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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빈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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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1

  • WHITE



눈을 뜬 건 심한 갈증 때문이었다. 목구멍 깊은 곳부터 마른 모래가 낀 듯한 갈증에 눈을 뜬 은영은 할로겐램프의 직광 때문에 다시 눈을 감았다. 낯선 불빛이다.


은영은 눈을 감은 채 그 빛의 정체에 대해 생각을 더듬는다. 기억은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지난밤, 불빛을 향해 무작정 몸을 던지는 불나방 같던 자신의 흔들리는 날갯짓.


방 안 어디쯤에 찢긴 날개 조각들이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으리라. 은영은 옆자리에 누워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벗은 장(張)의 몸이 정물처럼 무관해 보인다.


지난밤, 자신의 몸속을 파고들던 남자의 몸이라는 최소한의 애틋한 감정마저도 일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은영은 불빛에 환히 드러난 자신의 알몸을 내려다본다.


낯선 남자의 타액이 말라붙은 몸은 건기의 사막처럼 황량해 보인다. 물길이라곤 모두 막혀버린 마른 흙바닥, 은영은 손으로 가만히 아랫배를 쓸어보았다. 마른 비늘 같은 것이 일어나기라도 하듯 손바닥의 감촉이 거칠다.


“같이 있어줘요.”


지난밤, 느닷없는 은영의 말에 장의 눈은 당혹감으로 흔들렸다. 사 년 넘게 다니던 서울 동쪽의 동사무소에서 은영이 정반대 방향의 동사무소로 옮겨온 지 오 개월, 인감증명 발급을 맡고 있는 장은 언제부터인가 은영의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 있는 회식자리에서나 술잔을 나누었을 뿐 단둘이 술을 마신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그냥…… 같이 있으면 안 될까요?”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신 지 두 시간째에 접어들어 취기가 적당히 올랐지만 은영은 더 취하기 전에 장에게 다짐이라도 받아두려는 듯 서두르고 있었다.


“은영 씨…….”


장은 당황과 의혹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석류 껍질처럼 붉어진 은영의 눈을 차마 마주 보지 못한 채 탁자 위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소주 한 병을 더 나눠 마신 후 은영은 장의 손을 이끌고 가까운 모텔로 향했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모텔 간판이 보이는 골목 입구에서 장은 은영의 손을 잡은 채 머뭇대며 물었다. 어쩌면 은영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한 여자에게 끌려가는 남자의 당혹스럽고 불안한 얼굴. 순간 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스쳤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차라리, 동료애라고 생각해줘요.”


은영은 그가 돌아서서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위에서부터 글자가 지워졌다 되살아나는 무인 모텔의 네온 간판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런 동료애는 세상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세상 사람 모두가 쳐다보고 있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숙박비를 계산하려는 장을 밀어내고 굳이 자신의 카드를 무인 계산대에 밀어 넣은 은영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안의 환한 불빛 아래서만은 차마 장의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내내 대리석 무늬의 리놀륨 바닥만 바라보았다.


방에 들어온 은영은 장이 달아나기라도 할 듯 서두르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한 아이가 받아든 선물 포장을 함부로 찢어버리듯 은영은 장의 재킷을 벗겼다. 소매가 뒤집힌 재킷이 바닥에 버려졌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