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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신부] 2장 첫 번째 기이한 사건과 읽어 볼 만한 다른 사건의 전개와 이 사건들로 인해 생겨난 약속된 메르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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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첫 번째 기이한 사건과 읽어 볼 만한 다른 사건의 전개와 이 사건들로 인해 생겨난 약속된 메르헨

  • WHITE


2장

첫 번째 기이한 사건과 읽어 볼 만한 다른 사건의 전개와

이 사건들로 인해 생겨난 약속된 메르헨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보통 딸과 함께 검소한 식사를 하기 위해 점심때 그의 천문 탑에서 내려왔습니다. 식사 시간은 매우 짧고 아주 조용히 진행되곤 했는데, 그건 답술 씨가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어요. 안나 양 역시 말을 많이 해서 아버지를 귀찮게 하는 일이 없었고, 더군다나 아버지가 말문을 열기만 하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온갖 야릇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늘어놓는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말수를 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안나 양은 채소밭의 풍작과 사랑하는 아만두스의 편지 때문에 몹시 흥분해서 그 두 가지 일을 두서없고 끝도 없이 재잘댔어요. 결국 답술 폰 차벨타우 씨가 칼과 포크를 내려놓고 귀를 막은 뒤 고함을 쳤지요.

“아, 알맹이도 없고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수다 좀 그만 떨어라!”

안나 양이 깜짝 놀라 입을 다물자, 답술 씨는 특유의 느릿하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나는 채소에 관한 거라면 올해의 항성들의 운행으로 보아 그 같은 풍작을 가져올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땅 위의 인간은 양배추와 무와 상추를 즐기게 될 것이다. 아울러 풍성해진 토질은 잘 빚어진 항아리처럼 불의 정령을 품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땅의 정령은 호전적인 불의 정령 샐러맨더에 맞설 것이며, 나는 네가 훌륭하게 가꾼 미나리를 먹을 생각을 하니까 기쁘구나. 아만두스 폰 네벨슈테른 군에 관한 일이라면, 그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너와 결혼하는 걸 추호도 반대할 생각은 없단다. 네가 너의 신랑과 결혼식에 갈 때에 너희와 동행하여 교회에 갈 수 있도록 고트리프를 탑 위로 보내 그 사실을 알려 다오.”

답술 씨는 얼마간 입을 다문 후, 기쁨에 들떠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된 안나 양은 쳐다보지 않은 채, 웃음을 띠고 포크로 잔을 두드리면서—이 두 가지 동작은 그가 언제나 동시에 하는 일이지만 좀처럼 그런 일이 드물었지요—계속 말했습니다.

“아만두스 군은 뭔가를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내 말은 숙명이란 것이지. 사랑하는 안나야, 내가 이미 오래전에 별을 보고 운명을 점친 것을 고백해야겠구나. 평소 별의 위치가 상당히 좋더구나. 그는 60도 떨어진 위치에서 금성이 바라보는 승교점昇交點에 목성을 가지고 있단다. 다만 시리우스성의 궤도가 교차할 뿐이지. 그런데 바로 교차점에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 위험에서 그는 자신의 신부를 구할 거란다. 점성술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낯선 존재가 그 사이에 개입해 있기 때문에 위험 자체는 규명할 수가 없구나. 그렇지만 사람들이 어리석음이나 광기라고 부르곤 하는 특별한 정신 상태만이 아만두스 군으로 하여금 아까 말한 위험에서 신부를 구하도록 해 주는 것만은 확실하단다. 오, 내 딸아. (여기에서 답술 씨는 다시 평소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오, 내 딸아, 음흉스럽게 내 예언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 어떤 무시무시한 힘이 갑자기 너의 길을 가로막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 아만두스 군은 다른 위험에서 너를 구할 생각보다는 너를 노처녀로 만들지 않을 생각만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답술 씨는 두세 차례 연이어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계속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위험이 지나면 갑자기 시리우스성의 궤도가 중단되고, 다른 때는 떨어져 있는 금성과 목성이 다시 화합해서 만난다.”

