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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신부] 3장 답술하임에 한 별난 남자가 도착하고, 그 후에 벌어진 사건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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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답술하임에 한 별난 남자가 도착하고, 그 후에 벌어진 사건에 관한 이야기

  • WHITE


3장

답술하임에 한 별난 남자가 도착하고,

그 후에 벌어진 사건에 관한 이야기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딸과 포옹한 뒤 막 탑에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당장이라도 진노한 그놈이 기세등등하게 찾아올세라 겁이 났어요. 그때 맑고 유쾌한 피리 소리가 들리더니, 아주 우스꽝스럽고 별난 모습의 한 작달만한 기사가 마당 안으로 돌진해 왔습니다. 그가 타고 앉은 노란 말은 전혀 큰 몸집은 아니지만 제법 품위 있고 우아해서 작달만한 남자는 기형적으로 큰 머리통에도 불구하고 난쟁이처럼 보이지 않고, 말 머리 위로 우뚝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체가 긴 덕분이었어요. 안장 위로 걸쳐져 있는 다리와 발로 말할 것 같으면 신체의 길이에다 계산해 넣을 정도도 못 되었거든요. 그 밖에도 그 난쟁이는 황금빛 공단으로 만든 우아한 의복에, 요란한 녹색 깃털 장식이 달린, 역시 같은 비단의 모자와, 번쩍이는 마호가니 나무로 만든 승마용 장화를 신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히히힝!’ 소리와 함께 기사는 차벨타우 씨 바로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리려고 하다가 갑자기 번개처럼 말의 배 아래를 통과해 반대편에서 두세 번 연달아 12엘레15 높이만큼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어요. 그러니까 안장 머리에 물구나무하고 설 때까지 매 엘레마다 여섯 번 공중제비를 했답니다. 그렇게 그는 말 위에 거꾸로 선 채 공중의 작은 양발로 강약격, 약약격, 강약약격 등의 박자에 맞춰 온갖 신기한 방향 전환과 커브 돌기를 하며 앞으로, 뒤로, 옆으로 갤러핑을 했어요. 마침내 마장 묘기 체조를 마친 기사가 멈춰 서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을 때, 사람들은 마당의 땅바닥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알아보았습니다.

“존경하는 답술 폰 차벨타우 님과 그의 따님께 삼가 인사를 드립니다!”

기사는 말을 타고 묘기를 부리면서 아름다운 언셜 자체16로 이 글을 땅에 써 놓았던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난쟁이 기사는 말에서 뛰어내려 세 번 옆으로 바퀴를 그리는 재주를 넘고는, 답술 폰 차벨타우 님께 코르두안슈피츠라 불리는 자신의 주인님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의 인사를 전하며, 답술 폰 차벨타우 님께서 괜찮으시다면 남작님께서 며칠 후 차벨타우 님 댁을 방문하고 싶어 하신다고, 또 앞으로 가까운 이웃이 되기를 희망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산송장처럼 창백하게 굳어서 딸에게 기대어 서 있었습니다. 그가 “매우 기쁘겠군요”라는 말만 떨리는 입술로 힘겹게 내뱉자마자, 난쟁이 기사는 왔을 때와 똑같은 예식을 치른 후 번개같이 떠났습니다.

“오, 내 딸아…….”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흐느껴 울면서 말했어요.

“오, 내 딸, 가여운 내 딸아, 틀림없이 그가 바로 그놈이다. 그가 너를 납치하고 내 목을 비틀려고 오겠다는 거다! 그래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용기를 내어 보자꾸나! 어쩌면 분노한 그 정령과 화해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니, 우리는 그저 최대한 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수밖에 없구나. 내 소중한 아가야, 네가 버릇없는 과실을 범하지 않도록 내 당장 너에게 라크탄츠나 토마스 아퀴나스17의 책에서 정령들과 교제하는 방법에 대해 몇 장을 읽어 주마.”

