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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이르는 길] 01화_샤넬 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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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화_샤넬 N°5

  • WHITE

그녀는 어제도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째. 일주일 전, 방을 나설 때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약속이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올 사람처럼 그렇게 출근 시각에 늦지 않으려 서둘러 방을 나섰다.

갈색으로 물들인 긴 머리가 외투 깃에 걸려 산발이 될까 봐 정수리에 쪽을 지듯 얹고, 한 듯 안한 듯 옅은 화장을 하고 황급히 나섰다.



은서가 지나간 자리에 그녀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샤넬 N°5. 그녀는 언제나 샤넬 N°5로 다가왔고 샤넬 N°5로 사라졌다.


“제 아무리 누군가 자신 있게 새 향수를 출시했다고 해도 샤넬 N°5를 따라올 수 없어.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샤넬 N°5야. 샤넬 N°5를 넘볼 수 없어. 명품은 그냥 명품이 아니라구. 난 이 냄새를 맡으면 행복해져. 아, 삶의 냄새는 이런 거구나. 샤넬 N°5는 삶의 싸구려 냄새를 없애주지. 시간이 지나도 그 향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 역시 샤넬 N°5구나 싶어. 다른 것은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 노린내가 나거나 향이 변하거든. 하지만 샤넬 N°5는 변하지 않아. 그게 더 좋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마법이 아니라 샤넬 N°5는 그 마법이 지속되거든.”


샤넬 N°5를 뿌릴 때마다 그녀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감돌았다. 자신이 마치 마릴린 먼로가 된 것처럼 그녀의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녀는 언제나 겉옷을 슬쩍 들추고 가슴골 사이에 샤넬 N°5를 뿌렸다. 두툼한 겨울 스웨터를 입었거나 얇디얇은 여름 티셔츠를 입었거나.


“이곳이 포인트야. 심장이 뛸 때마다 향이 살짝살짝 퍼지거든.”


그녀는 가슴골에 샤넬 N°5를 뿌린 뒤 옷을 들추고 그 냄새를 확인했다. 잘 뿌려졌는지, 아니면 너무 진하지는 않는지.


“너무 진하게 뿌리면 천박하게 보여. 가장 좋은 것은 살 냄새와 섞여 은은하게 나는 거야. 그 냄새에 남자들은 환장해.”


그녀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옷을 들추고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갸름한 얼굴에 둥그런 이마, 보형물의 혜택을 본 곧은 코, 두툼한 입술에 하얀 피부는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장품 광고 속의 모델이 금방 튀어나온 것처럼 그녀는 완벽했다. 하지만 그녀의 무기는 가슴이었고, 잘록한 허리였고, 탄탄해 보이는 엉덩이였다.



그녀의 엉덩이와 다리의 각은 정확히 구십 도를 이루었다. 게다가 두 짝의 엉덩이가 맞붙은 곳에는 빈틈이 없어보였다. 살집이 없이 늘씬한 몸에 어떻게 빈틈이 없는지 그게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연필 하나, 볼펜 하나 그 틈 사이에 끼우고 한참을 걸어도 떨어지지 않을 듯싶었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처진 구석이 없는 거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녀는 중력을 초월하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그 희디흰 엉덩이를 보고 있노라면 묘숙은 같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뜨듯하고도 끈적거리는 침이 입안에 고였다. 그건 조건반사였다.



그 침 속에는 질투심과 시기심과 부러움이 한데 버물어져 있었다. 그 감정들은 서로 섞이며 예상치 못한 융합반응을 만들어냈다. 나트륨이 물과 반응하여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듯, 그렇게.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질투심을 느끼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저렇게 완벽하다 싶은 육체는 인간의 진화된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주는 증거로써 잘 지켜져야 된다 싶으면서도 묘숙은 한편으로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밀가루 반죽처럼 한순간에 짓이겨놓고 싶었다. 남자들의 시선과 여자들의 부러움을 한데 모으는 그 못되고도 사악한 육체를 뭉뚱그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묘숙은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것을 가진 은서가 부러웠고, 얄미웠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까. 조물주도 불공평하시지. 하긴 얼굴 이곳저곳은 소위 ‘의느님’이라 불리는 의사들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그 역시도 원판불변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하긴 점점 의느님들의 실력이 향상되면서 점차 원판불변의 힘이 약화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원판불변의 법칙은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은서도 자신이 가진 힘을 알았다. 알았으므로 자신의 몸을 가꾸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심드렁하게 이야기했지만 샤워하는 시간도 묘숙의 세 배에 가까웠고, 비누 하나 선택하고 사는 데도 까다로웠다. 마치 털 하나하나, 모공 하나하나, 문지르고 닦아내듯 그렇게 정성들여 씻고 관리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피부는 언제나 윤기가 흘렀다. 이마나 코끝, 다리와, 가슴, 엉덩이, 종아리 할 것 없이 형광등 불빛이 내려앉았다가 미끄러져 흘러내렸다.


“비누로 씻고 마지막에 우유로 마사지를 해줘. 우유에는 각질 제거 효과가 있어서 피부가 매끈해져. 너도 해봐.”


언젠가 샤워부스에서 나온 은서는 나신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물기를 훔쳐내며 묘숙에게 말했다.



유리처럼 미끈한 피부. 그 피부를 만지면 무정물의 그것처럼 온기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엄연히 그것은 은서의 몸이었고, 피부였으며, 피가 도는 한 사람의 육신 일부분이었다.