답술 폰 차벨타우 씨가 오늘처럼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것은 몇 년 만의 일이었답니다. 그는 기운이 쭉 빠져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안나 양은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네벨슈테른 씨에게 답장 쓰는 일을 끝마쳤습니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요.


사랑하는 아만두스!

당신은 제가 당신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를 거예요. 아버지께 편지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께서 우리의 결혼식에 함께 가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어요. 당신은 빨리 대학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돼요. 아, 제가 아름답게 운을 맞춘 당신의 멋진 시구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시구들을 혼자서 큰 소리로 낭독해 보노라면 구절구절이 매우 신비롭게 울리고, 저 자신도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러나 곧 그 모든 것이 끝나고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제가 순전히 맞지 않는 말들만 읽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교장 선생 님께서는 그것이 새로운 고상한 언어라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아! 저는 어리석고 단순한 인간이에요! 저도 혹시 살림살이를 소홀히 하지 않고도 얼마 동안 대학생이 될 수 있을지 답해 주세요! 아무래도 안 되겠죠? 우리가 부부가 된 뒤, 어쩌면 당신의 학식과 새로운 고상한 언어를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죠. 사랑하는 아만두스, 당신에게 버지니아 담배를 보내요. 제 모자 상자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 꽉 채워 넣었어요. 그리고 저의 새 여름 모자는 우리 응접실에 발도 없이 세워져 있는 칼 대제에게 씌워 놓았어요. 아시다시피 그건 그저 흉상이잖아요. 아만두스, 저를 비웃지 마세요. 저 역시 시를 썼어요. 그리고 운도 제대로 맞추었어요. 배우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운을 맞출 수 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얘기해 주세요. 한번 들어 보세요.


당신이 저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저는 당신을 사랑하며

곧 당신의 아내가 되고 싶어요.

청명한 하늘은 푸르며,

밤에는 모든 별들이 황금빛이죠.

그러니 당신은 언제나 저를 사랑해야 하며

절대로 저를 슬프게 해서는 안 돼요.

당신에게 버지니아 담배를 보내며

담배 맛이 정말 좋기를 바라요!


예쁘게 봐 주세요. 저도 고상한 언어를 배우게 되면 훨씬 더 잘 쓰고 싶어요. 올해 노란 양배추는 굉장히 잘 자랐어요. 콩도 전망이 좋고요. 하지만 어제 커다란 수거위가 저희 집 밭을 지키는 닥스훈트인 펠트만의 다리를 사정없이 물었지 뭐예요. 이제―이 세상에 모든 것이 완전할 수는 없나 봐요―사랑하는 당신 생각에 잠겨 당신의 충실한 신부, 안나 폰 차벨타우가 끝없는 키스를 보냅니다.


추신: 너무 서둘러 편지를 쓰는 바람에 이따금 철자가 비뚤어졌어요.

추신: 그래도 저를 나쁘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글자를 좀 비뚤게 썼어도, 저는 곧은 마음을 가진 언제나 충실한 당신의 안나랍니다.

추신: 어머나, 제가 또 잊을 뻔했네요. 저는 건망증쟁이예요.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인사를 전하라고 하시며 당신은 뭔가를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며, 언젠가 저를 큰 위험에서 구해 줄 거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사실이 매우 기뻐요. 그리고 당신을 더없이 사랑하는 충실한 안나 폰 차벨타우임을 거듭 전합니다.


