의 어린 아들은 엄마 곁에 앉아 낭랑한 음성으로 물건을 팔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저씨들. 신선한 양배추 구경 좀 하세요. 향기가 좋은 풀들도 있어요! 아주머니들, 이리 좀 와 보세요. 갓 수확한 배와 사과 그리고 살구도 있어요! 먼저 사는 분이 임자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아주 싸게 내놓으셨답니다.”


야콥은 목청껏 외쳤어요. 그때 한 늙은 여자가 시장을 가로질러 다가왔습니다. 남루한 행색의 노파는 늙어서 주름이 깊게 팬 작고 홀쭉한 얼굴에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뾰족한 매부리코는 턱에까지 닿을 듯했어요.


노파는 긴 지팡이를 짚고 걸었는데 실상 걷는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줄곧 절뚝거리면서 미끄러지고 비틀거렸으니까요. 마치 두 다리 속에 바퀴가 달려 있어 당장에라도 곤두박질쳐서 바닥에 그 매부리코로 코방아를 찧을 것 같았지요.


구두장이의 아내는 이 노파를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녀가 날마다 이 장터에 나와 있은 지 벌써 16년째이지만 이런 기묘한 모습의 노파는 본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노파가 절뚝거리며 다가와 그녀의 광주리 앞에 조용히 멈추어 서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흠칫 놀랐습니다.


“당신이 야채 장수 한네요?”


노파는 머리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계속 흔들거리면서 불쾌하고 쉰 소리로 물었어요.


“예, 맞습니다만…… 뭐 마음에 드시는 거라도 있나요?”


구두장이의 아내가 대답했어요.


“내가 필요한 게 있는지 없는지 한번 볼까? 어디 한번 보지, 봐! 그래, 그 풀 나부랭이 좀 보여주시게.”


노파는 대답하면서 허리를 굽히더니 푸성귀 광주리 속에 거무스레하게 그은 끔찍이도 흉하게 생긴 손을 쑥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가지런히 정돈된 푸성귀를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움켜쥐고 이것저것 긴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았습니다.


구두장이의 아내는 노파가 자신의 귀한 야채들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자 분통이 터졌어요. 하지만 그녀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손님이 물건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기도 했고, 그보다 이 노파에게서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광주리란 광주리는 모두 살펴본 뒤 노파는 중얼거렸어요.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어. 죄다 형편없는 풀 쪼가리들뿐이야! 50년 전이 훨씬 더 나았어. 쓰레기야, 쓰레기!”


노파의 말은 어린 야콥까지 화가 나게 만들었습니다.


“뭐라고? 이 뻔뻔스런 할망구가.”


소년은 불쾌한 듯 소리를 질렀어요.


“처음에는 그 추악하게 그은 손가락으로 싱싱한 야채들을 함부로 주물럭거리고, 그다음엔 사람들이 사고 싶은 맘이 싹 가시게 그 긴 코에다가 바싹 갖다 대더니, 이젠 그것도 모자라 쓰레기라고 욕까지 하는 거예요! 공작님 댁 요리사도 채소는 우리 집 것만 쓴단 말이에요!”


노파는 이 용감한 소년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 언짢은 듯 웃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요 깜찍한 것, 깜찍한 것! 그러니까 내 코가 맘에 드는 모양이구나, 내 이 아름다운 긴 코가 말이야! 네 얼굴에도 한가운데서부터 턱까지 내려오는 코를 하나 달아 줘야겠구나.”


노파는 이렇게 말하면서 양배추가 들어 있는 또 다른 광주리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 보이는 흰 양배추를 집어 들고 빠개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움켜쥐더니 도로 광주리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또다시 말했습니다.


“쓰레기야. 형편없는 양배추구먼!”


“그렇게 꼴사납게 머리를 흔들지 마요! 꼭 양배추 줄기처럼 말라빠진 목이 부러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 머리통이 우리 광주리 속으로 처박힐 테니 말이에요! 그럼 우리 물건을 누가 사겠어요!”


야콥은 잔뜩 독이 올라 소리쳤어요.


“내 가냘픈 목이 마음에 들지 않니?”


노파는 웃으면서 중얼거렸지요.


“너는 그런 목도 가질 수 없을 거다. 네 머리통은 그 작은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어깨 속에 아예 콱 박혀 버릴 테니 말이다!”


“어린애하고 괜한 실랑이하지 마세요.”


한참을 살펴보고 냄새 맡고 트집까지 잡는 데 부아가 난 구두장이의 아내가 마침내 말했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얼른 사 가세요. 당신이 다른 손님들까지 쫓아 버리고 있잖아요!”


