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ok

[달에게 날 데려가 줘] 1화

이전 다음
최상단 최하단

1화

  • WHITE

*


그 여자애로부터 제 아빠를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은 건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사흘 전이었다. 내가 조퇴를 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그 애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 말’을 했다.


“우리 아빠 죽여줘.”


또래 여자애들이 다 바르고 다니는 비비크림을 바르지 않은 누렇게 뜬 얼굴을 나는 꽤 오래 바라보았다.


“누구니? 너.”


“김윤희.”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 애는 고양이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 뒤를 따라왔다. “고3인데 오전수업만 해도 되는 거야?”라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그렇지 않아도 탐조등마냥 집요하게 비추는 햇볕으로 뜨거워진 등짝에 척 달라붙었다.


큰길을 세 블록쯤 지났을 때 발자국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하마터면 돌아볼 뻔했다. 고개를 살짝 틀자 베이커리 진열창 끝에 그 애가 보였다. 나는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톡, 토옥, 고양이 발자국소리도 빨라지고 있었다.


두 블록을 더 가서 왼쪽으로 꺾어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섰다. 다섯 걸음을 옮긴 뒤 발길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고양이 발자국소리가 한결 빠르고 높게 들려왔다.


청색 스커트자락이 건물 외벽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나는 왼쪽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에 동요가 일어날 때 하는 버릇이었다. ‘넥타이’로부터 죽도록 얻어맞고 난 뒤 모든 버릇을 없애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딱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픔을 참기 위해 틀어쥔 주먹이 그에겐 그 자체로 분노와 적의였다.


- 왼손잡이 새끼…….


그 뒤에 이어진 말이 분명히 있었는데, 더 지독한 말이었는데, 기억할 수 없었다. ‘넥타이’의 집을 나온 뒤 3년이 지나는 동안 수없이 그 말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가 살아 있어야 할 유일한 이유라도 되는 듯 나는 그 말을 기억하기 위해 툭하면 그날로 돌아가곤 했었다. 하지만 끝내 기억할 수 없었다.


“따라오지 마.”


왼손에 들어가 있던 힘이 스르르 풀렸다. 미미하게나마 뛰어오르던 가슴의 뜀박질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윤희라는 여자애는 말없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누런 이마가 드러났다가 다시 덮였다. 침을 삼킨 듯 여자애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따라오면 죽는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가 머리 위를 맴돌았다. 여자애의 눈을 뚫어버리기라도 할 듯 노려보았지만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비웃듯 말했다. 낮았지만 서늘했다.


“우리 아빠 나쁜 새끼야.”


따라오지 말라는 말을 한 번 더 할까 망설이다가 나는 그냥 발길을 돌렸다. 돌아서서 걸음을 막 떼었을 때 여자애의 목소리가 교복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그냥 나쁜 새끼 아냐. 그 새끼 살아 있으면 내가 못살아. 제발 죽여줘.”


나는 다시 걸음을 뗐고, 고양이 발자국소리가 톡, 토옥, 건물 벽을 울렸다. “나쁜 새끼들은 모두 죽어야 해.”라는 말이 뒤통수를 때렸다. ‘넥타이’의 얼굴이 스쳐갔다. ‘넥타이’는 신문사 기자였다. ‘넥타이’는 소설가인 아버지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엔 선배님이라고 불렀고, 더 나중엔 그냥 선배라고 불렀다. 엄마는 그에게 처음부터 미선 씨였다.


아버지는 내 뺨을 어루만지기 좋아했고, ‘넥타이’는 내 뺨을 후려치기를 좋아했다. 아버지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사랑이었고, ‘넥타이’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건 새끼였다. 개새끼, 시발새끼, 죽일 놈의 새끼, 왼손잡이 새끼……‘넥타이’가 나를 새끼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내가 아버지의 새끼라는 사실을 확인받았다. 아버지는 왼손잡이가 되었다가, 개가 되고, 시발놈이 되고, 죽일 놈이 되었다.


- 멍, 멍!


내가 ‘넥타이’를 향해 개 짖는 소리를 냈을 때 ‘넥타이’는 허리띠를 풀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충격을 최소화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몸을 말면 맞는 부위를 줄인 순 있었다. 하지만 매질은 오히려 제한된 부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게 쌓이면 내 몸은 결국 견디지 못한 채 무너졌다. 웅크림이 풀리면 그는 마치 승리를 예견한 격투기 선수처럼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 죽어, 이 빌어먹을 새끼!


아버지는 빌어먹을 놈이 되고, 다시 개가 되었다가, 버릇없는 놈이 되었다. 시발놈에서 죽일 놈이 되어갈 무렵 엄마가 현관문을 따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비로소 의식을 잃을 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까지 버텨낸 내가 대견했다.


“나, 오빠 얘기 들었어.”


교복 뒷덜미를 잡아끈 여자애의 힘은 생각보다 셌다. 이번엔 발목을 잡았다. 나는 건물 사이의 좁은 길이 끝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스팔트 위로 따가운 햇볕이 송곳처럼 꽂히고 있었다.


“오빠도 아빠 죽였잖아. 나, 알아. 그래서 오빠한테 부탁하는 거야.”


어금니가 절로 물려졌다. 피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고, 따라오지 말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