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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마사다코] 1부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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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화

  • WHITE

1. 관아에 잡히다


쿵쿵, 뛰는 가슴 때문에 숨쉬기도 버거웠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그악스러운 통증이 분남의 불안을 더욱 부채질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 분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오수 속에 꾼 악몽임에 틀림없어. 분남은 아금받게 두 손을 움켜쥐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물들보다 먼저 사방에 퍼져 있는 한낮의 햇빛이 창날처럼 날아와 눈을 찔러댔다.


분남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빛살은 감은 눈 안으로까지 따라 들어와 자잘한 세침으로 떠돌아다녔다. 그 세침들이 눈을 찔러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긴 눈 안에서 흰 세침으로 떠다니던 빛살들이 스러지자 분남은 다시 가늘게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실눈으로 빛살을 걸러내긴 했지만 쨍쨍하게 튀어 오르는 햇빛은 기다렸다는 듯 용용하게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분남의 단단하고도 하얀 이마가 일순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미간에 자잘한 주름들이 생겨났다.


한낮의 햇빛이 오지게도 사방에 퍼져 있었다. 그 햇빛에 사물들은 색을 잃은 채 희끄무레한 덩어리로 흔들렸다. 그 탈색된 색들에 세상이 환영인 듯싶었다.


조만간 닥쳐올 일들에 분남은 입안이 타들어갔다. 방심했다. 방심해도 너무 방심했다.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했거늘 어쩌자고 그리 태평한 마음으로 마을을 돌았을까. 그저 배가 고파, 주린 배 채울 생각에 엽렵하게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담아, 우담아. 어디선가 큰스님의 음성이 우렁우렁 들려왔다. 허허. 네 업장을 어이할 거나. 네 업장이 너를 집어삼키고, 네 번뇌가 절을 태우는구나. 큰스님의 지청구가 미늘처럼 제 뒷목을 꿰었다. 화들짝 놀라 앞을 바라보니, 타닥타닥,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며 아궁이 속에서 빠져나와 마른 콩대로 옮겨 붙고 있었다. 놀라 불을 끄려는데, 순식간에 불길은 사라지고 너른 마당에 홀로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그랬다. 제가 지금 있는 곳은 통도사, 산중의 그 적막한 절간도 아니었고, 밥 빌어먹던 누추한 고샅도 아니었다. 배가 고파 자꾸만 헛것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도망쳐야 했다. 비루하고 추레한 목숨이나마 부지하려면 예서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디 도망치고 싶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는 곳이던가. 제 목숨이지만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제 삶이지만 제 임의대로 할 수 없는 곳이 이곳이고, 또 제 운명이었다.


호랑이한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했으니 정신을 차릴 것이다. 흡, 분남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정면을 주시했다. 바로 보이는 앞에 동헌의 마루가 있었고, 그 밑으로 나졸들이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숱이 성긴 수염이 지저분해 보이는 저 나졸들은 조금 전 우악스럽게 저를 잡아온 나졸들은 아니었다. 먼지투성이인 후줄근한 옷은 같았으되, 얼굴은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두어 식경 전, 분남은 두 명의 나졸에게 팔이 엇질려 끌려왔었다. 얼굴을 덮는 커다란 삿갓에 누더기가 다 된 승복 차림의 행색은 어디서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배가 고파 빈 바가지 내밀어 밥을 얻으러 다니는데, 아이들이 질기게도 따라붙었다. 중중 때깔 중, 중중 때깔 중. 놀려대며 돌팔매질 해대는 아이들을 향해 눈을 부라린 채 종주먹 세워 쫓아내는데 수상쩍다는 이유로 나졸들이 머리에 쓴 삿갓을 벗기고 끌고 왔다.


마당에는 언제 쓸었는지 비질의 흔적이 사선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비질의 흔적이 완고하게 현실임을 깨우쳐주고 있었다.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어디로 숨을 수도 없었다. 지난날,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갔던 길 위의 나날들이 동헌의 용마루 위로 아슴아슴하게 흘러갔다.


지지리 복도 없는 년이었다. 제 또래의 다른 여자아이들은 집안 살림 배워 연지곤지 찍고 초례청에 서서 여인으로 대물림받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길에서 길로 떠돌며 살아야 했다. 저를 키운 것은 길이었고, 저를 여물게 한 것도 길이었고, 저를 상심케 하고 위태롭게 만든 것도 길이었다. 그 길 위의 삶에 애틋하게 눈 마주치고 살갑게 살 맞댈 가족은 없었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저를 내친 어머니가 미웠다. 어찌하여 한 가족, 무릎을 맞추고 앉아 오순도순 말 섞고 살아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검불처럼 흩어져 모진 목숨을 살아야 하는지. 당장이라도 혀 깨물고 고꾸라지고 싶었지만 분남에겐 그럴 만한 용기도 없었다. 그럴 깜냥이라면 애당초 통도사 그 적막한 절에서 이리 뛰쳐나오지도 않았을 터이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 줄기, 서늘하게 민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 바람이 주는 청량감보다 가슴에 이는 두려움과 한기가 들어 분남은 자꾸만 가라앉았다. 마치 수렁 위에 앉은 듯, 늪 위에 앉은 듯, 암암한 세상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저를 끌어올려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손 내밀어 저를 산 자들의 세상으로 이끌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이 무력한 삶이, 비루하고 누추한 삶이 애통하고 허망할 뿐이었다.