“그래, 좋아. 당신이 말한 대로 해 주지.”


노파는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며 외쳤습니다.


“이 양배추 여섯 통을 몽땅 사겠어. 하지만 보다시피 나는 지팡이를 짚어야 하기 때문에 짐을 들 수가 없어. 그러니 당신 아들에게 우리 집까지 물건들을 날라 달라고 말해 줘. 그에 대한 보상은 할 테니 말이야.”


야콥은 같이 가고 싶지 않아서 울었어요. 이 흉측한 노파가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늙고 허약한 노파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은 죄악이라 여긴 구두장이의 아내는 아들을 진지하게 타일렀어요. 야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양배추들을 보자기로 한데 싼 다음 시장을 가로질러 노파의 뒤를 쫓았습니다.


노파와 함께 보조를 맞추느라 야콥은 빨리 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시내에서 아주 동떨어진 곳에 있는 작고 다 쓰러져 가는 노파의 집 앞에 도착하고 보니 거의 사십오 분이 지났습니다. 집 앞에 이르자 노파는 주머니 속에서 잔뜩 녹이 슨 갈고리를 꺼내어 능숙하게 작은 열쇠 구멍에 꽂아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요란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습니다.


집 안에 들어선 어린 야콥은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겉보기와는 달리 집 내부는 아주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던 거예요. 천장과 벽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가구들은 금과 보석이 박힌 최고급 흑단으로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유리로 된 바닥은 어린 야콥이 몇 번이고 자빠질 정도로 미끄러웠지요. 노파는 주머니에서 은으로 된 호각을 꺼내어 집 안에 날카롭게 울려 퍼지도록 불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흰쥐 몇 마리가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이 흰쥐들은 두 발로 똑바로 서서 걸어 내려왔고, 발에는 신발 대신 호두 껍질을 신었습니다. 거다가 사람처럼 옷까지 입고, 심지어 머리에는 최신식 모자까지 쓰고 있었어요. 이를 본 야콥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지요.


“이 멍청이들, 내 덧신은 어디다 두었느냐?”


노파는 소리를 지르며 지팡이로 흰쥐들을 때렸습니다. 쥐들은 울부짖으며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대체 나를 얼마나 서 있게 만들 참이냐?”


쥐들은 재빨리 계단을 뛰어 올라가 가죽으로 안감을 댄 코코넛 열매 껍질 한 쌍을 들고 내려왔어요. 그리고 신속하게 노파의 발에 신겼지요.


이제 노파는 절룩거리지도 비틀거리지도 않았습니다. 노파는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유리로 된 바닥을 야콥의 손을 이끌고 성큼성큼 걸었어요. 마침내 노파는 어느 방 안에 이르자 멈추었습니다. 온갖 집기들이 번쩍번쩍 광이 나게 닦여져 있고 부엌처럼 보이는 그곳에는 화려한 귀빈실에나 어울릴 법한 마호가니 목재로 된 탁자와 소파 그리고 고급 양탄자가 깔려 있었지요.


“앉거라, 아가.”


노파는 야콥을 소파 안쪽 구석으로 밀어붙인 다음 빠져나올 수 없도록 탁자를 그 앞에 끌어다 놓으며 다정하게 말했어요.


“어서 앉아라, 짐 나르느라 힘들었을 텐데. 인간들 머리란 게 여간해선 가볍지 않거든. 암, 가볍지 않고말고.”


“왜 그런 이상한 말을 하는 거예요?”


야콥은 소리를 질렀어요.


“지친 건 사실이지만, 내가 나른 건 양배추라고요. 할머니가 우리 어머니한테서 직접 샀잖아요!”


“흠, 그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란다.”


노파는 비웃으며 광주리의 덮개를 젖히고는 사람의 머리통 하나를 움켜쥐고 꺼냈어요. 야콥은 너무나 놀라 제정신이 아니었지요. 그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야콥은 머릿속에 어머니가 떠올랐어요. 만일에 누군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어머니를 고소할 게 뻔했습니다.


“아주 얌전하게 굴었으니 내가 무언가 보답을 해야겠다.”


노파는 중얼거렸습니다.


“잠깐 기다려라. 네가 평생 잊지 못할 수프를 좀 내오마.”


그렇게 말하고 노파는 다시 호각을 불었어요. 그러자 맨 먼저 사람 옷을 입은 흰쥐들이 우르르 몰려왔어요. 그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춤에는 주걱과 고기 써는 큰 칼을 차고 있었지요.


