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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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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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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밤은 이리 떼처럼 어슬렁어슬렁 도시를 에워쌌다. 겨울이 머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차가운 빗방울이 서울의 육체 곳곳을 타고 흘렀다. 자정이 가까워 차량이 뜸한 시간이었으나 올림픽대교 위에는 음주 검문을 하느라 늘어선 차들이 연등 행렬처럼 헤드라이트를 밝혔다.


상철의 구형 소나타 차량도 그 줄에 끼어 있었다. 이십 대 중반인 상철은 험악한 인상에다 살도 많이 쪄서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왼쪽 뺨에는 칼자국 흉터가 선명했다. 핸들을 잡은 오른쪽 손목에는 용의 꼬리로 짐작되는 문신이 소맷부리 밖으로 삐져나왔다.


운전석 창을 한 뼘 정도만 연 차 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상철은 창밖으로 담뱃재를 털고 가래를 뱉었다. 교환 시기가 많이 지난 와이퍼는 꾹꾹 우는 소리를 내며 빗물을 쳐냈다.



상철의 차에서 멀지 않은 도로변에 경찰차가 정차해 있었다. 안에 탄 형사 둘은 남 형사와 제훈. 고참인 남 형사는 조수석에서 휴대전화로 고스톱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운전석에 앉은 제훈은 경찰용 PDA를 들고 창밖으로 보이는 차량 번호를 무작위로 찍어보는 중이었다. 남 형사는 고스톱이 잘 풀리지 않는지 불평했다.


“아이고, 또 쌌네!”


제훈도 PDA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도 하나 쌀 때가 됐는데요.”


“넌 교통과가 아주 체질에 맞나 보다, 그치?”


남 형사가 빈정댔지만 제훈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차량 번호를 조회했다. 무면허 운전이나 수배 차량을 찾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 차 저 차 번호를 찍다 보면 뭔가 걸리는 차가 나오곤 했다. 제훈은 음주 검문을 기다리고 있는 상철의 차량 번호를 PDA에 찍어보았다. PDA 화면에 차량 소유주가 면허취소 중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제훈이 씩 웃었다.


“났습니다.”


“뭔데?”


“그냥 삼 점요. 무면허.”


남 형사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맞고’에 열중했다. 제훈은 경찰차에 시동을 걸었다.




상철은 담배꽁초를 컵 홀더에 담긴 알루미늄 음료 캔에 집어넣고 검문을 받기 위해 창문을 내렸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경찰은 음주측정기를 상철의 입에 댔다. 상철은 음주측정기에 자신 있게 숨을 불어 넣었다. 녹색 램프가 켜졌다.


“협조 감사합니다.”


경찰은 손을 들어 지나가라는 신호를 했다. 상철은 창문을 닫고 액셀을 밟았다.


음주 검문 이후로는 도로가 뻥 뚫렸다. 상철은 시속 백 킬로미터 가까이 속도를 높였다. ‘카카오톡’으로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안내 음이 들렸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휴대전화를 빼서 확인했다.




언제 와? 배고파서 뒤질꼬 가타. ㅜㅜ 먼저 시켜 머꼬 있으까?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야식으로 족발에 소주를 마실 계획이었다. 상철은 침을 삼켰다. 야식에 대한 기대보다는 만취한 상태에서 즐길 난폭한 섹스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사귄 지 두 달 되는 업소 아가씨 미림의 몸은 몹시 육감적이고 속살은 항상 촉촉했다. 상철은 미리 느끼는 만족감을 흐뭇하게 즐겼다.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까지는.


“9755, 9755. 옆으로 차 세우세요.”


경찰차가 따라붙었다.


“씨발.”


상철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문신을 한 손목 위로 핏줄이 불룩 솟았다. 그는 잠시 머리를 굴려 현명한지, 아니면 어리석은지 곧 판가름이 날 계획을 세웠다.


상철은 차를 오른쪽 인도에 바짝 붙이고는 멈춰 서서 기다렸다. 잠시 후 경찰차가 뒤따라 멈췄다. 우의를 입은 경찰관 두 명이 나와서 상철의 운전석 유리창을 손으로 똑똑 두드렸다. 상철이 유리창을 내리자 제훈이 경례를 붙였다.


“면허증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왜요?”


“잠깐 나와주실까요?”


상철은 시동을 끄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제훈이 물었다.

“차량이 본인 소유인가요?”


“잠시 빌린 건데요.”


“현재 차량 소유주의 면허가 취소된 차량입니다. 일단 면허증 주시죠.”


아차 싶은 생각이 상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는 언제나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행동해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상철은 돌연 제훈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제훈이 복부를 감싸 쥐며 쓰러졌다. 놀란 남 형사가 액션을 취하기도 전에 상철은 남 형사의 목을 조르며 밀쳤다. 이어서 남 형사의 얼굴을 상철이 머리로 들이받자 남 형사는 코를 감싸 쥐고 뒹굴었다.


급히 차에 올라탄 상철은 액셀을 힘껏 밟았다. 비명을 지르며 도로 위로 튀어 나간 차는 무표정하게 내리는 빗줄기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제훈과 남 형사는 뒤늦게 상철의 차를 추격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올림픽대교를 달렸다. 제훈은 본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지원을 요청한다! 도난 신고 차량 번호 03다 9755 흰색 소나타! 올림픽대교 남단으로 빠져나간다. 지원을 요청한다!”


