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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신부] 4장 막강한 왕의 궁전 풍경, 이후 피비린내 나는 결투와 그 밖의 사건에 관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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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막강한 왕의 궁전 풍경, 이후 피비린내 나는 결투와 그 밖의 사건에 관한 보고

  • WHITE


4장

막강한 왕의 궁전 풍경, 이후 피비린내 나는 결투와

그 밖의 사건에 관한 보고




안나 양은 몹시 우울하여 온몸이 마비된 느낌이었습니다. 창가에 앉아 팔짱을 끼고 밖을 멍하니 내다보면서도,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여 여느 때처럼 안나 양의 인솔하에 쉬러 가고 싶어 꽥꽥, 꼬끼오, 야옹, 삐악삐악대는 가금들에게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래요, 그녀는 하녀가 그 일을 대신 맡아 하다가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고 대리인에게 반항하는 수탉을 우악스럽게 매질하는 것도 그냥 내버려 두었어요. 그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가슴을 찢는 사랑의 고통이, 체스터필드24나 크니게25를 읽지도 않고, 장리 부인26이나 인간의 심리를 알고 혈기 왕성한 젊은 기분을 제대로 주무르는 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다른 귀부인들의 충고도 없이 가축 사육에 바친 가장 달콤한 시간 내내 그녀의 가장 총애하는 제자였던 수탉의 괴로움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그녀가 경솔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루 종일 코르두안슈피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답술 폰 차벨타우 씨의 탑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정말로 무슨 중대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지금 안나 양은 이글거리는 저녁놀을 받으며 비틀거리면서 마당을 걸어오는 난쟁이 남작을 알아보았습니다. 샛노란 옷을 입은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추악해 보였고, 이리저리 깡충대며 당장 뒤로 넘어질 것 같다가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가소로운 모습은 남들에게는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었겠지만, 안나 양에게는 혐오감만 증폭시킬 뿐이었어요.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결국 그녀는 그 혐오스러운 꼭두각시를 먼발치에서라도 보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앞치마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얌전히 엎드려, 펠트만!”

안나 양은 자기를 잡아당기는 것이 개라고 여기고 그렇게 소리쳤어요. 그러나 그건 개가 아니었습니다. 안나 양이 얼굴에서 손을 떼자 보인 것은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이었고, 그는 유례없이 민첩하게 안나 양의 품으로 뛰어올라 두 팔로 꽉 껴안는 것이었어요. 안나 양은 놀랍고도 징그러워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코르두안슈피츠는 안나 양의 목에 여전히 매달린 채 그 일어나는 순간 엄청나게 무거워져서, 적어도 2,000파운드의 무게로 불쌍한 안나 양을 쏜살같이 다시 의자에 주저앉혔습니다. 그제야 코르두안슈피츠는 안나 양의 품에서 얼른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그러고는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우아하고 예의 바르게 오른쪽 무릎을 버티고 꿇어앉아 좀 별나게 카랑카랑하지만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모하는 안나 폰 차벨타우 양, 나무랄 데 없는 숙녀여, 선택된 신부여, 노여워 말아요. 부탁이오. 간청하오! 제발 노여워 말아요. 노여움을 푸시오! 당신은 내 신하들이 내 궁전을 지으려고 당신의 아름다운 채소밭을 황무지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겠지요? 오, 삼라만상의 신들이시여! 당신이 내 보잘것없는 몸속을 들여다보고 온통 사랑과 고결한 마음으로 고동치는 내 심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 노란 비단옷 속 내 가슴에 가득 찬 모든 근본적인 덕목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생각하듯이 파렴치한 잔인함과는 거리가 멀다오! 그것이 될 법한 소리요? 온화한 군주가 어찌 자신의 신하들을, 아니 그만! 그만! 이 무슨 허튼 소리인지! 당신이 직접 봐야 하오! 오, 신부여! 당신을 배려하는 이 훌륭한 장관을 직접 보시오! 나와 함께 가야 하오! 나와 함께 당장 말이오. 기쁨에 찬 백성들이 내가 사모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나의 궁전으로 당신을 안내하리다!”