그 뒤를 이어 다람쥐들이 무더기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들 역시 통 넓은 터키식 바지를 입고 똑바로 서서 걸었고 머리에는 벨벳으로 된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다람쥐들은 주방 보조들인 듯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빨리 벽을 기어올라 냄비와 접시, 달걀과 버터, 야채와 밀가루를 들고 내려와 화덕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지요. 노파는 코코넛 껍질로 된 덧신을 신고 계속해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야콥은 그녀가 자신에게 맛있는 것을 요리해 주기 위해 총괄 지휘하는 것을 쳐다보았어요.


이제 불이 바작바작 타오르면서 연기가 나고 냄비 속에서 무언가가 끓었습니다. 그러자 맛있는 냄새가 방 안에 진동했어요. 노파가 분주히 왔다 갔다 하자 다람쥐와 흰쥐들도 그 뒤를 따랐고, 화덕 옆을 지날 때마다 노파는 연신 기다란 코를 디밀고 냄비 속을 들여다보았어요.


드디어 냄비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치직 소리가 나더니 냄비 밖으로 김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거품이 불 위로 흘러내렸어요. 그러자 노파는 냄비를 들어 은으로 된 사발에 붓고 어린 야콥 앞에 내밀었습니다.


“자, 어서 들어라, 얘야. 이 수프만 먹으면 내가 가진 것 중 너의 마음에 드는 것은 모두 가지게 될 거다! 너도 제대로 한몫하는 능숙한 요리사로 만들어 주마. 그렇지만 풀은, 바로 이 속에 들어간 풀은 절대로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네 엄마가 이 풀을 가지고 있지 않았겠니?”


야콥은 맛이 기가 막힌 수프를 먹는 데 정신이 팔려 노파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어요. 그의 어머니도 여러 번 맛있는 수프를 만들어 주었던 적이 있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수프에서는 신선한 야채와 향료 냄새가 났고, 맛은 달콤하면서도 동시에 새콤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진한 맛이었지요. 야콥이 그 맛있는 수프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이 비우는 동안 흰쥐들은 아라비아 유향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푸르스름한 연기가 방 안에 피어올랐어요. 그 연기는 점점 더 자욱해지더니 점차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어린 야콥은 이 유향의 냄새에 취했어요. 그는 어머니한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잠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노파의 소파에서 진짜로 잠이 들고 말았지요.


야콥은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노파가 자신의 옷을 모두 벗기더니 그 대신 다람쥐 가죽을 씌우는 것이었어요. 이제 그는 다람쥐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기어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다람쥐들이랑 흰쥐들과 함께 돌아다녔어요.


그들은 착실하고 예의 바른 동료들이었습니다. 야콥은 그들과 함께 노파의 시중을 들었어요. 처음엔 신발을 닦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노파가 덧신용으로 신는 코코넛 껍질에 기름칠을 하고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문질렀습니다. 그는 집에서도 아버지의 일을 도와 신발을 닦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손놀림이 능숙했어요.


일 년여가 지났습니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꾸었지요. 그는 이제 좀 더 나은 일을 맡게 되었어요. 그것은 다른 몇몇 다람쥐들과 함께 햇빛 속에 떠다니는 먼지를 잡는 일이었습니다. 먼지를 잡을 만큼 잡은 다음에는 그것을 고운 채에 받쳐야 했어요. 왜냐하면 노파는 햇빛 속에 떠다니는 먼지를 최고라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이가 부실해서 제대로 씹을 수가 없는 노파는 이 햇빛 먼지로 빵을 만들게 했습니다.


다시 또 일 년이 지나고 그는 이제 노파가 마실 물을 모으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빗물을 받기 위해 땅속에 구덩이를 파거나 마당에 통을 세워 두는 일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섬세한 일이었어요.


야콥과 다람쥐들은 개암나무 껍질로 장미꽃에 맺힌 이슬을 받아야 했어요. 노파는 그 이슬만을 마셨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노파는 이것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물을 모으는 일은 매우 힘든 노동이었어요. 또 일 년이 지나자 야콥은 이제 집 안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맡은 일은 바닥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었지요.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김이 서려도 금방 눈에 띄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는 먼저 바닥을 솔로 쓸어 내고 낡은 천으로 발을 감싼 다음 아주 꼼꼼하게 방 안을 왔다 갔다 해야 했습니다.


4년째 되는 해, 그는 마침내 부엌일을 맡게 되었어요. 이것은 오랜 시험 기간을 거친 후에야 이를 수 있는 고급 직이었지요. 야콥은 그곳에서 주방 보조에서 시작해서 일급 파이 요리사에까지 올랐으며, 부엌일에 관한 한 종종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능숙하고 숙련된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아주 어려운 요리들, 이를테면 200여 가지의 재료가 들어간 파이나 지구상의 온갖 풀들이 들어간 야채 수프 등 야콥은 모든 요리법을 배웠고, 신속하고도 영양가 높게 만드는 법을 습득했습니다.