그러나 답술 씨가 라크탄츠, 토마스 아퀴나스 혹은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다룬 다른 책을 가져오기도 전에, 이미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어린이 합창단이 즐거운 크리스마스 날에 맘껏 공연하는 음악과 매우 흡사했어요. 긴 행렬이 거리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행렬의 선두에는 육칠십 명의 난쟁이 기사들이 노란 조랑말을 타고 있었는데, 모조리 아까 왔던 사절처럼 노란 의복에 뾰족 모자 그리고 번쩍이는 마호가니 장화를 신고 있었어요. 그 뒤로 여덟 필의 노란 말이 끄는 투명한 수정으로 된 마차가 한 대 오고 있었고, 그 마차에 이어 네 필이나 여섯 필의 말이 끄는, 앞의 것보다는 덜 화려한 40대 가량의 다른 마차들이 뒤따랐습니다. 게다가 화려한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시동, 급사, 그 밖의 하인들도 옆에서 들쑥날쑥 떼를 지어 오고 있어서, 이 모든 광경은 기이하면서도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선사했어요.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어안이 벙벙해 있었어요. 그러나 세상에 이렇게 작은 말과 작은 사람들처럼 앙증맞은 존재가 있다니, 여태껏 그 점을 몰랐던 안나 양은 완전히 넋을 잃고 만사를 잊어버렸어요. 감탄을 하느라 딱 벌린 입을 다시 다무는 일마저도.

여덟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답술 폰 차벨타우 씨 바로 앞에 멈춰 섰습니다. 기사들이 말에서 뛰어내리고, 시동과 하인들이 서둘러 다가왔습니다. 마차 문이 열리자 누군가 시종들의 팔에 들려 흔들리면서 마차에서 나왔어요.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코르두안슈피츠라고 불리는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이었지요. 용모에 관해 말하자면, 남작께서는 벨베데레의 아폴론18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게 생겼고, 심지어는 죽어 가는 검투사와도 비교를 불허했어요. 그럴 것이 우선은 미처 3피트도 되지 않는 키에다가, 그 짤따란 신체의 3분의 1은 누가 봐도 너무나 큰 얼굴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얼굴에서 지나치게 긴 매부리코와 왕방울처럼 튀어나온 커다란 두 눈이 그냥 보통 장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몸통 역시 꽤나 길어서 발을 위해 남은 기장이라고는 고작 4인치에 불과했어요. 그래도 이 작은 여분의 길이는 제법 쓸모 있게 사용된 셈이었어요.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한, 남작의 작은 발은 그 자체로 무척 귀여웠으니까요. 물론 위엄 있는 두상을 지탱하기에는 너무 연약해 보이기는 했어요. 남작은 비틀거리며 걸었고 곧잘 넘어지기도 했지만 오뚝이처럼 금방 다시 일어났어요. 그 행동은 마치 우아하게 소용돌이 모양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지요. 남작은 번쩍이는 금실로 짠 꽉 끼는 의상에, 화관과 거의 비슷한 모양의, 초록색 깃털로 된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그는 땅에 내려서자마자, 답술 폰 차벨타우 씨에게 달려가 그의 두 손을 잡고 팔짝 뛰어올라 목에 매달려서는 그 작은 몸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 답술 폰 차벨타우 님!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아버님!”

이어서 남작은 오를 때와 똑같이 날렵하게 다시 답술 폰 차벨타우 씨의 목에서 뛰어내려 안나 양을 향해 팔짝 뛰어서, 아니 그보다는 몸을 날려서 갔고 안나 양의 반지 낀 손을 잡고 쩝쩝대며 키스를 하고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 너무나 아름다운 안나 폰 차벨타우 양!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

곧이어 남작이 손뼉을 치자 당장 째지는 시끌벅적한 어린이 합창이 흘러나왔고, 수백 명의 난쟁이 신사들이 마차와 말에서 내려 먼저 왔던 사절처럼 처음에는 물구나무를 선 채 머리를 땅에 대더니, 곧 다시 똑바로 서서 우아한 강약격, 강강격, 약강격, 약약격, 약약강격, 약약약격, 약강강격, 강강약격, 강약약강격, 강약약격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었어요. 흥겨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흥이 벌어지는 동안 안나 양은 난쟁이 남작이 자기를 보고 부른 호칭 때문에 받은 커다란 충격에서 벗어나, 당연히 근거가 있는 실제적인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작은 집에 이 난쟁이족이 어떻게 묵는담? 적어도 하인들을 커다란 헛간에서 자게 하면, 그들 역시 자리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면 비상수단으로 변명이 될까? 그렇다고 해도 마차를 타고 온 귀족들은 어떻게 하면 좋지? 그들은 분명 아름다운 방에서 폭신한 침대에서 자는 데 익숙할 텐데. 농사일을 돕는 말 두 마리도 마구간 밖으로 쫓아내야겠지? 절름거리는 늙은 여우를 풀밭으로 내쫓을 만큼 내가 모질게 군다 해도, 저 흉측한 남작이 끌고 온 이 조랑말들이 모조리 들어갈 만큼 자리가 날까? 또 마흔한 대의 마차는 어쩐담! 하지만 최악의 걱정거리가 또 있어! 오, 사랑하는 하느님, 1년 치의 비축 양식으로 이 난쟁이족을 몽땅 이틀간 배불리 먹일 수 있을까요?’