그런 은서는 지역미인대회에서 아쉽게 탈락을 했다고 했다. 예선은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본선은 오르지 못했다. 어디를 봐도 1위의 몸매였지만 돈이 없어서 입상은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돈, 돈, 돈. 그 놈의 돈 때문에. 돈만 있었으면 여기 이렇고 살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말했다. 돼지털로 만든 브러쉬로 머리를 빗다가, 다시 손가락을 빗살처럼 만들어 빗어 내리다, 그녀는 포한이 들린 듯 말했다.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숙인 만큼 눈을 치뜬 채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은서는 말했다. 거울 속에 든 은서를 바라보며 묘숙은 그녀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얼마간 그녀의 말에 동의했고, 동조했다. 과연 그랬겠다, 안쓰럽기도 했다. 어떻게 저 몸매로 본선에서 떨어질 수 있을까.



그녀의 말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돈이었다. 돈의 휘황한 광채에 다들 눈이 멀었거나, 그 돈의 마법에 끌려 그녀를 외면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갑은 돈이었다. 그러니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승이 되면 돈은 저절로 모이는 법. 정승이 되기까지는 개처럼 벌어야 하는 것이 돈이었다. 돈이 있으면 정승도 되고, 그보다 더한 것도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자신에게도 그런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은서의 말처럼 자신에게 돈이 많다면 여기에 이러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여행도 실컷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질구질하게 하룻밤 연애에 평생을 설계하지 않고 쿨하게 그렇게, 돈 한 줌 쥐어주며 떠나보냈을 것이다. 행여 자신의 돈을 보고 거짓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발치 끝에 매달리는 놈들에게 입꼬리 비틀린 웃음 한 번 지어주며 그렇게 매몰차게 떼어냈을 것이다. 가! 주먹 쥔 손에서 검지하나 펴서는 조금 전 남자가 들어오던 문 쪽을 가리키며 명령했을 것이다. 많은 말도 필요 없었다. 단 한 마디. 가! 그 말이면 충분하리라. 그리고 자신은 산뜻한 기분으로 보다 더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류승호. 갑자기 한 사람의 이름이 생각났다. 마치 부비트랩처럼. 묘숙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것은 봉인되어야 할 이름이었고, 기억이었다. 절대 추억해서는 안 될 이름이었다.



어쨌건 은서는 샤넬 N°5를 남기고 방을 나섰다.


샤넬 N°5보다 얼마든지 더 고급스럽고 비싼 향수가 많았는데도 은서는 샤넬 N°5만을 고집했다. 세상에 향수는 샤넬 N°5 밖에 없다는 듯. 그녀는 샤넬 N°5를 맹신했고, 맹종했다.


오드 코롱에서부터 오드 뚜왈렛, 퍼퓸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캐비닛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샤넬 N°5가 들어 있었다.



묘숙도 이상하게 샤넬 N°5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은서가 말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는 샤넬 N°5인 것 같았다. 샤넬 N°5를 맡고 있으면 그녀처럼 행복해졌다. 행복을 파는 냄새, 행복의 전령사, 행복의 주술사, 그것은 바로 샤넬 N°5였다. 샤넬 N°5를 뿌리면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짐 캐리가 주연을 맡아 열연했던 마스크처럼, 이상하게 샤넬 N°5를 뿌리면 휘리릭,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처음에 은서가 샤넬 N°5를 향해 온갖 찬양의 말을 나열했을 때 묘숙은 눈을 흘기며 입을 삐죽였다. 동의할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점차 묘숙도 그 향에 중독이 돼갔다. 그 향에 매혹된 뒤부터 아니, 중독이 된 후로부터 묘숙은 샤넬 N°5의 새로운 신도로서 충실한 역할을 수행해냈다.



은서가 없을 때 묘숙은 그녀의 표정을 흉내 내며 자신의 가슴골 사이에 샤넬 N°5를 뿌렸다. 겉옷을 들추고 들척지근한 살 냄새가 고여 있는 그 젖무덤 사이에 샤넬 N°5를 뿌렸다. 마치 그녀처럼.



큼큼. 움직일 때마다, 아니 숨을 쉴 때마다 낮게 들썩이는 숨통을 따라 올라오는 샤넬 N°5 향이 감미로웠다.



은서는 샤넬 N°5를 뿌리고 아찔한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약간 턱을 치켜든 채 그렇게 허리를 곧추세우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쳐났지만 한편으로는 걸을 때마다 그녀의 탄력 있는 엉덩이 틈새에서 삐죽이 꼬리가 나와서는 살랑거렸다. 털이 북실북실 나있는 여우 꼬리였다.



묘숙은 그런 은서의 걸음걸이를 흉내 냈다. 하지만 퇴화된 꼬리뼈에서 은서처럼 꼬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우스꽝스러운 걸음이었다.


지랄!


묘숙은 그런 자신의 엉덩이에 실망했다. 왜 같은 샤넬 N°5를 뿌렸어도 자신에게는 그런 꼬리가 돋아나지 않을까. 왜 샤넬 N°5의 기능은 사람에 따라 다를까.



묘숙은 샤넬 N°5를 쓰레기통 속에 처박았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주워다가 제 자리에 손 탄 흔적 없이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은서는 알았을 것이다. 샤넬 N°5의 양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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