편지를 마치자 안나 양은 무거운 짐을 하나 벗었습니다. 편지 쓰는 일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어요. 봉투 쓰기도 마치고, 불에 종이를 태우거나 손가락을 데지 않고 봉인까지 끝마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뻤습니다. 그러고는 담배 상자 위에 또렷하게 아만두스 폰 네벨슈테른의 약자 A. v. N.을 붓으로 쓴 뒤, 시내의 우체국으로 심부름을 보낼 고트리프에게 담배 상자와 함께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안나 양은 마당에 있는 가금家禽들을 잘 돌본 후에 제일 좋아하는 장소인 채소밭으로 재빨리 달려갔어요. 당근 밭에 도착했을 때, 지금이 도시의 미식가들을 생각해서 첫 당근을 수확할 시기라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일손을 도울 하녀를 불렀어요. 안나 양은 조심스럽게 밭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잘 자란 당근 한 다발을 움켜쥐었습니다. 그런데 다발을 잡아당기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만드라고라 뿌리를 연상하거나 땅에서 뿌리를 뽑아 낼 때 사람의 가슴을 찢는 끔찍스런 비명을 떠올리지는 마십시오. 그게 아니에요. 땅에서 들리는 듯한 그 소리는 섬세한 기쁨의 웃음소리 같았어요. 안나 양은 당근 다발에서 손을 떼고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어머나! 도대체 누가 날 비웃는 거야?”

하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다른 것보다도 더 크고 실한 당근 다발을 잡았고, 다시 웃음소리가 나기 시작하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가장 예쁘고 연한 당근을 과감하게 뽑았어요. 당근을 들여다본 안나 양이 놀라움과 기쁨의 비명을 지르자 하녀가 달려왔고, 하녀 역시 안나 양과 마찬가지로 눈앞의 아름다운 기적에 대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러니까 당근을 잘 털어 내자, 불꽃처럼 반짝이는 황옥이 박힌 아름다운 금반지가 있는 거예요.

“어머나” 하고 하녀가 말했어요. “이 반지는 분명 아가씨 거예요. 아가씨의 결혼반지예요. 당장 끼어 보세요!”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거야.” 안나 양이 대꾸했어요. “난 결혼반지를 아만두스 님한테서 받을 거야. 당근한테서가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반지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안나 양은 반지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매우 정교하게 세공된 그 반지는 일찍이 사람의 재주로 만들어진 그 어떤 반지보다도 훌륭해 보였어요. 다양하게 무리 지어 뒤얽힌 수백 개의 아주 조그만 형상들이 반지 테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형상들은 얼핏 봐서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반지를 한참 자세히 들여다보노라면 그것들이 살아 있는 모습으로 성큼 커져서 우아하게 윤무를 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석의 광택 역시 아주 특별하여 드레스덴 지방의 초록 지붕6에 있는 황옥 중에서조차 아마 그런 건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어요.

“아름다운 반지가 땅속 깊이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에요. 그러다가 삽질로 인해 반지가 땅속에서 위로 올라왔고, 당근이 반지 사이로 뻗어 자란 거라고요.”

하녀가 말했습니다. 안나 양은 당근에서 반지를 뺐습니다. 그러자 너무나 이상스럽게도 당근이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져서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하지만 하녀와 안나 양, 둘 다 그 일에는 전혀 아랑곳 않고, 화려한 반지를 바라보느라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답니다. 안나 양은 거리낌 없이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꼈어요. 반지를 끼자 갑자기 손가락 뿌리에서 손끝까지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 통증은 느껴지는 그 순간에 다시 사라져 버렸어요.

오후에 안나 양은 당연히 아버지에게 당근 밭에서 겪은 기이한 일을 이야기하고는, 당근에 꽂혀 있던 아름다운 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반지를 잘 볼 수 있도록 손에서 반지를 빼려고 했어요. 하지만 반지를 꼈을 때와 마찬가지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그 통증은 반지를 잡아당기는 내내 지속되어,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반지 빼는 일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답술 씨는 안나 양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잔뜩 긴장하여 주의 깊게 살펴본 뒤, 안나 양에게 반지 낀 손가락을 뻗어 사방에 대고 갖가지 원을 그려 보라고 시켰어요. 그러고는 깊은 생각에 잠겨 한마디 말도 없이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안나 양은 아버지가 올라가면서 깊게 한숨을 쉬며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안나 양이 마당에서 온갖 소란을 피우며 주로 수비둘기와 어울려 꽥꽥 울어 대는 커다란 수탉을 이리저리 쫓고 있는데, 답술 폰 차벨타우 씨가 확성기에 대고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마음이 철렁해진 안나 양은 손나팔을 만들어 위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왜 그렇게 서럽게 우세요? 가금들이 미쳐 날뛰잖아요!”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확성기에 대고 아래로 소리쳤습니다.