이 마지막 생각이 제일 끔찍했어요. 안나 양은 모든 비축 양식이 동이 난 상황을 눈앞에 그렸어요. 새로 난 채소들, 뿔 없는 숫양 떼, 가금, 소금에 절인 고기, 사탕무로 만든 술까지도. 그러자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때마침 코르두안슈피츠 남작이 그녀를 향해 그야말로 뻔뻔스럽고 심술궂은 표정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자 그녀는 그의 신하들이 한창 춤을 추고 있는 동안 그에게 단호히 통고를 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아버지에게 남작의 방문은 매우 기쁜 일이지만, 헤아릴 수 없는 시종들과 아울러 이토록 고상하고 부유한 분을 맞아 신분에 맞게 접대를 하기에는 방도 부족하고 그 밖의 물자도 턱없이 부족하니까 답술하임에 두 시간 이상 머물 생각은 하지 말라고요. 그러자 난쟁이 코르두안슈피츠는 갑자기 마르치판19처럼 굉장히 달콤하고 부드럽게 보였어요. 그는 눈을 감고는 약간 거칠고 하얗지도 않은 안나 양의 손에 입술을 갖다 대며, 자신은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름다운 딸에게 눈곱만큼도 폐를 끼칠 생각이 없노라고 확답했습니다. 그는 산해진미와 고급술은 모두 갖고 있지만, 주거지로 말할 것 같으면 단지 한 조각 땅과 열린 하늘만 요구하노라고 했어요. 그러면 그의 시종들이 소박한 여행용 궁전을 지어서 그 안에 하인들 전부와 그 자신이, 그리고 가축에 딸린 일체가 묵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어요.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의 이 말을 듣고 안나 양은 매우 만족하여 자신의 맛있는 음식을 내어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지난번 큰 장이 섰을 때 챙겨 두었던 딱딱하게 구워진 빵과, 남작께서 특별히 독한 브랜디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우두머리 하녀가 시내에서 가져와 위장에 좋다면서 권했던 사탕무 술을 대접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러나 그 순간 코르두안슈피츠 남작은 궁전을 짓기 위한 부지로 채소밭을 골랐다는 말을 덧붙였고, 안나 양의 기쁨은 물거품이 되었지요! 하인들은 주인님께서 답술하임에 도착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올림픽 경기를 계속하고 있었어요. 때로는 커다란 머리통을 쑥 들어간 배에 처박고 뒤로 벌렁 자빠지고, 때로는 공중으로 펄쩍 뛰고, 때로는 직접 볼링 핀, 볼링공, 볼링 선수 역할을 맡아 하면서 함께 볼링을 하는 등 경기를 하고 있었지요. 그사이 난쟁이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은 답술 폰 차벨타우 씨와 대화에 빠져 있었습니다. 대화가 점점 더 중대해지는 듯 보이더니, 결국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자리를 떠서 천문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안나 양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아직 건질 수 있는 것들이라도 건져 보려고 서둘러 채소밭으로 달려갔습니다. 우두머리 하녀가 이미 밭에 나와 서 있었어요. 그녀는 마치 롯의 아내처럼 소금 기둥으로 변해 버린 듯20 꼼짝 않고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안나 양도 하녀 옆에 서서 매한가지로 굳어 버렸고요. 결국 두 사람은 소리 내어 울었고, 그 소리는 하늘 멀리 울려 퍼졌습니다.

“이럴 수가. 대체 이 무슨 재앙이람!”

그들은 아름다운 채소밭이 몽땅 불모지로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푸른 잎이 난 채소도, 꽃이 핀 관목도 없었어요. 한낱 황폐해진 들판이었어요.

“세상에나!”

하녀가 격분하여 소리쳤습니다. “방금 도착한 그 저주받을 난쟁이 놈들이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했겠어요? 마차를 타고 왔지요? 품위 있는 사람들처럼 연출하려고? 하하! 그놈들은 요괴예요. 안나 아가씨, 제 말이 틀림없어요, 이교도 마귀들이에요. 십자화十字花21가 수중에 있으면 아가씨에게 그 기적을 보여 드릴 수 있을 텐데요. 그 난쟁이 야수 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제가 이 삽으로 그놈들을 쳐 죽일 거예요!”