추격전은 올림픽 대로를 타고 강남으로 이어졌다. 신사 역 사거리를 앞두고 멀리 상철의 차가 보였다.


“어, 저기 있습니다!”


제훈은 속도를 높였다. 옆에 앉은 남 형사의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제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요?”


“니 눈에는 괜찮아 보이냐? 아이고, 아파라. 코가 부러졌나 보다.”


그때 제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상철의 차가 신호등이 막 바뀐 팔 차선 교차로를 전속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무법자처럼 뛰어든 그의 차 때문에 신호만 믿고 넘어오던 다른 차들은 피하고 멈추고 진로를 바꾸면서 들이받고 깨지고 난리가 났다. 늦은 밤이라 차량 속도가 빠른 탓에 피해는 더 컸다.


“저게 미쳤나!”


남 형사는 혈압이 오르는 얼굴로 소리쳤다. 상철의 차는 처참한 사고 현장으로 변한 사거리를 번개같이 통과해 신사동 유흥가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저 개새끼 봐라.”


제훈은 포기하지 않고 상철의 차를 쫓았으나 한번 놓친 차를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본부에 차량 정보를 요청했다. 차량 소유자 이름은 지현석. 작년 초 조직 폭력 및 마약 판매로 수감 중인 인물이었다. 검거 당시 주소는 ‘강남구 논현동 18-22’.


“지금 가볼까요?”


“그래. 집주인 감방 들어가 있는 동안 차도 쓰고 집도 쓰는지도 모르지.”


남 형사는 분이 풀리지 않은 채로 제훈을 재촉했다. 제훈은 논현동으로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주소로 찾아갔을 때 두 형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삼사 층짜리 원룸 건물이 빼곡한 골목이었다. 주차한 차들 속에 그들이 쫓고 있는 하얀색 구형 소나타가 떡하니 있었다. 제훈은 번호판을 확인하고는 남 형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비게이션 화면상 목적지까지는 삼십 미터 남았다. 모퉁이를 돌아 두 번째 건물. 그들은 차를 골목에 세워놓고 권총을 빼 들고 나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 속으로 가로등은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두 명의 형사는 위험한 사냥감을 쫓는 맹수처럼 발톱 대신 권총을 앞세운 채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앞장섰던 제훈이 막 모퉁이를 돌 때, 반대편에서 튀어나온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제훈과 남 형사의 총구가 동시에 그 사람의 머리를 향해 뻗었다. 그러나 우의에 달린 모자 안에 든 얼굴은 상철의 얼굴과는 완전히 달랐을뿐더러 체격도 더 갸름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용의자를 쫓는 중이라.”


남 형사가 목소리를 낮춰 사과했다. 행인은 다시 자기 갈 길을 갔다. 제훈과 남 형사는 모퉁이를 돌아 ‘18-22번지’ 건물을 찾았다. 사 층짜리 원룸 건물의 사 층 끝 방이었다.


제훈이 앞장섰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한 층씩 오를 때마다 계단 천장에 달린 방범등이 켜졌다. 둘은 이 층에서 삼 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중간쯤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피다. 붉고 끈적한 액체가 위에서부터 흘러내리고 있다. 삼 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끝나는 곳에 한 남자가 웅크린 자세로 누워 있었다. 입을 벌린 채, 눈도 감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얼굴은 분명 상철이다. 방금 전까지 그들이 쫓던.


“이건 뭐냐.”


남 형사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제훈은 상철에게 달려가 호흡을 확인했다.


“죽었는데요.”


제훈의 목소리가 휑한 계단 위로 박쥐처럼 퍼덕거렸다. 남 형사는 사 층까지 계단을 올라가보았다.


“계단에는 아무도 없어.”


남 형사는 내려와서 상철의 시체를 살폈다.


“제훈아, 이것 봐라.”


이마에 동전만 한 상처가 또렷했다. 상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무기는 칼이 아니라 총이었다.


제훈은 멍해졌다. 뭔가 찜찜한 게 있어서 도망친 놈을 쫓는, 단순한 추격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쫓아와보니 죽어 있다. 그것도 총에 맞아서.


“아까 그놈요!”


순간, 제훈은 한걸음에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남 형사도 제훈의 뒤를 따랐다.


빗줄기는 한층 더 거세게 퍼붓고 있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골목길에는 행인이 한 명도 없었다. 제훈은 아까 남자와 부딪쳤던 모퉁이 주변을 살폈다. 자동차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재빨리 골목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고양이가 지나간 바닥에 뭔가가 떨어져 있었다. 뜻밖의 포획물은 모자였다. 푸른색 모자 앞에 붉은색으로 영어 대문자 ‘B’가 적혀 있는.


“보스톤 레드삭스네요.”


제훈이 ‘MLB’ 모자를 집어 들면서 중얼거렸다.


물음표만 잔뜩 남긴 한밤의 추격전이 끝났다.

작가 한마디

나는 기본적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우연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 복수 주변의 의외로 가까운 곳에 구원과 용서가 있다는 것. 그것이 내 소설의 오랜 테마로 남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