“안나, 내 딸 안나야, 당장 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오너라.”

안나 양은 그 명령을 듣고 무척 의아스러웠어요. 왜냐하면 지금껏 아버지는 한 번도 탑으로 올라오라고 명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탑 문을 세심하게 잠가 두었으니까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안나 양은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 탑의 유일한 방으로 연결된 묵직한 문을 열었습니다.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온갖 진기한 도구와 먼지 쌓인 책들에 둘러싸여 이상한 모양의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그의 앞에는 받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각종 선이 그려진 종이가 끼워진 액자가 하나 세워져 있었어요. 답술 씨는 높고 뾰족한 회색 모자를 쓰고 번쩍거리는 회색 모직의 널찍한 외투 차림에다 길고 하얀 턱수염을 하고 있어서, 정말로 무슨 마법사처럼 보였어요. 안나 양은 가짜 수염 때문에 처음에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방 안 어느 구석에 아버지가 있는지 두리번거렸어요. 그러나 수염을 달고 있는 그 남자가 사실상 아버지라는 걸 알고 나서는 환하게 웃으며 벌써 크리스마스 때가 왔느냐고, 아버지가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려고 그러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안나 양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작은 단도를 들고 그것을 안나 양의 이마에 댄 후 오른쪽 어깨에서 반지 낀 손가락 끝까지 몇 번 쓸어내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안나 양을 자기가 앉았던 안락의자에 앉혀 놓고, 종이에 그려진 모든 선이 만나는 중심점에 황옥이 닿도록 반지 낀 새끼손가락을 액자에 끼워진 종이 위에 놓게 했어요. 그러자 곧 보석에서 노란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종이 전체를 황갈색으로 물들였습니다. 이어서 종이 위의 선들이 들썩이며 바스락 소리를 냈고, 반지 테두리의 난쟁이들이 온 종이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것 같았어요. 그사이 답술 씨는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얇은 금속판을 잡아 두 손으로 높이 쳐들고 종이 위에 덮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매끄러운 돌바닥에 미끄러져 아주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었고, 넘어져서 꼬리뼈를 다치는 일을 막으려고 본능적으로 손에서 놓아 버린 금속판은 쨍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안나 양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깊이 빠져들었던 꿈을 꾸는 듯한 기묘한 상태에서 깨어났습니다. 답술 씨는 가까스로 일어나 떨어뜨린 원뿔 모양의 회색 모자를 다시 쓰고 가짜 수염을 가다듬은 후 안나 양 맞은편에 쌓여 있는 커다란 책자 더미 위에 앉았습니다.

“내 딸아…….” 답술 씨가 말했어요. “내 딸 안나야, 방금 기분이 어땠느냐?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느꼈느냐? 네 마음속 영혼의 눈으로 어떤 형상들을 보았느냐?”

“아…….” 안나 양이 대답했습니다. “아주 좋았어요. 제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만두스 폰 네벨슈테른 씨를 생각했어요. 생생한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아만두스 씨는 평소보다 더 잘생겼고, 제가 보낸 버지니아 잎담배 파이프를 피우고 있었어요. 그런 모습이 그에게 아주 잘 어울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린 당근과 구운 소시지가 너무나 먹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제 앞에 그 음식이 차려져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막 음식에 손을 대려고 하는데 갑작스럽고 고통스러운 충격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어요.”

“아만두스 폰 네벨슈테른, 버지니아 담배, 당근, 구운 소시지라!”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깊은 생각에 잠겨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뜨려는 딸에게 그냥 있으라고 손짓했습니다.