안나 양이 엉엉 우는 동안, 우두머리 하녀는 그 위협적인 무기를 한참 허공에 휘둘렀습니다.

그러는 사이 코르두안슈피츠의 수행원 중에서 네 명의 신사가 매우 우아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공손하게 인사하며 다가왔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 또한 너무나 훌륭해 보였기에, 당장 쳐 죽이겠다던 우두머리 하녀는 천천히 삽을 아래로 내렸고 안나 양도 울음을 그쳤습니다.

코르두안슈피츠라 불리는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의 가장 절친한 친구라고 소개한 그 신사들은 옷차림만 보아도 상징적으로 암시되듯이 각자 다른 나라 출신에 이름은 다음과 같았어요. 폴란드 출신의 카푸스토비츠 씨, 포메른 출신의 슈바르츠레티히 씨, 이탈리아 출신의 시뇨르 디 브로콜리, 프랑스 출신의 무슈 드 로캄블. 그들은 아주 듣기 좋은 어투로 당장 집을 지을 인부가 와서 최고로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온통 비단으로 된 멋진 궁전을 삽시간에 짓는 광경을 보는 큰 기쁨을 드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단 궁전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에요.” 안나 양은 몹시 비통한 마음에 크게 소리 내어 울며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내게서 아름다운 채소들을 몽땅 없애 버린 이 마당에, 대체 코르두안슈피츠 남작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죠? 당신들은 나쁜 사람들이에요. 내 모든 기쁨은 사라져 버렸어요.”

그러자 공손한 사람들은 안나 양을 위로하며 채소밭이 쑥밭이 된 것은 결코 자기네 탓이 아니며, 오히려 그 채소밭은 곧 안나 양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을 만큼 풍요롭게 번성할 것이라고 장담했어요.

과연 집 짓는 난쟁이 인부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곧 채소밭에서는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소동이 일어났어요. 그 바람에 안나 양과 우두머리 하녀는 기겁을 하고 한 덤불숲 가장자리로 도망쳤고, 그곳에 서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단 몇 분 만에 그들의 눈앞에서 오색의 화관과 깃털로 장식되고 황금색 천으로 이뤄진 높고 화려한 천막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천막은 넓은 채소밭의 공간을 모조리 차지해 버려, 천막의 끈들은 마을을 지나 근처 숲 속까지 가서 튼튼한 나무에 고정되었어요.

천막이 완성되자마자,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이 답술 폰 차벨타우 씨와 함께 천문 탑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답술 씨와 여러 번 포옹을 하고 헤어진 뒤 여덟 필의 말이 끄는 마차에 올라타고 시종들과 함께 답술하임에 도착했을 때와 똑같은 순서의 행렬로 비단 궁전 안으로 들어갔고, 마지막 사람까지 들어간 뒤 궁전의 문이 닫혔습니다.

안나 양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소 아버지를 늘 덮친 침울한 기분의 흔적이 한 가닥도 없이 말끔히 사라졌고, 미소마저 띤 것 같았거든요.