코르두안슈피츠의 떼거지 같은 요구에 얼마나 놀랐을지, 이 위협적인 괴물을 한 발짝만이라도 따라가는 게 얼마나 모골이 송연한 일인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 일이지요. 그러나 코르두안슈피츠는 원래 그의 궁전이 곧 채소밭이라면서, 그 채소밭의 비상한 아름다움과 무진장한 풍요로움에 대해 감동 어린 말투로 집요하게 묘사했어요. 그래서 결국 안나 양도 천막을 살짝 들여다보기로 작정했지요. 그 정도야 전혀 해로울 것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난쟁이 남작은 환호작약하면서 적어도 열두 번은 연달아 재주넘기를 한 후, 매우 우아하게 안나 양의 손을 잡고 정원을 가로질러 비단 궁전으로 안내했습니다.

천막 입구의 롤커튼이 올라가자, 안나 양은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땅에 뿌리가 박힌 듯이 우뚝 섰습니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끝도 없이 넓은 채소밭의 풍경은 일찍이 그녀가 수없이 꾸었던 잘 익은 배추와 채소에 관한 더없이 멋진 꿈속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단한 장관이었어요. 그곳에서는 채소와 배추, 무와 상추, 완두와 콩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게 빛을 발하며 자라고 있었어요. 피리와 북, 심벌즈가 울리는 음악 소리는 점점 커졌고 안나 양이 이미 알고 있는 네 명의 점잖은 신사, 다시 말해 슈바르츠레티히 씨, 무슈 드 로캄블, 시뇨르 디 브로콜리와 카푸스토비츠 씨가 여러 차례 격식을 갖춘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습니다.

“내 시종장들이오.”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는 웃으며 말했어요. 그러고는 소개한 시종장들을 앞세우고 붉은 영국산 당근 친위대의 이열 종대를 지나 밭 한가운데로 안나 양을 이끌었습니다. 그곳에는 높고 화려한 옥좌가 높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옥좌 주위에는 왕국의 거물들이 집결해 있었습니다. 콩 공주들과 상추 왕자들, 멜론 제후를 선두로 오이 공작들, 양배추 대신들, 양파와 무 장성들, 양배추 귀부인들 등이 저마다 지위와 신분에 걸맞은 화려한 성장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이로 너무나 사랑스러운 라벤더와 회향 시동 수백 명이 주위를 돌아다니며 달콤한 향기를 퍼뜨렸습니다. 오커로다스테스가 안나 양과 옥좌에 오르자, 궁정 악장인 순무가 긴 지휘봉으로 신호를 했고, 이내 음악이 멈췄어요. 그리고 모두들 경외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귀를 기울였지요. 오커로다스테스는 목청을 높여 매우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충성스럽고 사랑스런 나의 신하들이여! 내가 나의 반려로 삼으려는 여기 내 옆의 고귀한 안나 폰 차벨타우 양을 보라. 미모와 덕목을 갖춘 그녀는 벌써 오래전부터 어머니 같은 자애로운 눈길로 너희들을 지켜 왔다. 말하자면 너희들에게 부드럽고 기름진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너희들을 보듬고 길러주었다. 이제 그녀가 언제나 너희들의 충실하고 권위 있는 국모로 머물 것이다. 이제 경의를 표하는 갈채를 보내어라. 동시에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자비롭게 베풀고자 하는 은혜에 대해 질서 있는 환호를 보내어라.”

궁정 악장 순무가 두 번째 신호를 보내자 수천 명이 한 목소리로 환호를 했고, 양파 포병대는 대포를 발사했으며 당근 친위대 군악대는 귀에 익은 축가 <샐러드–샐러드 그리고 녹색의 파슬리!>를 연주했어요. 장엄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왕국의 지도급 인사들, 특히 양배추 귀부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요. 난쟁이 남작이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왕관을 쓰고, 손에 황금 왕홀까지 들고 있는 걸 알아보았을 때, 안나 양은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어요. 그녀는 놀라움에 손뼉을 치면서 소리쳤어요.