“행복하고 솔직한 아이야…….”

답술 씨는 평소보다 훨씬 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어요.

“너는 천지만물의 심오한 신비를 소상히 알지 못하고, 너를 둘러싼 무서운 위험을 모른단다. 성스러운 카발라7의 초자연적 학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 그 때문에 현자들이 누리는 천상의 쾌락 또한 절대로 함께할 수 없을 것이다. 최고 단계에 도달한 그들은 단순히 욕구를 위해서 먹고 마시지 않으며, 그들에게서는 인간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단다. 너 역시 현자의 그 단계에 올라가는 공포를 이겨 낼 수 없을 거다, 네 불행한 아비처럼. 내게는 여전히 아주 인간적인 현혹들이 엄습하고, 애써 탐구한 것들은 나에게 전율과 공포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며, 나는 언제나 순전히 세속적인 욕망에서 먹고 마시고, 어쨌거나 인간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스럽고 무지하여 행복한 아이야, 깊은 땅, 바람, 물, 불은 인간보다 더 고귀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한된 자연의 영적인 존재들로 채워져 있음을 알아라. 어리석은 것아, 너에게 땅의 정령 그놈, 불의 정령 샐러맨더, 바람의 정령 실피데, 물의 정령 운디네와 같은 특별한 자연에 대해 설명한들 부질없을 것 같다. 그래 봤자 너는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네 주위를 맴도는 위험을 너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는, 이 정령들이 아직도 인간과 결합하려고 애쓴다는 것, 그리고 이 정령들은 사람들이 보통 그런 결합을 아주 꺼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들의 호감을 산 인간을 유혹하기 위해 온갖 교활한 수단들을 써먹는 점을 얘기해 주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구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은 나뭇가지 하나, 꽃 한 송이, 물 한 잔, 한 가닥 불꽃 혹은 아주 미미하게 보이는 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옛날에 두 성직자가 40년간 그 같은 한 정령과 아주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며 살았다는 미란돌라8 영주의 이야기처럼 그런 결합이 종종 아주 효율적인 결말로 끝나는 게 사실이다. 또한 위대한 현자들은 한 인간이 4대 정령의 하나와 결합해서 태어난 후예들이란 말도 사실이란다. 이를테면 위대한 조로아스터9는 샐러맨더 오로마시스의 아들이고, 위대한 아폴로니우스10, 현자 멀린11, 용감한 클레베 백작, 위대한 카발라 학자 벤지라는 그런 결혼의 눈부신 결실들이었다. 파라셀수스12의 말에 의하면 아름다운 멜루지네13 또한 바로 실피데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러한 결합은 대단히 위험하단다. 4대 정령들은 자신들이 총애를 기울인 인간에게 심오하기 이를 데 없는 지혜의 명징한 깨달음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제쳐 놓고서라도, 그 정령들은 극도로 예민하여 조금만 모욕을 받아도 아주 무섭게 보복을 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단다. 실피데와 결혼한 한 철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어떤 미모의 귀부인에 대해 화제를 삼다가 아마도 그 얘기에 지나치게 열을 냈던 모양이다. 그때 아내 실피데는, 말하자면 친구들에게 자신의 미모를 입증해 보이려고 당장에 공중에서 눈처럼 흰 아름다운 다리를 내보이고는 불쌍한 철학자를 그 자리에서 죽였단다. 그러나 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 나 자신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나는 이미 12년 전부터 한 실피데가 나를 사랑하는 걸 알고 있단다. 그녀는 겁이 많고 소심하지. 그래서 카발라 학문의 수단을 써서 그녀를 사로잡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단다. 나는 여전히 아주 세속적인 욕구에 매달려 있고, 충분한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나는 단식을 결심하고 성공적으로 아침은 거르지만 점심때가 되면, 오…… 안나, 내 딸 안나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끔찍하게 먹어 치운다!”