죄인 아닌, 죄인의 몸으로 동헌 마당에 앉아 있으려니 새삼 지난날들이 무참하게 떠올랐다. 한겨울 어머니와 떠돌던 그 춥디추운 날들이 어제 일인 양 싶었고, 폭풍우 치던 날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다 하마터면 사나운 물살에 휘감겨 떠내려갈 뻔했던 일이 조금 전 일인 양 싶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다기지게 마음먹고 살다 보면 다시 살길이 열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에 내일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기에 더욱 초조하고 두려웠다.


“마을 어귀에서 얼쩡거리고 있기에 잡아왔습니다. 어느 절에 있느냐고 물었지만 도통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나졸 한 명이 동헌 마루에 모습을 드러낸 현감에게 일의 경위를 설명했다. 그의 장딴지를 감싸고 있는 경의는 흙먼지가 들러붙어 누렇게 변해 있었다.


분남을 훑는 현감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승복으로 몸태를 감추었다만 보아하니 여인네가 틀림없는 터. 그래, 네 이름이 무어냐?”


현감이 물었다. 그가 말할 때마다 턱 아래로 길게 늘어진 노란 호박 갓끈이 출렁였다. 현감의 신분치고 꽤나 값나가는 사치품이었다.


분남은 섣불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단내가 풍기는 밭은 입안에서 혀는 엉그름진 논처럼 뻣뻣하게 말라 들어가고 있었다.


“네 이름이 뭐냐고 묻지 않느냐?”


마루 밑, 대들보 옆에 서 있던 이방이 현감의 말을 다시 전했다. 이방의 물음 속으로 어머니의 은밀한 당부가 섞여들었다. 행여 누가 네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거든 모른다고 하여라. 네가 태어날 때 돌아가셨다고 해. 너는 절대 모른다. 네 아버지는 세상에 없다.


세 살 무렵, 어머니는 분남의 입을 단속하고 또 단속했다. 그리 주의를 주지 않았어도 세 살 어린아이가 무얼 알까마는 어머니는 두려운 표정으로, 낮고 은밀한 소리로 분남에게 일렀다.


분남은 어렴풋이 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 살 적, 그 단단하지 못한 기억 속에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들어 있었다. 두두두. 싸리문 너머로 발소리가 요란하다 싶더니만 일단의 군졸들이 집 안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다짜고짜 신발을 신은 채 마루로 올라서더니 안방 문을 열고 아버지를 끌고 나왔다. 그들의 사나운 기세에 방문 경첩은 뜯겨져 나가고 구멍 숭숭 뚫린 문짝은 기우뚱, 기울어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신발조차 신지 못한 채 버선발로 끌려 나온 아버지의 상투에서 머리카락이 가닥가닥으로 흘러내려 얼굴을 가렸다.


“역적 배지홍은 네 죄를 알렸다. 아전으로서 상전을 올바르게 모시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생활과 안위를 보살펴야 하거늘, 네 직분을 망각한 채 왕을 어지럽히고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죄, 죽어 마땅하느니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대장인 듯한 사내의 음성이 카랑카랑했다. 그 소리에 이웃들의 겁먹은 시선이 싸리울 너머로 날아왔다.


아버지는 닭이었다. 날갯죽지가 비틀려 도륙을 당하는 닭처럼, 아버지는 그렇게 군졸들에게 팔을 엇질려 끌려갔다. 오라진 아버지의 몸이 멀리서도 무참해 보였다


“아버지!”


분남이 아버지를 부르며 뛰쳐나가려 할 때 어머니의 투박한 손이 먼저 그녀의 입을 덮치고 뒷덜미를 잡아챘다.


“조용해라.”


어머니의 소리는 낮고도 은밀했다. 아니, 소리는 나지 않았다. 입만 달싹였을 뿐. 분남은 아버지가 끌려가는 것을 숨어 지켜보았다. 곧 목이 동강 날 닭처럼, 아버지는 그렇게 끌려갔다. 입을 막은 어머니의 손 때문에 분남은 숨이 막혔다. 숨이 막혀 아버지보다 먼저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버둥거리다 겨우 어머니의 손에서 놓여난 분남은 길게 날숨을 내쉬며 막힌 숨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숨이 돌고 호흡이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어머니는 분남을 우악스럽게 끌고 자리를 떴다. 행여 아버지를 잡아간 군졸들이 잡으러 올까 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잰걸음으로 집에서 멀어졌다. 오빠와 남동생은 이미 며칠 전에 몸을 숨긴 터라 어머니와 분남, 둘이서 단출했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