“세상에, 이럴 수가! 당신은 겉모습을 훨씬 능가하는 분이시군요, 사랑하는 코르두안슈피츠 님.”

“경애하는 안나 양.”

오커로다스테스가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별들이 내게 당신 아버지의 집에 이름을 숨기고 나타나라고 강요했다오. 아가씨, 이제 내가 막강한 왕 중의 한 명이며, 지도에서도 명확한 경계를 밝히는 걸 잊을 만큼 그 끝을 알 수 없는 왕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오. 오, 사랑스러운 안나 양, 당신에게 손과 왕관을 내밀고 있는 나는 실상 채소의 왕 다우쿠스 카로타 1세라오. 모든 채소 영주들이 나의 신하들이며, 오랜 관례에 따라 일년에 딱 하루 동안만 콩의 왕이 지배한다오.”

“그럼…….” 안나 양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그럼 제가 왕비가 되어 이 훌륭하고 멋진 채소밭을 갖게 되는 건가요?”

다우쿠스 카로타 왕은 다시 한 번 바로 그렇다고 확언하면서, 자신과 그녀가 땅에서 싹트는 모든 채소를 지배하게 될 거란 말도 덧붙였어요. 물론 안나 양은 그런 일을 기대한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 난쟁이 코르두안슈피츠가 다우쿠스 카로타 1세로 바뀐 순간부터 그가 전처럼 그렇게 추해 보이지 않으며, 왕관과 왕홀, 어의 또한 그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예의 바른 태도와 그와의 결합을 통해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까지도 계산에 넣자, 안나 양은 별안간 왕의 신부가 된 자신보다 더 좋은 지참금을 얻을 수 있는 시골 처녀는 이 세상에 없을 거라는 분명한 확신을 얻었어요. 그 때문에 꽤나 흡족해하며 자신이 당장 아름다운 궁전에 머물러야 하는지, 다음 날 결혼식이 거행될 수 있는지를 신랑인 왕에게 물었습니다. 다우쿠스 왕은 사모하는 신부의 갈망이 자기에겐 황홀할 지경이지만, 어떤 별자리 때문에 자신의 행운을 약간 미룰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어요. 그러니까 당장에는 답술 폰 차벨타우 씨가 사위의 신분이 왕이라는 것을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 만약 알게 된다면 그가 그토록 바라는 실피데 네하힐라와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데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말입니다. 게다가 그 자신 답술 폰 차벨타우 씨에게 두 쌍의 결혼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이지요. 안나 양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아버지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엄숙하게 약속해야 했습니다. 이후 그녀의 아름다움과 상냥하고 겸손한 태도에 도취되어 열광하는 백성들의 떠들썩한 환호를 받으며 비단 궁전을 떠났습니다.

꿈속에서 안나 양은 너무나 사랑스런 다우쿠스 카로타의 왕국을 다시 한 번 보았고 행복감에 떠다녔어요.

안나 양이 아만두스 폰 네벨슈테른 씨에게 써 보낸 편지는 가련한 젊은이에게 혹독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얼마 후 안나 양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받았지요.


내 마음의 여신인 천사 같은 안나!

