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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집] 춤추는 집 1화 - 물속에서 죽은 인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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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집 1화 - 물속에서 죽은 인어(1)

  • WHITE

물속에서 죽은 인어





축제였다.


호리병을 닮은 호정저수지는 매년 이맘때면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단지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었을 뿐인데 언제부터인지 꾸역꾸역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리자 군청에서는 눈치 빠르게 대응했다.


솜씨 좋은 인부들을 시켜 나무 벤치와 가로등 몇 개를 저수지 주변에 만들더니 ‘서평 벚꽃 축제’라는 플래카드를 여기저기에 걸어놓았다.


축제 때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자리싸움을 벌이는 곳은 호정저수지 둘레로 심어진 벚꽃나무 아래였다. 그곳에는 매년 한 치의 틈도 없이 돗자리와 파라솔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호정저수지는 호정파출소의 관할지였다.


일 년 내내 바쁘다는 소리를 거의 잊고 사는 호정파출소의 사람들이었으나 예외적으로 단 열흘, 이때만은 달랐다. 그렇다고 몸이 바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몰리면 시시비비도 많아지는 법,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가 문제였다.


꼬맹이도 갖고 있는 것이 휴대폰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은 걸핏하면 전화를 걸었다. 화를 내거나 애원하거나 무엇인가를 찾아달라는 하소연이 전화기를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어쨌거나 축제였다.


4월 중순, 호정저수지는 온통 연분홍빛 봄이었다.


불만과 시비로 목청을 돋워 드잡이를 하다가도 바람이 불어 화르락 꽃잎이 흩날리면 사람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어찌 보면 상춘객은 야구장의 관중과 비슷했다.


꽃비에 안타나 홈런이 터진 듯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도 그렇지만 맥주나 치킨을 늘어놓는 것도 엇비슷했다. 바람을 따라 저수지 전체로 번져가는 환호성은 파도타기 응원을 연상시켰다.


호정파출소 사람들은 습관처럼 투덜거렸다.


“바빠. 바빠도 너무 바빠. 밥 먹을 시간도 없어.”


“밥이 뭐야? 난 오줌도 못 쌌는걸.”


“그러게. 난 모닝커피를 거른 지 어언 사흘째야.”


그러나 파출소장인 석규는 일 년 중 이맘때가 제일 좋았다.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들 때문에 번잡하고 떠들썩한 것도 좋았다. 그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휑하니 순찰차를 몰고 나가 호정저수지를 둘러보다가 돌아오곤 했다. 순찰 활동이라기보다는 그냥 심심풀이 삼은 드라이브였다.


오늘도 석규는 순찰차를 몰고 나왔다. 순찰차는 꽁무니에 흙먼지를 매달고 느릿하게 흙길을 내달렸다.


그러나 오늘은 심심풀이용 드라이브가 아니었다. 엄연하게 사고였다. 오전 7시경, 112를 통해 사건이 접수되었다. 보통은 순찰차로 직접 무전이 오는데 어쩐 일인지 파출소로 왔다.



호정저수지에 차가 빠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신고자는 불명. 차는 완전히 잠긴 상태고, 차 안에 사람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 안 됐고요.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시간이 너무 일렀기에 나들이객의 차가 사고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방범 지원을 나와 있던 의경 넷을 데리고 현장으로 출동한 사람은 현 순경이었다.


한 시간쯤 후 현 순경으로부터 간략한 상황 보고가 있었다.


“사고 차량은 저수지 가에서 30미터쯤 안쪽으로 들어가 있고요, 차는 잠겨 있는 상태예요. 운전석엔 오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귀부인이 앉아 있고요.”


‘귀부인’이란 소리가 살짝 귀에 거슬렸다. 도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귀부인이라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의문은 금세 다른 의문에 파묻히고 말았다. 귀부인을 어떻게 봤지? 차는 물속에 잠겨 있는데?


“상철이 너!”


석규는 꽥 소리를 질렀다.


“인마, 물속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그래!”


“그럼 어쩌겠어요, 궁금한데.”


수화기 저편에서 현 순경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평소에 현 순경은 수영에는 선수라며 우쭐거렸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직접 저수지로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인명이 위급한 순간이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건 이미 112 명령을 받았을 때 확인된 바였다. 차는 완전히 잠긴 상태라고 했으니까. 이 말은 곧 사람이 안에 있더라도 이미 사망했거나 경찰이 아무리 빨리 현장에 도착해도 인명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사고 차량은 검은색 그랜저, 차창은 모두 완전히 내려가 있어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여자의 목덜미에 손을 대봤는데 맥박이 전혀 잡히지 않더라고요.”