이 마지막 말을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거의 울부짖는 소리로 말했고, 이때 마르고 움푹 들어간 그의 뺨에서 고통의 눈물이 흘렀어요. 그 뒤 그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세련된 태도로, 정중한 행동거지로 내게 호감을 품은 그 정령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파이프 담배도 카발라에서 정해진 예방책을 쓰지 않고는 결코 피운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섬세한 실피데가 과연 그 품종의 담배를 좋아하는지, 그 정령의 원소를 오염시킨 것에 대해 기분 상하지 않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니까. 사냥용 담배를 피우거나, ‘작센의 만발한 꽃’을 피우는 사람들은, 정령의 원소를 오염시킨 탓에 결코 현명해질 수도 없고 실피데의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란다. 나는 개암나무 줄기를 자르거나 꽃 한 송이를 꺾거나, 과일을 먹거나 불을 지필 때에도 똑같이 카발라의 예방 규칙을 따른단다. 그럴 때 내 모든 노력은 전적으로 그 어떤 자연의 정령의 기분도 망치지 않으려는 데 기울여진다. 그런데 너도, 거기 호두가 보이느냐? 내가 그걸 밟고 미끄러져 뒤로 자빠지면서, 반지의 비밀을 완전히 열어 줄 실험을 망쳐 놓은 호두 껍질 말이다. 지금껏 오로지 학문에다만 바친 이 방 안에서(내가 왜 층계에서 아침을 먹는지 너도 이제 알았을 거다) 호두를 까먹은 기억이 없으니, 이 껍질 안에 난쟁이 그놈이 숨어 있었던 게 확실하구나. 어쩌면 내 손님이 되어 나의 실험을 엿보려고 했는지 모르지. 실상 자연의 정령들은 인간의 학문을 사랑한단다. 특히나 전문가가 아닌 대중이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인간의 정신력을 초월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칭하는 그런 학문을 좋아하지. 그래서 그들은 신성한 최면술이 벌어지는 곳에 자주 나타난단다. 특히 장난기를 버리지 못하는 땅의 정령 그놈들이 그렇다. 그놈들은 내가 처음에 설명했던 지혜의 단계에 미처 이르지도 못하고 세속적 욕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최면술사가 순수하게 정화된 완전한 욕구에서 한 실피데를 포옹했다고 믿었던 그 순간에, 그 최면술사에게 사랑에 빠진 한 인간의 자식을 밀어 넣기도 한다. 내가 인간의 학문을 좋아하는 난쟁이 그놈gnom의 머리통을 밟자, 그는 화가 나서 나를 넘어뜨렸지. 그놈에게는 내가 반지의 비밀을 해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심오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안나! 내 딸 안나야, 듣거라. 내가 알아낸 바로는 한 그놈이 너에게 애정을 품고 있다. 반지의 속성으로 판단하건대 그는 부자에다가 품위 있고 특별히 교양 있는 남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 소중한 안나, 사랑하는 귀여운 딸아, 최악의 위험을 겪지 않고 그런 정령과 그 어떤 관계를 맺는 일을 어떻게 할 거냐? 네가 카시오도르14의 『레무스』를 읽었더라면, 나에게 대답을 할 수 있을 텐데. 그의 진실한 보고에 의하면 에스파냐 코르두아에 있는 어떤 수녀원의 원장 수녀인 유명한 막달레나 드 라 크루아는 30년 동안 한 난쟁이 그놈과 만족스런 결혼 생활을 했고, 쾰른 근방의 나사렛 수녀원의 수녀인 젊은 게르트루트와 실피데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성직에 몸담은 그 여인들의 지적인 일과 너의 일을 생각해 보거라. 분명 차이가 있단다! 지혜로운 책을 읽는 대신 너는 닭, 거위, 오리와 모든 카발라 학자들을 괴롭히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하늘과 별의 운행을 관찰하는 대신 너는 땅을 파고 있지. 정교한 점성의 구도 안에서 미래의 흔적을 추구하는 대신, 우유를 버터로 응고시키고 궁색한 겨울나기 양식으로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둔다. 나조차도 그런 음식을 어쩔 수 없이 아쉬워하기는 하지만. 말해 보거라! 이 모든 것이 민감하게 철학을 하는 정령의 마음에 들 수 있을 성싶으냐? 오, 안나! 네 덕분에 답술하임은 꽃들로 만발하구나. 네 영혼은 이 세속적인 직업을 결코 멀리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반지로 인해 급작스러운 통증을 느꼈으면서도, 그것을 보고 별 생각 없이 무작정 기쁨을 느끼지 않았더냐! 나는 너를 구제하기 위해 조금 전의 실험을 통해 반지의 힘을 꺾어 너를 함정에 빠뜨린 땅의 정령으로부터 너를 자유롭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호두 껍질 속에 있던 그 난쟁이 그놈의 간계로 실패하고 말았구나. 그렇지만! 나에게 그 정령과 맞서 싸울 용기가 생긴다. 전에는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용기란다! 너는 내 딸이다. 너는 실피데나 샐러맨더 또는 그 밖의 정령과의 사이에서가 아니라, 착실한 가정에서 태어난 가난한 시골 처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란다. 매일처럼 아름답고 새하얀 염소 떼를 손수 푸른 언덕으로 몰고 가 꼴을 먹이는 그녀의 목가적 천성을 가리켜 불경스러운 이웃들은 염소치기 소녀라고 별명을 부르며 어리석다고 비웃었지. 그때 사랑에 빠진 바보였던 나는 탑 위에서 그 언덕을 향해 갈대 피리를 불었단다. 너는 언제까지나 나의 자식이요, 나의 혈육이다! 내가 너를 구해 주마. 여기 이 마법의 줄칼이 너를 위험한 반지로부터 구해 줄 것이다!”