당신의 편지에 적힌 말들은 비수처럼 내 가슴을 찔렀습니다. 날카롭고 달아오른, 독이 묻은 살인의 비수 말이오. 오, 안나! 당신이 어떻게 나를 떠날 수 있단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오! 도무지 그 일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나는 바로 실성하여 무섭고도 잔인한 소란을 피웠다오. 어쨌든 나는 치명적인 불운에 격분하며 사람들을 피해 늘 치던 당구도 치지 않고 식사 후 곧장 숲으로 나갔소. 그곳에서 절망하여 손을 비비며 당신의 이름을 수천 번도 더 불러 보았다오! 세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소. 그때 마침 나는 화려한 금술이 달린 빨간 우단으로 만든 새 모자를 쓰고 있었소. 사람들 말로는 내 얼굴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모자였소. 빗줄기가 화려한 모자 장식을 망가뜨릴 수도 있었지만 사랑의 절망 앞에서 모자며 우단이며 금실이 무슨 소용이겠소! 그렇게 한참을 방황하다 보니 결국 온몸이 비에 흠뻑 젖고 전신이 추워 떨리면서 심한 복통을 느꼈소. 그래서 근처의 주막으로 가서 따끈한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당신이 보내 준 훌륭한 버지니아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오. 그러자 곧 신성한 영감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고, 작은 가방을 열어서 열두 줄의 멋진 시들을 허겁지겁 메모해 두었소. 오, 시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천부의 선물인지! 사랑의 절망과 복통도 사라져 버렸소. 그 시들 중 마지막에 쓴 것만을 당신께 전하리다. 모든 처녀들의 귀감인 당신 또한 나처럼 기쁨의 희망으로 충만하길 바라오.


나는 고통 속에서 뒤틀리고 있다.

마음속에 켜졌던

사랑의 촛불들이 꺼져 버렸다.

다시는 웃음 띤 농담도 할 수 없구나!

하지만 정신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여,

말과 운율이 생겨나니,

나는 시를 써 내려간다.

그러자 어느새 다시 기쁨이 나를 찾아오고,

마음속에서는 사랑의 촛불들이

위로하며 타오른다.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이제 나는 다정하게 웃음 띤 농담을 할 수 있네!


사랑하는 안나! 수호 기사인 내가 곧 서둘러 가서 당신을 내게서 빼앗아 가려는 악당에게서 당신을 구해 내겠소! 그때까지 당신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나의 훌륭한 스승의 소중한 책자에서 위안을 주는 신성한 경구들을 써 보내겠소. 이를 읽고 그대가 기운을 얻었으면 좋겠소.


가슴이 넓어지면, 정신에서 날개가 자랄까?

어쨌거나 유쾌한 익살꾼이여! 마음이 되고 정서가 되렴!

*

사랑은 사랑을 증오할 수 있다,

시간 역시 시간을 놓칠 수 있다.

*

사랑은 꽃향기, 끊임없는 하나의 존재,

오 젊은이여, 모피를 씻어도 젖게는 하지 마라!

*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분다고 그대는 말하는가?

그렇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외투들은 따뜻한 법!


이 얼마나 신성하고 숭고하고 충만한 경구들인지! 그리고 얼마나 간결하고, 얼마나 수수하고, 얼마나 야무지게 표현되었는지! 나의 사랑하는 아가씨! 걱정 말아요. 여느 때처럼 마음속으로 날 생각해 주오. 내가 가서 당신을 구하여 사랑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내 가슴에 당신을 품겠소.


당신의 충실한

아만두스 폰 네벨슈테른


추신: 나는 코르두안슈피츠 씨와 결코 결투할 수 없소. 오, 안나! 왜냐하면 저돌적인 결투 상대의 적의에 찬 공격을 받아 당신의 아만두스가 흘릴지도 모르는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숭고한 시인의 피이며, 섣불리 흘려선 안 되는 신들의 신성한 피이기 때문이라오. 세상은 나 같은 정신이 세상을 위해 가능한 한 몸을 아끼고 보존하기를 마땅히 요구하지요. 시인의 무기는 말이요, 노래라오. 나는 나의 라이벌의 몸에 티르테우스27의 전투가로 달려들고, 날카로운 경구를 써서 그를 찌르고, 열광적인 사랑의 송가로 쓰러뜨릴 것이오. 이것이 진정한 시인의 무기이며, 이 무기가 언제나 승승장구하여 어떠한 공격에도 맞서서 시인을 지켜 준다오. 나는 그렇게 무장을 하고 나타나 그대와의 결합을 쟁취할 것이오. 오, 안나!