그렇게 노파의 시중을 든 지 7년여가 지났어요. 어느 날 노파는 외출을 하기 위해 코코넛 껍질로 된 신발을 벗고 광주리와 지팡이를 손에 쥐더니, 야콥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닭털을 뽑고 야채들을 채워 넣은 다음 노릇노릇하게 구워 놓으라고 명령했어요.


그는 이것을 요리법대로 했습니다. 먼저 닭의 목을 비틀고 뜨거운 물에 데친 다음 능숙하게 털을 뽑았어요. 그러고 나서 껍질이 맨질맨질해지도록 문지르고 내장을 모조리 꺼낸 다음 그 속에 채워 넣을 야채들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야채 저장실 안에서 반쯤 문이 열려 있는 벽장 하나가 눈에 띄었어요.


그건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어요. 야콥은 호기심에 그곳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어요. 그 안에는 강렬하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수많은 광주리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야콥은 그중에서 한 광주리를 열어 보았어요. 광주리 속에는 아주 특이한 모양과 색깔의 풀이 들어 있었습니다. 줄기와 잎은 청록의 빛깔을 띠고 있었고, 위에 매달린 작은 꽃은 불타는 듯 강렬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지요.


그리고 꽃의 가장자리에는 노란색 테두리가 둘러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 꽃을 유심히 관찰해 보고 조심스레 냄새를 맡아 보았어요. 그러자 예전에 노파가 끓여 주었던 수프에서 나던 그 강렬한 향내가 확 풍겨져 왔습니다. 그 냄새는 너무나 강해서 야콥은 재채기가 나왔고, 도저히 멈출 수 없을 만큼 점점 심하게 재채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재채기를 하면서 그는 잠에서 깨어났어요.


잠에서 깨어난 야콥은 노파의 소파 위에 누워 어안이 벙벙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말도 안 돼. 어쩜 이렇게 생생한 꿈을 꿀 수가 있담! 정말 진짜 같았는데. 내가 그 보잘것없는 다람쥐가 되어 흰쥐들과 다른 하찮은 동물들과 함께 동료로 지내면서 유능한 요리사까지 되었다니. 이 모든 걸 어머니께 말씀드리면 얼마나 웃으실까? 하지만 시장에서 어머니를 돕지 않고 이렇게 낯선 집에서 잠이 들었다고 나무라지나 않으실지 모르겠네.”


야콥은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어머니한테 가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팔다리는 아직 잠결에 덜 풀린 듯 뻣뻣했고, 특히 목덜미는 머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만큼 심했습니다. 그리고 미처 가늠할 틈도 없이 어느새 옷장이나 벽에 코를 부딪히거나 몸을 재빨리 돌리려다 또다시 문설주에 코를 박곤 했어요.


야콥은 이토록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잠에 취한 자신이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다람쥐와 흰쥐들은 마치 야콥을 배웅이나 하는 양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낑낑거렸어요. 야콥은 현관 문턱에 이르렀을 때 작고 사랑스러운 그들도 함께 데려가려 했지만, 그들은 호두 껍질을 신은 채 재빨리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어요. 멀리서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노파가 야콥을 데려갔던 곳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고, 야콥은 비좁은 골목길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제대로 찾아내기 힘들었어요. 거다가 그곳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는데, 마침 근처에 난쟁이가 나타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휴, 저 못생긴 난쟁이 좀 봐! 대체 어디서 왔지? 저 기다란 코는 또 어떻고. 거다가 머리는 어깨 속에 아예 파묻혀 있구먼. 거다가 갈색의 더럽게 못생긴 저 손 좀 봐!”


다른 때 같으면 야콥도 함께 따라가 보았을 것입니다. 그 역시 난쟁이나 거인, 또는 이상한 옷차림을 한 낯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한테 가기 위해 서둘러야 했지요.


시장에 이르자 야콥은 몹시 불안해졌어요. 어머니는 자리에 앉아 있었고, 광주리 속에는 많은 농작물이 들어 있었지요. 그렇게 오래 잠이 들었던 건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기에 어머니는 매우 슬퍼 보였어요.


어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라고 외치지도 않고 그냥 손으로 턱만 괴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얼굴은 다른 때보다 더 창백해 보였습니다. 야콥은 어찌할 바를 몰라 주춤거렸어요. 그러다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어머니의 팔에 손을 얹으며 말했어요.