답술 폰 차벨타우 씨는 작은 줄칼을 손에 쥐고 반지에 줄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 차례 줄칼을 앞뒤로 긁어 대자, 안나 양은 아파서 비명을 질러 댔어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제 손가락을 깎아 내고 계세요!”

안나 양이 소리쳤고, 과연 반지 아래로 시커멓고 진한 피가 콸콸 솟고 있었어요. 답술 씨는 줄칼을 떨어뜨리고 반쯤 정신이 나간 듯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절망하여 외쳤습니다.

“아! 아! 아! 이제 나는 끝장이다! 실피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격노한 그놈이 당장 나타나서 내 목을 물어뜯을 것이다! 오, 안나. 안나, 가거라. 도망치거라!”

아버지가 기이한 이야기를 할 때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었던 안나 양은 부리나케 아래로 뛰어 내려갔지요.




6 독일 남동부 작센 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에 있는 레지던츠 궁전을 뜻한다.

7 중세 유대교의 신비주의로, 히브리어로 전승傳承을 뜻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천지 창조 이야기나 『에제키엘』의 하느님이 나타나신 이야기를 둘러싼 『탈무드』의 신비주의적 교리로 말미암아 실천적 내용은 13세기의 독일에서, 이론적 내용은 14세기의 에스파냐에서 성행했다.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창조 과정에서 악이 세계에 혼입되었는데, 그 악으로부터의 구제, 질서의 회복은 하느님 나라의 수립이라는 형태로 종말론적으로 실현된다.

8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1463~1494). 이탈리아의 인문학자이며 철학자

9 고대 페르시아 종교 조로아스터교의 교조

10 1세기에 카파도키아 타냐에서 활동한 신 피타고라스 주의자

11 아서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위대한 대마법사

12 파라셀수스(본명은 Philippus Aureolus Theophrast Bombast von, 1493~1541). 스위스의 의학자이자 화학자

13 중세 전설의 바다의 정령

14 카시오도르Flavius Magnus Aurelius Cassiodorus(490~583).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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