건강하시오. 다시 한 번 그대를 포옹하며! 나의 사랑에 모든 희망을, 특히 어떠한 위험도 불사할 나의 영웅 같은 용기에 희망을 걸기 바라오. 아무리 보아도 악마 같은 괴물이 당신을 끌어들인 그 치욕의 그물에서 그대를 구출해 낼 거요!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마침 안나 양은 신랑이 될 왕 다우쿠스 카로타 1세와 채소밭 뒤 초원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답니다. 그녀가 힘껏 달려가 몸을 웅크리면 난쟁이 왕이 그녀에게 몸을 던졌지요. 그녀는 평소와 달리 애인의 편지를 읽지도 않고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고, 우리가 곧 알게 되겠지만, 때가 늦어서야 읽게 되었어요.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안나 양이 어떻게 갑자기 생각을 바꿔 처음에 그렇게 추하다고 여기던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 대해 별들에게 물어 봤지만 만족스런 대답을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사람 속은 삼라만상의 모든 비밀보다 밝혀 내기 어렵고 어떤 별자리를 통해서도 파악할 수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답니다. 다시 말해 육신의 아름다움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난쟁이 신랑이 순전히 한층 높은 본성만으로 안나 양의 사랑을 얻어 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어요. 친애하는 독자께서 이미 아시다시피, 답술 폰 차벨타우 씨가 정해 놓은 아름다움의 개념은 젊은 처녀들이 품고 있는 잘생겼다는 개념과는 천지 차이였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는 그런 처녀들은 오성과 재치, 정신과 감정을 한통속으로 여긴다는 것, 또한 유행하는 연미복이 어울리지 않고, 제아무리 셰익스피어, 괴테, 티크, 프리드리히 리히터28를 자처하는 남자라 할지라도, 젊은 처녀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생각이 들면 군복 차림의 어떤 건장한 경기병 소위의 손에 격퇴당할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을 알 만큼은 많은 세속적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긴 지금 안나 양의 경우에는 일이 전혀 달리 벌어졌고, 아름다움이나 이성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긴 했어요. 그렇기는 해도 한 보잘것없는 시골 처녀가 갑자기 왕비가 되는 것은 희귀한 일이지요. 게다가 이 판에 별들까지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었습니다.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과 답술 폰 차벨타우 씨 그리고 안나 양, 이 세 사람은 한마음 한뜻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존경받는 사위와 온갖 즐거운 일들에 대해 잡담을 나누려고 전에 없이 탑을 떠나는 일이 잦아졌고, 특히 아침을 매번 아래에 내려와 먹곤 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 역시 비단 궁전에서 나와 안나 양이 주는 버터 빵을 먹었습니다.

“아, 아…….” 안나 양은 곧잘 웃음을 참아 가며 그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어요. “아, 아, 위대한 코르두안슈피츠 님, 당신이 왕이라는 것을 아버지께서 아신다면.”

“진정해요.” 다우쿠스 카로타 1세가 대답했어요. “진정해요. 그러지 않으면 기쁨이 사라져 버리오. 조만간 당신에게 기쁨의 날이 올 거요!”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안나 양에게 그의 밭에서 난 제일 좋은 무를 몇 다발 선물했습니다. 안나 양은 무척이나 기뻤어요. 답술 폰 차벨타우 씨가 무를 즐겨 먹는데, 궁전이 지어진 채소밭에서는 아무것도 거둘 수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궁전 안의 온갖 채소와 뿌리채소들 가운데 유독 무만은 없었다는 사실이 지금에서야 떠올랐어요.

안나 양은 선물받은 무를 얼른 씻어서 아버지의 아침 식탁에 올렸습니다.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몇 개의 무 이파리들을 싹둑 잘라 내고 소금 통에 살짝 찍어 만족스럽게 먹어 치웠습니다. 그때 마침 남작이 안으로 들어왔어요.