게다가 아버지의 눈빛에는 사실상 전혀 뜻밖에 닥쳐온 행운의 조짐이라고 해석하곤 하는 형형한 후광 같은 것이 서려 있었어요.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아무런 말 없이 안나 양의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가 세 번 연달아 포옹을 하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운 좋은 안나야, 축복받은 아이야! 난 운이 좋은 아비로구나! 오, 딸아, 모든 근심과 모든 원한, 모든 번민은 지나갔다! 너는 어떤 인간에게도 그렇게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 운을 만났구나! 코르두안슈피츠라 불리는 이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은 그놈의 후손이기는 하나 절대로 적대적인 그놈이 아니라는 걸 명심하거라. 샐러맨더 오로마시스의 가르침을 통해 한 단계 높은 본성을 순화시키는 데 성공한 그놈이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순화된 불로부터 한 인간 여성에 대한 사랑이 싹텄고, 그는 그 여인과 결합하여 지극히 고귀한 가문의 조상이 되었지. 그 가문의 이름은 일찍이 한 고문서를 장식했었다. 사랑하는 딸 안나야, 내가 이미 너에게 이야기한 걸로 생각되는데, 위대한 샐러맨더 오로마시스의 이 제자가 곧 고귀한 그놈gnom 트실메네히인데 이는 갈데아 이름이며, 순수한 독일어로는 바보라는 뜻이다. 그가 에스파냐의 코르두아에 있는 한 수녀원의 원장인 유명한 막달레나 드 라 크루아를 사랑하여 30년 동안 그녀와 행복하고 만족스런 결혼 생활을 했었다. 바로 이 결합에서 이어진 한 단계 높은 본성을 지닌 고귀한 가문의 한 후손이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이지. 남작은 자신의 에스파냐 혈통을 표시하기 위해 코르두안슈피츠라는 별명을 취했는데, 그것은 사피안이라는 별명을 쓰고 있는 방계傍系 후손과 구별하기 위해서란다. 이 방계 후손은 훨씬 건방지고 근본적으로는 품위가 덜하지. 이 코르두아 후손에게 슈피츠22라는 말이 덧붙여진 것에는 원소적이고 점성술적인 동기가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위대한 선조인 그놈 트실메네히는 막달레나 드 라 크루아가 열두 살일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단다. 그 선례를 따라 훌륭한 오커로다스테스 역시 네가 열두 살이었을 때 너에게 애정을 기울였단다. 그는 너에게서 작은 금반지를 받아서 매우 행복했었다는구나. 그리고 이제 너도 그의 반지를 꼈으니, 너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신부가 되었다!”

“뭐라고요?” 안나 양은 몹시 놀라고 당황하여 소리쳤어요. “뭐라고 하셨어요? 그의 신부라고요? 제가 그 흉측한 난쟁이 괴물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요? 전 이미 오래전부터 아만두스 폰 네벨슈테른 씨의 신부가 아니었던가요? 안 돼요! 절대로 그 흉측한 마술사를 남편으로 맞아들일 수는 없어요. 그가 코르두아 출신이든 자피안 출신이든!”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더욱 진지해져서 말했습니다.

“하늘의 지혜가 너의 완고한 세속의 정신을 교화시키지 못하는 걸 보니 유감이구나! 너는 고귀한 정령인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를 흉측하고 구역질난다고 하는데, 아마 그 이유는, 그가 네가 생각하듯이 윗옷자락 때문에 아무리 긴 다리를 가져도 좋은 그런 세속적 맵시꾼이 아니고, 겨우 3피트의 키에다 머리를 빼고는 몸과 팔다리, 그 밖의 시시한 신체 부위에 이렇다 할 눈에 띄는 것을 걸치고 있지 않기 때문 아니냐? 오, 내 딸아, 너는 정말로 구제 불능의 착각에 사로잡혀 있구나! 모든 아름다움은 지혜에 있고, 모든 지혜는 생각에 있으며, 생각의 육체적 상징은 머리이다. 머리가 크면 클수록 아름다움과 지혜도 더하기 마련이다. 인간이 악에서 오는 유해한 사치품인 나머지 신체 부위들을 모두 포기할 수 있다면, 그는 최고의 이상형으로 우뚝 설 수 있을 텐데! 모든 고통, 모든 괴로움, 모든 불화, 모든 다툼, 한마디로 지상의 모든 파멸이 어디에서 생기느냐? 바로 저주스럽게 풍만한 팔다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더냐? 몸통과 엉덩이, 팔과 다리 없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면, 지상은 얼마나 평화롭고 고요하고 행복하겠느냐! 그러니까 위대한 정치가나 석학들을 흉상으로 나타내는 예술가들의 생각은 대단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그들 정치가나 석학이 신분이나 저술로 드러내는, 그들에게 내재한 한 단계 높은 본성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려는 것이란다. 그러니! 내 딸 안나야, 정령들 중 가장 고귀한 정령, 훌륭한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 남작이 못생기고 추악하며 그 밖의 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언제까지나 그의 신부이니라! 그를 통해서 너의 아비 역시 오랫동안 헛되이 열망하던 행복의 최고 단계에 조만간 도달하게 된다는 점 역시 명심하거라. 포르피리오 폰 오커로다스테스는 실피데 네하힐라(시리아어로 뾰족코란 뜻이다)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이 고귀한 정령과 결합하도록 온 힘으로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이야, 네 미래의 새어머니가 네 마음에 들거다. 너의 결혼식과 내 결혼식이 한날한시에 행복하게 거행될 수 있도록 길운이 작용했으면 좋겠구나!”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딸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지며 격앙되어 방을 떠났습니다.