물속에 잠긴 탓에 머리칼이 수초처럼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옷매무새는 거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외상도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자살 같은데요, 라는 말로 최 순경은 보고를 마무리했다.


석규는 딱 한마디만 질문했다.


“왜 귀부인인데?”


현 순경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목걸이, 반지, 귀걸이, 팔찌 등등 장난이 아니에요. 적어도 돈을 노린 강도짓은 아니라는 거죠. 단순 사고사이거나 자살인 것 같아요.”


현 순경은 형사인 척하는 버릇이 있었다. 걸핏하면 형사처럼 말했고 또 행동도 그렇게 했다. 석규는 그런 현 순경을 형사병에 걸린 놈이라며 핀잔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야말로 핀잔일 뿐이었다. 현 순경에게 고깝거나 밉살스러운 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현 순경을 기특하게 여겼다. 현 순경은 나름 경찰로서의 목표가 뚜렷했다. 3년 안에 강력팀 형사가 되겠다는 것이 현 순경의 첫번째 목표였다.


그때를 대비한다면서 나름 준비도 열심이었다.


범죄학과 정신분석학, 행동심리학, 법의학, 추리소설 등의 책을 꾸준히 탐독했고, 미국과 유럽, 일본의 수사 드라마와 영화도 일일이 찾아가며 보았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해 제법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 현 순경에게 석규는 가끔씩 어깃장을 놓았다.


“형사가 그리 좋아? 형사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편히 살아.”


현 순경은 늘 같은 말로 반박했다.


“소장님은 실패한 형사잖아요. 전 실패 같은 거 안 합니다.”


실패한 형사.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지껄이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아예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현 순경의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형사를 하다가 지방의 파출소로 내려온 것 자체가 이미 실패로 보였을 테니까. 이미 18년이나 지난 일이다. 무뎌질 만큼 무뎌진 기억이었다. 그래도 아직 생채기가 아물지 않은 것일까? 그 말을 들을 때면 석규는 저도 모르게 기분이 씁쓸해지곤 했다.


현 순경과의 통화가 끝나고 석규는 약국에 다녀왔다.


아침을 걸렀는데도 이상하게 체기가 있는 것처럼 속이 더부룩했다. 소화제를 사 먹고 곧바로 파출소로 돌아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부하 직원이 타준 커피 한 잔을 마셨고 잠깐 졸다가 깼는데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그는 30분쯤 더 시간을 죽이다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파출소를 나갔다.


“사고 현장 가는데, 상철이한테는 아무 말 말고.”


경감 하나가 네, 하고 대답하고 그의 손바닥에 순찰차 키를 올려주었다.


석규는 순찰차를 출발시키고 나서 차에 달린 디지털시계를 보았다.


10시 40분. 사고 현장에 도착하면 11시. 그때쯤이면 시신 수습과 조사가 얼추 마무리됐을 것이고, 그는 본서와 경찰청에서 나온 사람들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의례적인 인사를 끝낼 생각이었다. 파출소 사람이 아닌 그들은 어쨌거나 손님이었다. 파출소장이라는 사람이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손님을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탓에 한껏 늑장을 부리다가 시간에 맞춰 파출소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호정저수지 입구에 다다르고, 양옆으로 빽빽이 늘어선 장사치들을 보는 순간 후회가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 순찰차가 호정저수지에 들어서고 나서는 더욱 후회가 깊어졌다.


좁은 흙길 좌우로 차들이 이중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흙길을 그는 요리조리 피해가며 힘겹게 운전해야 했다. 도무지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좀 넓다 싶은 길에서는 무리하게 액셀을 밟기도 했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저수지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석규는 거의 반사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전면 유리 저편으로 어린 여자애 하나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얼핏 보기에 아이는 커다란 솜뭉치나 잎이 자라 뒤엉킨 가시덩굴처럼 보였다.


그는 괜찮아? 하고 소리치는 대신 빵빵 클랙슨을 두 번 울렸다. 그래놓고 곧 후회했다. 아이에게 이 무슨 짓인가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열려진 차창으로 들이닥친 흙먼지 탓이었다. 그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순찰차의 꽁무니를 쫓아오던 흙먼지마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두 손을 내저으며 먼지를 쫓아야만 했다. 그 모습이 네다섯 여자애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모양이다.