“오커로다스테스 님, 이 무 한번 먹어 보십시오!”

답술 폰 차벨타우 씨가 그에게 말했어요. 접시에는 크고, 유난히 잘생긴 무 한 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를 보자 코르두안슈피츠의 눈은 불을 켠 듯 번뜩이기 시작했고, 그는 무시무시하게 큰 목소리로 고함을 쳤어요.

“이런, 비열한 공작 녀석, 네가 감히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그것도 내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는 이 집에 파렴치하게 침입한 것이냐? 적법한 나의 왕권에 맞서려는 너를 내가 영원히 추방하지 않았더냐? 가거라, 썩 꺼지거라! 반역을 꾀한 신하 놈아!”

갑자기 무의 뚱뚱한 머리 아래로 두 다리가 자라났고, 무는 그 두 다리로 재빨리 접시에서 뛰어내려 코르두안슈피츠 바로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잔인한 다우쿠스 카로타 1세여, 너는 헛되이 나의 종족을 절멸시키려고 했다! 너의 혈통 중 그 누가 나와 나의 친척들만큼 큰 머리를 가진 자가 있단 말이냐? 우리는 이성과 지혜, 예리한 통찰력, 예의 바른 태도,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너희들은 부엌과 가축의 우리들을 싸돌아다니며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 가운데에서만 힘을 발한다. 그럼으로써 근본적으로는 젊은 악마가 단지 너희들의 후딱 스쳐 가는 행복을 만들어 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귀한 인품들과 즐겨 어울려서 우리의 초록빛 얼굴을 들기만 하면 환호와 함께 환영을 받는다! 나는 너, 다우쿠스 카로타에게 도전한다. 너 역시 너의 아류들과 마찬가지로 기형의 개구쟁이에 불과할 뿐이다! 이 자리에서 누가 강자인지 밝혀 보자!”

무 공작은 이 말과 함께 긴 채찍을 휘두르며 순식간에 다우쿠스 카로타 1세를 덮쳤습니다. 그러나 왕은 재빨리 작은 검을 빼들고 용감하게 방어했지요. 그리고 이 두 난쟁이는 방 안에서 기이하고 놀랍게 도약을 하며 격투를 벌였고, 마침내 다우쿠스 카로타가 무 공작을 궁지에 몰아넣자, 공작은 펄쩍 뛰어 열린 창문을 통해 멀리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답니다. 친애하는 독자께서 이미 알고 있듯이, 다우쿠스 카로타 왕은 아주 민첩하게 밖으로 몸을 날려 무 공작을 쫓아 밭으로 달려갔습니다.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너무 놀라 온몸이 마비된 채 아무 말 없이 둘 사이의 무시무시한 싸움을 지켜보았고요. 그러고는 마침내 울부짖으며 소리쳤어요.

“오, 내 딸 안나야! 가련하고 불쌍한 내 딸 안나! 끝장났다. 나도 너도, 우리 둘 다 끝장났구나.”

그는 그 말을 하며 방을 뛰쳐나가 가능한 한 빨리 천문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안나 양은 세상에 무엇이 갑자기 아버지를 저런 끝도 없는 비애에 젖게 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추측할 수도 없었어요. 그녀는 이 모든 소동에 대단히 만족하였고, 신랑이 신분이나 재산뿐 아니라 용기까지 겸비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내심 기뻤습니다. 하긴 이 세상 어디에도 겁쟁이를 사랑할 수 있는 소녀는 없을 겁니다. 이제 그녀는 다우쿠스 카로타 1세 왕의 용맹에 확신을 가졌고, 아만두스 폰 네벨슈테른 씨가 왕과 결투를 원치 않았다는 사실을 아주 민감하게 떠올렸어요.

