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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손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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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1화

  • WHITE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합창 교향곡의 피날레 부분이었다. 쇠 추라도 달아놓은 듯 무거워진 눈꺼풀 사이로 취침 등의 붉은 불빛이 스며들어온다. 언제나처럼 알람을 끄기 위해 머리맡을 더듬었다. 아무리 팔을 늘려 봐도 손에 닿는 느낌이 없다.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더라.


상체를 일으켰다. 턱뼈가 얼얼하도록 하품을 한 뒤 잠시 동안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이러는 사이에도 저주스러운 합창 교향곡은 계속해서 귓구멍을 찔러댄다. 반쯤 뜬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문득,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 새끼가 왜 또 저기에 가 있어.”


핸드폰이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쩡쩡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는 핸드폰은 마치 얼른 주워달라고 시위라도 하는 듯 보였다. 비척거리며 일어나 핸드폰을 집었다. 새벽 다섯 시. 일곱 시에 맞춰야 하는 건데 어제 밤에 시간을 잘못 설정한 모양이다.


“아―! 뭐야. 벌써 일곱 시야?”


덩달아 잠에서 깬 아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척 봐도 짜증이 가득한 얼굴에는 입까지 삐죽 나와 나를 더욱더 미안하게 했다.


“아, 미안해. 알람을 잘못 맞췄나봐. 어제 좀 정신이 없어서…….”


아내는 여전히 못 마땅한 얼굴로 나를 잠시 쏘아보더니 이내 다시 누워 버렸다. 그러고는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 올리고 한 마디를 툭 던진다.


“그러게 술 좀 작작 마시고 들어와라. 이 화상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두 시 반까지 술을 마셨다. 슬프면 슬프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구실을 삼아 술을 마셔왔는데 어제는 솔직히 우스꽝스러운 구실이었다. 과장님 딸이 받아쓰기에서 80점을 맞았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90점도 아니고 80점이었다. 거리에서 “우리 딸 만세.”를 외치며 춤을 추는 과장을 간신히 모범택시에 구겨 넣고, 나 또한 아스라한 정신 줄을 간신히 잡으며 집에 돌아온 시각이 대충 새벽 세 시였던 것 같다. 대충 옷만 벗어던지고 침대에 드러누웠는데, 자는 줄로만 알았던 아내가 누운 채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는 것을 안 순간에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다시 누울 지 말 지를 고민하고 있던 중, 갑자기 변의에 사로잡혔다. 폭탄주에 말아 먹듯 우겨 넣은 안주들이 배에서 요동을 친다. 아내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발바닥이 땅에 닿기 무섭게 뱃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왔다.


“아아, 그 책이 어디 있더라. 아, 이거 급한데 어디 있지, 어디 있지.”


매일 아침 변기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하루의 낙이라면 낙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화장실에서 읽었던 책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책상 위에 올려둔 것 같은데…….


“아, 이거 미치겠네. 나올 것 같은데. 아,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패스.”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방광이 참기 힘든 속내를 나타내며 조금씩 하의를 적신다. 이것 참 서른두 살 먹고 바지에 오줌이라니. 아직은 해가 없는 새벽 다섯 시. 거실의 어두움을 넘어 화장실 앞에 도달했다. 불을 켤 겨를도 없이 문을 박차고 변기로 달려갔다. 쓸데없이 커다란 화장실이 오늘따라 더없이 원망스럽다. 변기 앞에 도달했다. 황급히 하의를 내리고 변기에 앉으려는 순간,


물컹-


“으억!”


나는 스프링이라도 밟은 것처럼 붕 뛰어올라 앞으로 엎어졌다. 엉덩이에 무언가 감촉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바지를 추스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 진짜 깜짝 놀랐네. 도둑고양이가 창문으로 들어왔나.”