“어머니, 무슨 일 있어요? 저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러세요?”


그녀는 뒤를 돌아 야콥을 쳐다보았어요. 하지만 이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습니다.


“나한테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거야, 이 흉측한 난쟁이야! 저리 꺼져! 얼른! 나는 지금 네놈의 광대 짓을 볼 기분이 아니야!”


그녀는 큰소리로 외쳤어요.


“어머니, 대체 왜 그러세요?”


야콥은 깜짝 놀라 물었어요.


“몸이 편찮으신 모양이지만 어째서 아들까지 쫓으려고 하세요?”


“여러 말 할 거 없어, 얼른 꺼져! 네놈이 아무리 속임수를 부려도 내 수중에서 나갈 돈은 한 푼도 없어, 이 끔찍한 괴물아!”


한네 부인은 격분해서 외쳤어요.


“세상에, 하느님께서 어머니의 이성을 거둬 가셨나 봐!”


야콥은 비탄에 잠겨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어머니를 원상태로 돌려놓지? 사랑하는 어머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저를 좀 똑바로 보시라고요, 어머니 아들이잖아요. 야콥이라고요.”


“아니, 이젠 저놈이 뻔뻔스럽게 나를 놀리기까지 하네.”


한네 부인은 옆에 있는 여자에게 말했어요.


“저 흉측한 난쟁이 좀 보시구려. 저놈이 여기 서서 내 손님을 죄다 쫓아 버리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감히 나를 조롱하기까지 하는군. 자기가 내 아들, 내 아들 야콥이래요! 저 뻔뻔한 놈!”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시장 아낙네들이 모두 일어나 악다구니를 부리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장터 아낙들이란 원래 그렇지요. 그들은 이 난쟁이가 7년 전 그림처럼 잘생긴 아들을 잃어버린 불쌍한 한네의 불행을 조롱한다고 꾸짖으며, 당장 꺼지지 않으면 한꺼번에 달려들어 잡아 뜯어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어요.


가엾은 야콥은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야콥의 생각에는 오늘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나와 어머니가 농작물 진열하는 것을 도왔고, 그 후 노파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가서 수프를 조금 먹고 잠깐 잠이 들었다가 왔을 뿐인데, 지금 어머니와 다른 아낙네들이 7년이 지났다고 말을 하다니!


거다가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추악한 난쟁이라고 했습니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야콥은 어머니가 자신이 하는 말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자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가 하루 종일 신발을 수선하는 시장통의 작은 점포를 향해 내려갔어요.


“아버지도 나를 못 알아보는지 봐야겠어. 일단은 문밖에 서서 말을 해 봐야지.”


그는 구두 수선 가게에 이르자 문밖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구두장이는 일에 열중해서 야콥을 볼 겨를도 없었어요. 하지만 잠깐 우연히 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을 때, 그는 들고 있던 신발과 철사, 그리고 못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기겁을 하며 외쳤어요.


“맙소사, 저게 뭐, 뭐야?”


“안녕하세요, 주인어른! 어떻게 지내세요?”


야콥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어요.


“형편없이 지내요, 형편없이, 꼬마 양반!”


아버지의 대답에 야콥은 대단히 놀랐습니다. 아버지도 그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죠.


“이젠 일이 영 시원찮구려. 이렇게 혼자인 데다 늙어서 말이오. 거다가 조수를 쓰려면 돈이 많이 들고.”


“하지만 당신에겐 조금씩 일손을 거들어 줄 아들이 없나요?”


야콥은 계속해서 살피듯이 물었습니다.


“하나 있긴 있었지요. 야콥이라고. 지금쯤 스무 살의 호리호리하고 날렵한 청년이 되어서 내 일을 도와주었을 텐데. 참, 그랬다면 살맛이 났을 거요! 그 애는 열두 살 때부터 아주 솜씨가 좋고 영리했지요. 수공업에도 재간이 있었고, 거다가 호감이 가게 잘 생겼었죠. 그 애가 손님을 끌어왔다면 나는 새 신발을 주문받아 만드느라 바빠서 더 이상 낡은 신발을 수선할 필요도 없었을 거요! 그런데 세상사가 다 그렇고 그렇다오!”


“대체 당신 아들은 어디에 있는데요?”


야콥은 떨리는 음성으로 아버지에게 물었어요.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지요. 7년 전, 예, 벌써 그렇게 세월이 지났군요. 그 애는 시장에서 누군가에게 유괴를 당했지요.”


“7년 전이라고요!”


야콥은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