다우쿠스 1세 왕에게 아만두스 씨를 희생시키는 데에 그녀는 지금껏 갈등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그녀의 새로운 신부의 신분이 가져다줄 그 모든 영광을 인식하자, 아만두스 씨를 희생시키기로 결심을 굳혔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당장 자리에 앉아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만두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은 헛되다”라고 교장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전적으로 옳아요. 사랑하는 아만두스, 당신은 굉장히 현명하고 박식한 학생이니, 제 생각과 마음속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해도,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하면서 조금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당신에게 여전히 호의를 가지고 있으며, 금술 장식의 빨간 우단 모자를 쓴 당신의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일지 눈에 선하게 그린다는 건 확실해요. 하지만 결혼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아만두스, 당신이 아무리 영리하고, 또 아무리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다 해도, 당신은 결코 왕이 될 수는 없어요. 그리고 놀라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난쟁이 코르두안슈피츠 님은 코르두안슈피츠가 아니라 다우쿠스 카로타 1세라는 이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고, 거대한 채소 왕국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저를 그의 왕비로 선택했답니다! 사랑하는 그 난쟁이 왕이 익명을 벗어던진 이후에, 그분은 훨씬 더 멋있어졌어요. 이제야 저는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버지께서는, 머리야말로 남자의 자랑거리이며, 그러니까 아무리 커도 좋은 거라고 주장하셨거든요. 하지만 다우쿠스 카로타 1세는―보시다시피 저는 그 멋진 이름을 완전히 외워서 쓸 수 있을 만큼, 그 이름은 저에게 친숙하다고요―제가 말하려고 하는 건, 왕이신 저의 난쟁이 신랑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거예요. 게다가 얼마나 용감무쌍한지! 그분은 제가 보는 앞에서 무례하고 적의에 찬 인물처럼 보이는 무 공작을 때려 도망시키고…… 세상에! 그를 쫓아 창문을 뛰어넘던 그분의 모습이라니! 당신이 보셔야 했는데! 저의 다우쿠스 카로타님을 당신의 무기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분은 불사신처럼 보여요. 시 작품이 아무리 섬세하고 날카롭다 해도 시를 갖고는 그분을 털끝만큼도 다치게 못할 거예요. 그러니 사랑하는 아만두스, 경건한 사람처럼 당신을 섭리에 맡기시고 제가 당신의 부인이 아니라 왕의 부인이 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나 저는 언제나 당신에게 호의를 가진 친구로 남을 테니 안심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앞으로 당근 친위대나, 아니 학문도 무기도 싫어하니까 학술원이나 호박 내각에서 일하고 싶으시면 한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당신의 행복은 이루어질 거예요. 건강하시고 저에게 화내지 마세요.


당신의 예전 신부이자, 지금은 호의 가득한 친구이며

미래의 왕비인

안나 폰 차벨타우

(조만간 폰 차벨타우라는 성을 쓰지 않고 그냥 안나라고만 쓰겠네요)


추신: 아름다운 버지니아 담배 역시 당신에게 충분히 공급될 테니 단단히 믿으셔도 좋아요. 추측건대, 저의 궁전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즉시 저의 특별한 감독하에 왕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화단을 만들어 버지니아 담배를 재배할 거예요. 그것에는 문화와 윤리가 필요하니, 저의 다우쿠스 님께 그걸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시라고 해야겠어요.




24체스터필드Philip Dormer Stanhope, 4th Earl of Chesterfield(1694~1773). 영국의 정치가이자 문필가로 『아들에게 쓰는 편지Letters to His Son』로 유명하다.

25크니게Adolph Freiherr von Knigge(1752~1796). 독일의 저술가로 『인간교제술, Uber den Umgang mit Menschen』로 유명하다.

26장리 부인Comtesse de Genlis(1746~1830). 프랑스의 여류 작가

27티르테우스Tyrtaeus. 기원전 7세기 그리스의 서정시인

28프리드리히 리히터Johann Paul Friedrich Richter(1763~1825). 장 파울Jean Paul로 알려져 있는 독일의 소설가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