안나 양은 벌써 오래전에, 그녀가 아주 어릴 적에 불가사의하게 작은 금반지가 실제로 손가락에서 사라진 일을 떠올리고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 흉측한 난쟁이 마술사가 그녀를 자신의 함정으로 유혹해서 그곳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 짓이 확실했어요. 안나 양은 극도로 침울한 상태에 빠져 울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고, 깃펜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깃펜을 쥐고 속히 아만두스 폰 네벨슈테른 씨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만두스!

모든 게 완전히 끝장났어요.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며 슬픔에 젖어 흐느끼고 울부짖고 있어요. 그래서 사랑하는 가금들마저 저를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고 있어요. 아마 당신의 마음은 훨씬 더 동요되겠지요. 사실 이 불행은 저와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관계된 일이며, 당신 역시 슬퍼하실 게 분명해요! 우리가 이 세상 어떤 연인보다도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제가 당신의 신부이며, 저희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교회에 동행하려고 한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계시죠? 그런데 지금! 난데없이 많은 신사 분들과 하인들을 대동하여 여덟 필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이곳에 나타난 한 추하고 노란 난쟁이가 제가 자기와 반지를 교환했으니 신랑 신부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 역시 그 난쟁이 괴물이 아주 고귀한 가문 출신이라면서 제가 그와 결혼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그의 시종들을 보거나 그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옷을 보고 판단하건대 훌륭한 가문 출신일지는 모르지만 그 인물은 아주 징그러운 이름을 갖고 있고, 저는 그 때문에라도 결코 그의 아내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의 이름을 구성하는 비기독교적인 단어들을 뒤따라 발음할 수도 없어요. 얘기를 그래도 하자면, 그는 코르두안슈피츠라 불리는데, 이건 가문의 성姓이에요. 그 가문이 과연 그렇게 지체 높고 품위 있는 집안인지 답장해 주세요. 도시에서라면 그런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노년에 이르러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시는지 저는 도통 이해가 안 돼요. 아버지도 결혼을 하고 싶으시대요. 그리고 그 추악한 코르두안슈피츠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한 부인과 아버지 사이에 중매를 서겠대요. 신이 우리를 도와주길 바라요! 우두머리 하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공기 중에 떠다니며 물에서 헤엄치는 그런 숙녀들을 자기는 섬기지 않겠대요. 그리고 당장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저를 위해 그 계모가 발푸르기스의 밤23에 첫나들이를 갈 때 목이 부러져 죽게 해 달라고 빌겠대요. 고마운 일이죠! 하지만 저의 모든 희망은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저는 당신이 뭔가를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며 저를 큰 위험에서 구해 주실 걸 알아요. 지금이 위험이 닥친 때이니, 서둘러 오셔서 당신의 죽을 만큼 우울한, 그러나 충실한 신부를 구해 주세요.


안나 폰 차벨타우


추신: 당신이 그 노란 난쟁이 코르두안슈피츠와 결투하실 수는 없나요? 당신이 이길 게 분명해요. 그는 다리에 힘이 없으니까요.


추신: 다시 한 번 부탁드려요. 어서 옷을 차려입고, 당신의 불행하지만 앞에 말한 것처럼 충실한 신부, 안나 폰 차벨타우에게 와 주세요.




15 독일의 옛 치수 이름으로 약 66cm

16 옛 문서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의 두頭문자로 쓰인 동그스름한 수사체

17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신학자

18 벨베데레란 이탈리아어로 좋은 전망 혹은 전망대란 뜻으로, 건축 용어로는 건물의 위층 또는 가장 위층에 마련된 전망대나 지붕에 있는 옥상의 테라스를 가리킨다. 1485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에 의해 바티칸 언덕에 세워진 빌라가 빌라벨베데레로 불리어 최초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16세기 초 D. 브라만테는 이 빌라와 교황궁을 2개의 긴 회랑으로 잇고 그 안쪽에 장대한 벨베데레 정원을 계획하였다. 정원을 에워싼 바티칸 미술관이 소장한 아폴론상은 ‘벨베데레의 아폴론’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19 아몬드와 설탕을 갈아서 만든 빵

20 성경에 등장하는 롯의 부인은 피난을 떠나다 천사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본 죄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

21 배추나 무처럼 십자꼴 꽃부리를 이룬 꽃을 말한다.

22 독일어로 꼭대기란 뜻이다.

23 8세기 독일의 전통인 성 발부르가의 날 전야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나중에 스웨덴의 발보르가 되었으며, 괴테의 『파우스트』에 묘사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