느껴진 감촉으로는 분명히 생물체이거나, 생물체의 일부분이었다. 나는 잠시 변기 쪽을 응시했지만 불을 켜지 않은 상태라 식별은 불가능했다. 다행인건, 깜짝 놀란 덕분인지 그렇게 급했던 변의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다시 한 번 숨을 고르며 문 바로 옆에 있는 콘센트의 전원을 올렸다. 백열전구의 주황빛이 시야를 밝힌다. 빛에 적응하지 못한 눈을 부비며 앞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변기를 응시했다.


…….


나는 바지도 벗지 못한 채 소변을 보고 말았다. 허벅지와 종아리를 지나 발목까지 적신 소변방울이 바닥으로 뚝 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아, 어, 으, 어. 손……이잖아?”


변기 한 가운데에는 사람의 손이 솟아 있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쳐다봐도 저것은 사람의 손이 확실했다. 바지를 적신 건, 술이 덜 깬 머리보다 몸이 먼저 공포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직 술이 덜 깬 거야. 술이 덜 깨서 고양이가 저렇게 보이는 거야. 아니지 환각일지도 모르지. 그럼 두 시간 밖에 안 잤는걸.”


보면 볼수록 더없이 명확한 ‘손’이었지만 나는 애써 그것을 부정했다. 변기에 있는 고양이쯤이야 잡아다가 던져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손’으로 변신한 고양이에게 다가갈 용기가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사실 변기에 빠져있는 고양이도 기괴하기는 매 한가지였지만 하다못해 울음소리라도 내고 있었다면 그나마의 용기라도 내보았을 텐데 말이다.


“여보! 여보! 주희야! 야! 김주희!”


나는 결국 창피하게 바지를 적셨다는 사실도 잊은 채 큰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저 고양이를 치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잠에서 막 깨어난 아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아, 정말 너 죽을래? 왜 이렇게 사람을 괴롭혀!”


아내의 포효가 들려왔다. 후환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기에는 고양이가 아닌 ‘손’이 보였다. 말발굽처럼 구부러진 빨간 시트의 중간에는 팔꿈치 언저리까지 솟아나온 ‘손’이 잘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새하얀 ‘손’이었다. 물에 퉁퉁 불어서인지 전체적으로 주름이 주글주글했고, 손가락은 농구공도 한 손에 잡을 만큼 길쭉했다. 손톱은 적당한 길이로 손가락 끝마디를 살짝 덮고 있었고, 잔털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주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매끈하고 여성스러워 보였다.


쿵쿵쿵-


아내가 달려오는 소리였다. 똑같은 상황에서 내가 달려왔다면 아내는 밑에 사람들이 경비실에 신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나를 나무랐을 것이다. 변기에 뭐가 있건 간에 말이다. 아내가 화장실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아내가 단번에 변기를 볼 수 있게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이, 웬수야! 너랑 결혼한 내가 미친년이지. 곱게 오줌이나 쌀 것이지 왜 소리를…지르…꺄아악!”


아내가 쓰러졌다. 부릅뜨고 있는 아내의 눈이 적어도 고양이를 본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정말 손이라는 말인가? 정신이 몽롱하다. 술이 덜 깼기에 망정이지 맨 정신에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아마 아내보다 더 심하게 고꾸라졌을지도 모른다.


변기 안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우선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혹시 어제 밤에 강도 살인마가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왔던 건 아닐까? 새벽을 틈타 침입했는데 내가 늦게 들어올 줄은 몰랐던 거야. 허겁지겁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가려다가 때마침 가지고 있던 시체의 토막을 변기에 떨어뜨렸는데, 그 토막이 하필이면 손이었던 거지.’


지금 내 상황에서는 가장 그럴듯한 추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화장실 창문은 성인 남성이 드나들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았지만 혹시 또 모르지. 그 강도가 요가의 달인일지도. 나는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조금씩 변기 앞으로 다가갔다. 어찌됐건 저 손은 치워야 하니까 말이다. 변기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때,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