석규는 멋쩍게 아이를 향해 웃어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차의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10분. 이러다 흙길에서 손님들을 만나는 게 아닐까 싶어 약간 불안했다. 하지만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는 길에서 비켜줄 낌새가 전혀 아니었다. 아이는 아예 바닥에 퍼질러 앉아 흙장난을 시작했다. 다소 상황이 난감했지만 그로서는 사실 아이에게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었다.


석규는 잠자코 아이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기어를 바꾸고 핸드브레이크를 잡고 나서 가만히 아이 쪽을 바라보았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와 너부데데한 얼굴 모양이 딸의 어릴 때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그는 근무복 상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한복 차림의 젊은 석규와 아내, 돌옷을 입은 어린 딸이 고스란히 그 안에 있었다. 사진 속에서 세 식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세월 참 빠르다. 벌써 28년이나 지났다니.


사진은 딸의 첫돌 때 찍은 것이었다.


딸의 돌잔치는 밖이 아닌 집에서 치렀다. 아내는 타고난 약골이어서 임신이 쉽지 않았다. 네 번의 유산 끝에 간신히 낳은 아이가 딸 해미였다. 해미의 돌잔치를 앞두고 아내는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부지런을 떨었다.


집이 좁아 따로 시간을 정하지 못하고 손님이 올 때마다 서둘러 빈자리에 상을 차려 올렸다. 많지는 않았어도 손님은 아침부터 꾸준하게 이어졌다. 해가 기울 즈음에야 손님의 발길이 뜸해졌고 그제야 부부는 겨우 발을 뻗고 쉴 수 있었다. 사진은 그즈음에 방문한 친척 어른이 찍어주었다. 셔터를 누르지 못해 여러 번 실수를 했는데도 사진은 마음에 쏙 들게 잘 나왔다.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얼마쯤 후 그의 아내는 저세상으로 떠났다. 아이의 돌잔치 때 찾아왔던 사람들 중 반의반쯤을 다시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암 환자였던 아내가 힘든 투병 생활을 겪은 것을 알고 있는 조문객 몇몇은 그 정도면 오래 버틴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그들은 몰랐지만 그 말은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아내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와 딸, 두 사람뿐이었다.



한순간 우와, 하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다시 꽃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석규는 아내와 딸의 웃는 얼굴에 지그시 눈도장을 찍어주고는 사진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흙장난을 치던 귀여운 여자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차창 너머 저수지 쪽으로 허둥지둥 내려가는 여자가 보였다. 여자아이는 그 여자의 품에서 그악스레 울어대고 있었다.


석규는 핸드브레이크와 기어를 풀었다. 시간은 이제 11시 30분. 고개가 비스듬하게 옆으로 기울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본서와 경찰청에서 나온 사람들을 벌써 만났어야 했다. 저수지로 들어서기 전에 이미 떠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아직 볼 일이 끝나지 않았겠지. 그는 지그시 발에 힘을 주어 액셀을 밟았다. 차가 트림하듯이 그르렁거리더니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휴대폰 벨소리가 터진 것은 차가 호리병 모양의 길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액정 화면에 ‘현상철’이라고 떴다. 석규는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받아봤자 파출소에 있지 뭐하러 나왔느냐는 핀잔이나 들을 것이 뻔했다.


석규는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사랑은 언제나 눈물이 돼. 가슴에 남아. 떠나지도 못한 채 또 길을 멈추네.1(1 리쌍 4집 앨범 〈Black Sun〉(2007. 5. 17.) 수록곡인 〈Ballerino> 중 일부)



연애 시절 아내는 그에게 자주 시(詩)를 읽어주었다. 그래 봤자 소귀에 경 읽기였다. 좋다, 라고 말은 했지만 진짜로 시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아내의 목소리가, 시를 좋아하는 아내가 좋았을 뿐이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시가 좋아졌다.


그에게 시란 어쭙잖게 따라 부르는 노래 가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는 노래 가사가 시보다도 더욱 시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심통 난 아이처럼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시란 게 별건가, 다 그게 그거지.


암 환자가 되고 나서 아내는 더 이상 시를 읽지 않았다. 그래도 어디선가 시구(詩句)라도 들려오면 저절로 쫑긋 귀를 세웠다.


시를 좋아하던 아내는 오래전에 죽었다. 석규는 그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다. 헤실헤실 웃던 딸은 시집을 갔고, 두 달쯤 지나면 딸의 딸이 첫돌이 되었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